논술작문

방송의 공정성

아서왕 2012. 4. 13. 13:04

봉이 김선달은 넘실대는 대동강 물을 황송아지 60마리 살 수 있는 돈을 받고 팔았다고 한다. 단지 설화인지 실화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 후기 사유재산권의 개념이 사람들에게 어수룩하게나마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는 강물이 사유권이 인정되지 않는 공유자원임을 익히 알고 있다. 20세기에 들어 중요한 자원으로 떠오른 전파 또한 공유자원이다. 전파는 경합성과 비배제성을 모두 지니는 공유자원으로서 만약 전파의 사용을 자율에 맡겨 놓는다면 전파의 대역대가 중첩되어 아무도 자신들의 사용목적에 맞게 전파라는 자원을 활용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는 특정 사업자에게 전파의 독점적 사용권을 부여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공공 서비스로서의 방송을 요구한다. 방송이 공정해야 하는 것은 공유자원인 전파의 소유권이 어느 한 개인이 아닌 모든 시민들에게 있기 때문이며 공정하지 못한 방송은 애초에 독점적 사용권을 부여한 시민과의 계약을 위반한 것이다.

그렇다고 방송사에 공정성만을 강요할 수는 없다. 애초에 방송 사업자는 사익을 위해 주파수에 대한 독점권을 구입한 것이기 때문이다. 방송에 공정성만을 바라고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공정하지 못하다. 시민과 개인 간의 교환관계의 산물인 방송의 성격 상 시민들은 방송의 자율성 또한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방송사는 이 자율성을 기반으로 사업을 전개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 자율성과 공공성이 대립되는 개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방송사가 자율성을 이유로 공정성을 침해한다면 시민사회에 지불하는 공공 서비스의 가치가 줄어들 것이고 애초 계약과 다른 불량품에 높은 가격을 지불한 시민들은 환불을 요구할 권리를 지니기 때문이다. 방송사는 공정성을 유지하는 선에서 자율성을 추구해야 한다. 방송의 자율성 속에서 제작된 프로그램이 공정할 때 시청자들은 그 방송사를 신뢰하게 되고 이러한 높은 신뢰도는 시청률과 높은 수익으로 이어진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방송의 공정성과 사익을 위한 자율성은 충분히 양립 가능하다.

공자가 춘추에서 노나라의 역사를 기술할 때에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을 편년체로 기술하는 동시에 대의명분에 맞는 주석을 달았던 것은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한 최선의 노력이었다. 공정성의 본질은 이러한 춘추필법과 닮아 있다. 방송 제작자는 객관적인 사실과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는 균형감각을 바탕으로 공공의 이익이라는 대의명분에 맞는 방송을 제작해야 한다. 그러나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한쪽 입장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각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의견을 배제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현상을 포착하여 전달하는 과정에서 완벽히 중립적인 입장에 있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방송 제작자가 현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에 따라 사안의 성질은 달라지며 균형점도 변화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상에 대한 적절한 해석을 통해 시민들의 이해를 돕는 것이 시민과 방송사 사이의 교환관계를 공정하게 하는 것이다.

사회 간접자본으로서 방송은 공정성을 갖출 때, 그 질이 향상되고 국가의 생산성을 고양시킨다. 이러한 생산성은 비단 경제 영역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전 부문에 미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방송의 공정성이 더욱 절실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끊임없는 감시와 견제이다. 전파라는 공유자원을 주고 받은 물건이 진품인지 짝퉁인지 확인하는 일은 시민인 우리가 직접 해야 하는 것이지 누가 대신 해주지 않는다. 만약 그 것이 짝퉁이라면 우리는 당당하게 환불을 요구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요즘 진행 중인 언론사의 파업은 오히려 방송 제작자들이 나서고 시민들은 이를 관전하는 양상이다. 주객전도의 기현상을 목도하며 그나마 방송 제작자들에게서 춘추정신을 읽는다. 공정성은 방송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민 스스로가 만드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