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항공모함 대전
누가 아시아의 무적함대를 갖게 될 것인가. 지난 12일 인도 남부 케랄라주 코치항에서 인도가 자체 기술로 제작한 첫 항공모함 비크란트호를 진수하면서 아시아에서 해양패권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앞서 나간다’는 뜻을 가진 비크란트호의 건조로 인도는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에 이어 5번째로 항공모함을 자체기술로 만들 수 있는 나라가 됐다.
비크란트호는 길이 260m, 폭 60m, 배수량 3만7500t 규모로 축구장 2개 크기다. 인도 해군은 미그29K 등 전투기 25~36대를 탑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보유한 10만톤급 항공모함들에 비하면 작은 수준이지만 오랫동안 자체 항모 제작을 꿈꿔온 인도 입장에선 숙원사업이 이뤄진 셈이다. 인도는 이 배를 만드는 데 50억달러(약 5조6000억원)를 쏟아부었다. 아시아에서는 인도를 비롯 중국, 태국이 항모를 1척씩 보유하고 있으나 자체 제작에 성공한 것은 인도 뿐이다.
인도의 비트란트호 진수소식에 중국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차이나데일리는 진수식 소식을 전하며 “인도의 해군력이 증강됐다“며 “인도양을 지배하겠다는 야심을 보여준 것”이라고 보도했다.
비트란트호를 계기로 아시아 국가들의 항모 경쟁은 한층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우크라이나로부터 옛 소련제 항모인 바랴크함을 사들인 뒤 개조해 만든 랴오닝호를 지난해 취역시켰다. 1998년 바랴크호를 사들일 때 카지노로 개조할 것이라며 주변국들을 안심시켰으나 15년 뒤 첨단 무기를 장착한 항공모함으로 등장한 것이다.
랴오닝호는 만재배수량(최대 적재시 배수량) 6만5000t에 갑판길이만 300m를 넘는다. 중국이 개발한 함재기(항공모함 탑재용 전투기) 선양 J-15 26대와 헬기 24대를 탑재할 수 있으며 탑승인원은 2600여명에 달한다. 아직 자체 기술로 제작된 항모는 없다. 최근 영국 군사전문지 제인스디펜스위클리는 인터넷에 유출된 중국 상하이 부근 창싱다오 조선소 선박 건조 사진을 분석해 “중국이 만들고 있는 자체 제작 항모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자체 기술로 항공모함을 만들어 태평양에 본격적으로 배치할 경우 미국과의 대결은 피할 수 없게 된다. 미국은 현재 11척의 항공모함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중 6척을 태평양 함대에 배치하고 있다. 특히 일본 요코스카에 배치된 조지워싱턴호와는 정면으로 부딪히게 된다. 조지워싱턴호는 만재배수량 11만6700t에 5600여명의 승조원을 탑승시킬 수 있는 대형 핵추진 항공모함이다.
대형 항공모함은 적에게 공포의 존재인 동시에 탐스러운 먹잇감이기도 하다. 한공모함을 한척 잃으면 미군은 해군 공군력의 약 10%와 수천명의 승무원들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항공모함은 자체적인 방어능력이 거의 없기 때문에 수많은 군함과 전투기의 호위를 받아야 한다. 조지워싱턴호는 이지스함, 구축함, 순양함, 핵잠수함 등 함정 20여척의 호위를 받는다. 여기에 FA-18 전폭기, 조기 경보기 등 89대의 전투기와 정찰기가 상공을 지배한다. 어지간한 중소국가는 초토화할 수 있는 정도의 전력이다.
더욱이 미군은 지난 7월 사상 처음으로 항공모함용 무인항공기(드론) 착륙실험을 성공시켰다. 해외 드론기지를 이용할 경우 해당 국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번거로운 절차가 필요한데 반해 항모를 이용할 경우 드론의 활동범위가 거의 무한대로 늘어나기 때문에 경쟁국에는 큰 위협이다. 게다가 미국은 아시아 중시전략으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10만t급 항공모함을 추가배치할 방침이어서 중국을 더 자극하고 있는 실정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20척의 항모를 보유한 전력이 있는 일본도 항공모함 보유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지난 6일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 이즈모호가 진수했다. 14대의 헬기가 뜨고내릴 수 있는 평갑판에 기준배수량 1만9500t급인 이 배를 놓고 일본은 “헬기용 호위함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기준배수량 2만t 이상을 정규항공모함으로 보기 때문에 기준에 약간 미달하는 배수량을 내세웠다. 하지만 F-35B 등 수직이착륙기용 엘리베이터까지 갖추고 있어 향후 일본이 F-35B를 도입하면 충분히 항공모함으로 운용이 가능하다.
중국 언론은 “사실상의 항공모함”이라며 “군국주의로의 회귀”라고 비난했다. 일본이 사실상 항공모함을 만들어놓고, 항모 보유를 금지한 자국 평화헌법의 제한을 피하기 위해 편법을 썼다는 것이다. 이즈모는 일본이 1930년 중국을 포격했던 순양함의 이름과 같아 중국을 더욱 격앙시켰다. 이에 이즈모호 진수식 다음날인 7일 중국은 4척의 해경선을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해역에 보내 27시간가량 무력시위를 벌였다.
주변국들이 항모경쟁에 뛰어들면서 국내에서도 항공모함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국군은 초대형 상륙함인 독도함을 보유하고 있다. 독도함은 배수량 1만4500t에 길이 199m의 갑판을 갖췄으며 6대의 헬기가 동시에 뜨고 내릴 수 있다. 태국이 보유하고 있는 수직이착륙기 탑재 경항공모함 ‘샤크리 나루벳’보다 규모가 커 일각에서는 사실상 경항공모함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독도함이 경항공모함으로 활용되려면 함수에 스키점프대처럼 생긴 갑판을 설치하고 수직이착륙기를 탑재해야 하는데 현재 그런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경항공모함으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단순한 상륙작전 지원 외에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다목적 상륙함이 정확한 표현이라는 평가다.
진짜 항공모함을 건조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된다. 대체로 항모 건조비용은 9만톤급 이상의 대형은 5~8조원, 3~4만톤 급 중형은 2~3조원정도, 그 이하도 조단위의 돈이 든다. 지난 2006년 진수된 미국의 조지부시호는 약 7조원을 들여 건조됐다. 연간 유지비만 3천억원에 달한다. 항모를 호위할 전함들과 항모에 탑재될 함재기까지 고려하면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올라간다. “시퀘스터 등 재정압박으로 2~3척의 항공모함을 줄일 수도 있다”는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의 말이 괜한게 아니다.
주변국들이 경쟁적으로 항공모함을 취역시키는 상황에서 넋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현재 정부는 2018년 취역을 목표로 독도함에 이은 두번째 상륙함을 도입할 예정이다. 후속 함정의 만재배수량은 2만t이 넘어 독도함보다 크며 스키점프대 갑판을 만들어 유사시 경항공모함으로 운용할 수 있게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김대영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현실적으로 항공모함을 도입할 수 없다면 새로 건조되는 대형 상륙함에 F-35B와 같은 수직이착륙기를 탑재하는 것도 방법이다”고 강조했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한국은 이미 항공모함을 사들인 적이 있다. ‘영유통’이라는 민간 무역회사가 1994년 러시아 극동함대에서 퇴역한 기준배수량 3만7000t의 핵추진 항공모함 2척을 러시아 콤파스사(社)로부터 매입했다.
영유통이 사들인 노보로시스크호와 민스크호는 지난 79년과 84년 각각 러시아 극동함대에 배치됐던 최신형 핵추진 항공모함으로 미 태평양함대의 엔터프라이즈호와 미드웨이호등과 대치했다. 소련 해체 후 경제사정이 극도로 나빠지자 러시아는 연간 1억5000만달러에 달하는 유지비를 댈 수 없다는 이유로 1992년 이 항공모함들을 러시아 해군에서 퇴역시킨 후 국제시장에 ‘매물’로 내놓았다.
최신형 항공모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약가격은 각각 37억원, 34억원에 불과했다. 이유는 러시아가 이 항공모함의 주요 무기와 전자장비 등을 제거하고 t당 170달러의 고철가격으로 팔았기 때문이다. 당초 러시아는 군사용으로 매각하려 했지만 중국, 일본 등의 반대 때문에 고철용으로 판 것이다. 영유통은 이 항공모함들을 부산의 해체조선소에서 4~5개월 동안 대형크레인과 해체장비를 동원해 200t급 이하의 작은 덩어리로 분리해 국내 철강업체에 판매하고 남는 양은 해외로 수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한국 환경단체들이 “항모의 원자로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환경이 오염될 수 있다”며 한국에서 해체하는 것을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이에 영유통은 진해에서 비밀리에 노보로시스크호만 해체하고 민스크호는 중국에 매각했다. 중국에 팔려간 민스크호는 이후 광둥성 선전시에서 해상 테마파크로 다시 태어났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