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경제민주화의 길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기존의 왕권신수설에 대항해 사회계약설을 주장한다. 권력은 민중으로부터 나오며 인민의 안위를 지키지 못하는 통치자는 언제든 축출될 수 있다. 후에 이는 주권재민의 원리로 민주주의의 기본가치가 됐다. 하지만 이런 주권재민의 원리가 비단 정치의 영역에만 머무른다고 볼 수는 없다. 사회계약의 범위는 정치를 포함한 사회 전체를 지칭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경제영역 또한 자연스레 사회계약의 범주에 포함된다. 결국 현재의 자본주의 경제시스템도 사회 구성원들의 안녕과 번영을 조건으로 한 계약인 것이다. 문제는 현재의 신자유주의 체제가 사람들의 안녕이 아닌 자본의 증식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경제에서 인간은 소외되고 자본이 경제권력의 주인이 되는 주객전도의 장이 펼쳐진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 도입한 자본주의라는 호랑이 새끼는 이제 자신을 키워준 주인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리바이어던의 군주가 민중을 보호하지 못하면 권좌에서 끌어내려지듯, 현재의 경제제도가 민중의 삶을 괴롭게 만든다면 얼마든지 교체되고 변형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 상에서 인간소외를 해결하고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바로 고용을 늘리는 것이다. 현재 정치권의 복지담론은 한국경제의 만성화된 저성장과 세계경제의 위기를 간과했다. 파이를 나누려면 일단 파이를 만들어야 하는데 현재 논의되고 있는 무상복지 등은 경제활동에 대한 인센티브를 약화시켜 그나마 있던 파이마저 줄여버린다. 단순한 이전지출의 확대는 정부의 재정정책보다 경제적 파급력도 훨씬 작을 뿐 아니라 생산적이지도 못하다. 이는 고기 잡으려고 시도하는 사람의 눈 앞에 당장 피라미를 던져주어 고기잡을 의지를 꺾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눈 앞의 피라미가 아닌 낚싯대와 고기잡는 방법이다. 오히려 복지의 대상이 될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현 상황에선 최선의 방책이며 인간중심의 경제를 이루기 위한 첫 단추다.
문제는 헌법이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 참여를 보장하고 있다고는 하나 현재 한국의 고용률이 60%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법전의 명문적 자유와 현실에서의 자유는 그 간극이 너무나도 크다. 근대국가에서 정치영역의 참정권은 이미 19C에 보편화 됐지만 경제영역에서의 참경권(參經權)은 21C인 지금도 묘연한 실정이다. 이는 경제 민주화의 기반이 갖춰지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낮은 고용률은 고용된 사람들과 고용되지 못한 사람들 간의 소득격차를 심화하고 이미 고용된 사람들 중에서도 비정규직 근로자와 같은 고용이 불안정한 사람들의 소득수준을 더욱 낮춰 소득분배의 형평성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또한 충분히 생산에 투입될 수 있는 인적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국가경제 전체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낮은 고용률의 이면에는 한국 특유의 재벌체제가 주요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재벌기업의 막대한 자본투자는 제조업 부문에서 규모의 효율을 달성해 국내기업이 국제무대에서 충분히 경쟁할 수 있는 요건을 만들어 준다. 하지만 이러한 대기업의 효율성 추구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고용 없는 성장을 지속시켰고 이는 소득분배를 악화시키는 주요원인이다. 실제로 경제성장의 핵심인 제조업의 전체매출 대비 40%를 차지하는 상위 100대 기업의 고용기여율은 전체 고용의 2.2%에 불과하다. 더욱이 재벌그룹의 무분별한 문어발식 사업확장은 중소기업이 충분히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분야까지 침범하여 경제의 고용창출 능력을 저하시킨다. 동네빵집이나 분식업 등에 대한 재벌기업의 무분별한 확장은 사회 전체의 고용기회는 줄이면서도 대외경쟁력 향상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이러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간과한 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비교우위론이 비단 무역에서뿐만 아니라 국내시장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은 모든 산업분야에서 절대우위를 가질 수 있지만 그들이 더 잘하는 비교우위 부문에 집중하는 것이 국가 전체로 봤을 때 효율적이다. 하지만 이를 시장의 자율에 맡기면 자본과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에 의해 비교우위가 무의미해지고 고용은 더욱 줄어든다. 결국 완전고용을 달성하기 위해선 정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역할분담을 유도해야만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역할분담은 고용은 늘리고 소득격차는 줄이며 산업부문별 대외경쟁력도 높이는 훌륭한 상생발전의 방법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재벌 대기업들의 무분별한 사업확장을 제한하여 중소기업들이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 분야를 보호해야 한다.
자본주의에도 엄연한 규칙이 있고, 그 규칙을 지키는 한에서만 자본의 자유가 보장된다. 규칙의 범위와 강도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통해 30여년에 걸친 신자유주의 실험은 사망선고를 받았다.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놓은 수많은 병폐를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규칙을 보다 확장하고 강화시켜야 할 때다. 정부는 고용촉진을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역할분담을 유도하고 재벌기업의 시장지배력 남용을 억제하여 경제권력을 자본으로부터 민중으로 되찾아 와야 할 것이다. 그것이 헌법이 보장한 경제 민주주의의 참된 길이다.
'논술작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북논란에 대하여 (0) | 2012.07.12 |
---|---|
잃어버린 인생 (논제-술) (0) | 2012.07.10 |
섹스, 2020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 (논제-올림픽) (1) | 2012.07.03 |
백설공주 (논제 - 현대판 백설공주) (0) | 2012.04.30 |
봄 (논제-봄소식) (0) | 2012.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