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립보드 - 신문은 이제 큐레이션 시대

스타트업 2014. 3. 23. 17:51




2010년 초 애플의 전성기를 이끌던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를 출시한 직후 미국 샌프란시스코 팰로앨토의 한 신생 벤처기업 사무실을 찾았다. 회사의 이름은 ‘플립보드’. 태블릿PC와 스마트폰에서 뉴스나 블로그 등을 잡지처럼 보여주는 모바일 기반의 소셜 매거진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 업체였다. 플립보드 직원들은 당시 서비스가 초기 단계였기 때문에 잡스가 혹평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플립보드를 몇 분간 사용해본 잡스는 예상을 깨고 “내가 사용해본 소프트웨어 중 최고다. 기존 오프라인 콘텐츠 업체를 돕는 게 이 회사의 역할”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해 플립보드는 애플이 선정한 ‘올해의 아이패드 앱’으로 꼽혔다.


○신문은 이제 ‘큐레이션’ 시대


벤처 사업가였던 마이크 매큐 플립보드 최고경영자(CEO)는 애플에서 개발자로 일했던 에번 돌과 함께 2009년 플립보드를 설립했다. 시장에 콘텐츠는 넘쳐 흐르지만 막상 소비자가 관심있는 콘텐츠를 찾기는 어렵다는 점에 착안했다. 기존 뉴스 콘텐츠는 각 언론사의 웹사이트와 포털사이트를 통해 그날 생산된 뉴스를 한데 모아 뿌리는 유통 방식을 취했다. 오프라인 신문, 잡지를 단순히 웹으로 옮겨왔을 뿐 콘텐츠 대량 방출 방식을 버리지 못했다. 신문 기업들은 기사를 생산하는 데는 익숙했으나 이를 적절히 가공해 온라인으로 전달하는 법에 대해서는 미숙했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매큐와 돌이 선택한 방식은 ‘큐레이션’이었다. 큐레이션은 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이 작품을 수집하고 기획·전시하듯, 수많은 정보 중에서 가치 있는 것만을 골라 요약해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플립보드는 뉴스, 잡지, 블로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수많은 온라인 콘텐츠 중 자기가 관심있는 것만 골라 구독할 수 있게 함으로써 사용자가 정보를 찾기 위해 들이는 수고를 줄였다. 동영상 큐레이션 서비스 매그니파이닷넷의 창립자 스티븐 로젠바움은 큐레이션을 “인간이 수집·구성하는 대상에 ‘질적인 판단’을 추가해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기사의 가치를 판단하는 ‘게이트 키핑’을 큐레이션을 통해 구현한다는 것이다. 


현재 수많은 언론사가 플립보드에 콘텐츠를 공급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뉴욕타임스가 플립보드와 콘텐츠 공급계약을 맺는 등 플립보드는 2000개가 넘는 콘텐츠 공급처를 확보하고 있다. 플립보드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현재 세계적으로 1억명이 플립보드를 사용하고 있으며 하루 25만명의 신규 사용자가 유입되고 있다. 투자도 잇따른다. 2010년 잭 도시 트위터 공동창업자, 더스틴 모스코비츠 페이스북 공동창업자 등이 6050만달러를 투자했으며 지난해 10월에는 골드만삭스 등으로부터 5000만달러를 추가로 유치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과정에서 플립보드의 기업가치가 2년 전보다 두 배 늘어난 8억달러(약 86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됐다”고 전했다.


광고마저 아름다운 앱


플립보드의 또 다른 특징은 유독 ‘아름다움’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잡스가 이 앱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앱’이라고 치켜세웠던 이유다. 매큐 CEO가 서비스의 심미성을 위해 갤러리로 사용하던 건물을 사무실로 임대했을 정도다. 플립보드는 마치 잡지를 넘기는 것처럼 물 흐르듯 구현되는 사용자환경(UI)을 갖추고 있어 종이책이 가지고 있는 오프라인의 ‘맛’을 살렸다. 콘텐츠의 편집 방식도 오프라인 잡지와 유사한 방식으로 보기 편하고 아름답다. 신문 기사는 물론 페이스북, 링크트인 등 SNS의 글까지 잡지처럼 멋지게 보여준다. 에릭 알렉산더 플립보드 부사장은 “잘나가는 잡지나 신문도 웹사이트나 스마트폰에서 보면 그저 줄글의 나열 같았다”며 “신문 기사를 신문보다 예쁘게 보여주는 것이 플립보드의 존재 목적”이라고 말했다. 


플립보드의 아름다움 추구는 콘텐츠에 그치지 않는다. 심지어 광고까지 아름답게 만든다. 알렉산더 부사장은 “사람들은 덕지덕지 붙어 있는 인터넷 광고에 짜증을 내는 반면 패션잡지 광고는 보고 싶어한다”며 “광고도 콘텐츠의 일부로 여기고 볼거리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플립보드가 다른 유사 서비스와 다른 점은 기사를 읽기 위해 스크롤하는 방식이 아닌 잡지나 신문처럼 한장 한장 넘기며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같은 특징은 완결된 형태의 전면광고를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보여준다. 기존의 배너광고가 기사 중간에 지저분하게 붙어 있어 읽기를 방해했다면, 플립보드는 기사와 광고를 아예 분리시키는 방법으로 독자가 기사와 광고에 몰입할 수 있게 했다. 자체적인 광고 사업부를 가지고 있는 플립보드는 광고 수익을 언론사와 나눈다.


‘디자인의 벽’ 통해 아이디어 교환


플립보드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낸 것은 창의성을 북돋는 업무환경 때문이다. 플립보드는 창의적인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해선 직급과 상황,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소통의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철학에 따라 사내에 카페를 설치해 직원 간 대화를 유도한다. 또 격의 없는 ‘산책회의’ ‘맥주회의’ 등을 열어 인턴사원부터 사장까지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무실 한쪽에 생긴 ‘디자인의 벽’도 소통을 늘리기 위한 방책이다. 한쪽 벽면에 차기 플립보드 앱에 적용할 각종 디자인 가안을 붙여놓으면 직원들은 벽에 붙어 있는 디자인을 보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전달한다.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플립보드지만 최근 강력한 도전에 직면했다. 큐레이션 서비스의 미래를 밝게 본 페이스북이 플립보드와 유사한 서비스인 ‘페이퍼’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페이퍼에 대항하기 위해 플립보드가 선택한 전략은 ‘몸집 불리기’다. 플립보드는 지난 5일 CNN이 가지고 있던 라이벌 업체 ‘자이트’를 인수한다고 밝혔다. 인수가격은 밝히지 않았지만 업계는 6000만달러가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 2014.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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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두뇌, 에버노트

스타트업 2014. 3. 23. 17:44




직장인 A씨는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할 때나 잠들기 직전 등 순간순간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에 저장해 둔다. 노트북과도 연동될 수 있어 스마트폰으로 저장해둔 메모들을 바로바로 찾아볼 수 있다. 


A씨가 활용하는 것은 ‘에버노트’라는 스마트폰 앱. 비슷한 종류의 앱이 많이 있지만, 에버노트는 업무에 가장 효율적인 프로그램으로 정평이 나 있다. 에버노트는 한마디로 노트 정리를 위한 메모 앱이다. 스마트폰·태블릿·PC가 서로 동기화가 되는 점, 손으로 글씨를 쓴 뒤 사진을 찍어서 올리면 자동으로 글씨를 인식해 검색이 가능한 점 등 기존 메모 앱에 없는 편리한 기능 덕에 2~3년 전부터 학생, 비즈니스맨 등으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를 개발한 회사의 이름도 에버노트다. 에버노트의 현재 사용자 수는 8000만명에 달하며 2012년 책정된 기업가치는 이미 1조원이 넘었다. 에버노트 측이 정확한 수치를 밝히진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2.5배 증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수년 내에 기업가치가 10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트위터 이후 에버노트가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가장 기대되는 회사로 주목받는 이유다.


○‘두 번째 뇌’ 에버노트


에버노트를 설립한 필 리빈 최고경영자(CEO·40)는 러시아 출신으로 부모님은 둘 다 음악가였다. 아버지는 레닌그라드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리니스트였으며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다. 하지만 리빈은 음악적 재능이 별로 없었고, 부모님은 그에게 음악 가르치는 것을 포기했다. 


8세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한 그는 뉴욕에서 자랐으며 12세 때 처음 접한 컴퓨터에 푹 빠져 지냈다. 이때 그는 ‘컴퓨터를 이용해 사람들을 더 똑똑하게 만들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 보스턴대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웠지만, 비싼 등록금 탓에 중퇴한 뒤 1997년 보스턴에서 통신 서버 운용 프로그램 회사를 차렸다. 여기서 만든 소프트웨어가 인기를 끌면서 회사를 인수하고 싶다는 제안이 들어왔다. 창업 3년째였다. 그는 좋은 조건에 회사를 판 뒤 두 번째로 보안 소프트웨어 회사를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보안 소프트웨어에 이내 흥미를 잃고 두 번째 회사도 팔아버렸다. 


리빈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2006년 세 번째로 에버노트를 창업했다. 그는 사람들이 자꾸 무언가를 잊어버린다는 것에 주목했다. 인간의 뇌는 한계가 있고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은 감퇴한다. 컴퓨터 기술을 이용하면 불완전한 인간의 뇌를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컴퓨터를 이용해 사람들을 더 똑똑하게 만들겠다’는 어릴 적 꿈이 인간의 ‘두 번째 뇌’로 불리는 에버노트 탄생으로 실현된 셈이다. 에버노트는 사용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쉽고 체계적으로 생각을 정리하도록 도와 스마트폰을 정말로 스마트하게 이용하게 해준다.


○스스로 쓰고 싶은 제품을 만들라


에버노트는 다른 회사와 경쟁하지 않는다는 독특한 경영철학을 고집한다. 대신 ‘스스로 좋아할 만한 제품을 만들 것’을 강조한다. 리빈은 “직접 창업한 회사를 포함해 여러 회사에서 일하면서 ‘우리의 적이 누군가’에 집중했으나 이 전략은 거의 매번 실패했다”며 “성공한 이유도 실패한 이유도 적과는 별 상관없는 제품 자체나 시장의 변화였다”고 강조했다.


신념을 지키기 위해 에버노트는 광고도 붙이지 않고,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사용자 데이터를 분석해 돈 버는 일도 하지 않는다. 리빈에게 이런 것들은 제품을 쓰기 싫게 만드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에버노트의 또 다른 강점은 대부분의 기능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 달에 60MB의 저장공간을 공짜로 준다. 그 이상 사용하려면 5달러의 추가 비용을 내야 하지만 웬만한 사람은 60MB를 다 채우지 못한다. 


이 같은 운영전략 때문에 사업 초기 에버노트는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투자자들로부터 퇴짜를 맞기 일쑤였다. 그러나 리빈은 “처음에는 무료로 사용하더라도 소중한 기억과 자료들이 차곡차곡 쌓인 이후에 에버노트는 5달러를 넘어 수천달러의 가치를 갖게 된다”며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투자를 받지 못한 에버노트는 2008년 말 끝내 파산할 위기에 처했다. 


다음날 직원들에게 회사가 부도날 것이라고 말할 생각을 하니,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을 이루지 못하던 리빈에게 새벽 3시 무렵 한 통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스웨덴의 한 사용자가 “에버노트를 매우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다”며 “필요하다면 투자를 해줄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가뭄에 단비를 만난 리빈은 스카이프를 통해 불과 20분 만에 투자 계약을 맺고 50만달러를 투자받아 부도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후 에버노트는 빠르게 성장해 여러 벤처캐피털로부터 수억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오프라인으로 나온 에버노트


에버노트의 영역은 온라인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에버노트는 지난해 9월부터 온라인 서비스와 연동되는 각종 오프라인 제품을 ‘에버노트 마켓’이라는 자사 쇼핑몰을 통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3M, 몰스킨 등 오프라인 기업과 제휴를 맺고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단순히 소프트웨어 회사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전략이다.


에버노트 마켓에서 판매하는 공책에 필기하고 전용 스티커를 붙여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어 저장하면 스티커별로 필기 내용이 자동으로 분류·저장된다. 다양한 색상의 포스트잇에 메모하고 그 내용을 촬영하면 색깔별로 자동 분류되고, 회사 동료들과 공유할 수 있다. 이렇게 촬영된 필기 내용은 에버노트의 필기 인식 기능에 따라 손쉽게 검색할 수 있다.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업무에 도움이 될 만한 기사들도 버튼 하나로 깔끔하게 스크랩했다가 나중에 태블릿으로 검색해 활용할 수 있다. 


이외에도 백팩과 스캐너, 터치펜 등 에버노트와 연계된 다양한 제품을 판매한다. 리빈은 “우리의 목표는 종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종이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해 사람들이 더 스마트해지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며 “에버노트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통합하고 연계하는 라이프스타일 회사”라고 강조했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 2014.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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