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논술작문 2012. 7. 17. 12:02

활짝 창문을 열었다. 한쪽 벽에 붙은 공책만한 창문. 시원한 바람이 별빛을 담아 들어온다. 음악이 조그마한 라디오를 타고 흘러나와 창 밖으로 들리는 전철소리와 뒤섞여 흥겨운 리듬을 만든다. 침대를 제외하곤 간신히 의자를 움직일 정도의 고시원 방은 어느새 화려한 무대가 된다. 속옷만 입은 채 온몸을 흔들며 덩실대는 내 모습은 스페인 그라나다 해변의 플라맹고가 부럽지 않다. 빨라지는 음악에 내 심장소리가 뒤섞일 즈음 내 발과 어깨는 이미 내 의지와 상관없는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행복. 달밤에 손바닥만한 고시원에서 팬티만 입고 춤추는 내가 느낀 것은 광기가 아닌 바로 행복이었다.

 

첫 번째 대입시험에서 낙방한 나는 홀로 상경해 조그마한 고시원에서 재수를 준비했다. 권토중래의 야망을 품고 내 몸을 뉘인 곳은 바로 창문이 없어 햇볕이 들지 않는 고시원 지하 방이었다. 해를 보지 못하는 그 작은 공간에서 나는 낮과 밤을 분간하지 못한 채, 시간관념을 잃고 곰팡내를 맡으며 홀로 침전했다. 우울증. 불면증. 탈모증. 내가 그 곳에서 겪은 것은 전엔 겪지 못했던 절망이었다. 결국, 나는 5만원을 더 내고 건물 5층의 창문이 있는 방으로 이사하기로 했다. 새로운 나의 보금자리로 모든 짐을 옮긴 후, 내가 한 일은 바로 창문을 활짝 열고 찬바람을 맞으며 춘 달밤의 댄스였다. 오랫동안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하고 당연시했던 창문이 내게 돌아온 순간, 나는 주저 없이 일어나 온 몸으로 그 황홀함을 즐겼다. 인생을 돌이켜 보더라도 이 때보다 더 행복한 순간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내가 재수를 결정한 것은 경쟁에서 패배한 나를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명문대를 합격한 친구들에게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과 부모님의 실망은 내게 견딜 수 없는 무게로 다가왔다. ·고등학교를 피말리는 경쟁 속에서 다녔던 나의 행복은 저 멀리 대학입시에서의 성공으로 정조준 되어 있었다. 그런 나의 행복은 대입실패와 함께 산산이 부서졌다. 꼭 명문대에 합격해 자랑스런 아들이 되어 돌아오겠다던 나는 출사표 같은 편지를 남기고 부모님 곁을 떠나 노량진 재수학원으로 흘러들어 간 것이었다. 일년 후, 누구나 인정하는 명문대에 합격했다. 하지만 행복은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내가 온만큼 행복은 저만큼 물러나 있었다. 오히려 신기루같은 목표를 쫓아 헐떡이며 달리던 그 수많은 날들이 내 뒤에 전사자들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매일매일 이어지는 학점경쟁이 행복을 속삭이고 취직이라는 관문이 행복을 위한 선결조건이라고 사람들은 떠들어댄다. 하지만 이제 나는 믿지 않는다. 행복은 미래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현재이지 결코 과거나 미래가 아니다. ‘옛날이 좋았지라고 말하며 과거에 취해있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한 것은 미래에는 행복해질거야라는 막연한 희망이다.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끊임없이 현재의 행복을 유보한다. 하지만 그 행복은 취직 후에도, 결혼 후에도 오지 않을 것이며 죽음 뒤에도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지금 당장 의자에서 일어날지어다. 창문을 열고 음악에 맞춰 신나게 한판 춤을 추자. 정신 없이 추다 보면 막연한 희망이 아닌, 생의 감각으로서의 행복을 온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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