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왜와개론 (논제- 000개론)

논술작문 2012. 4. 13. 13:31

강물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일렁이고 있었다. 하늘은 회색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고 여기저기서 풍악소리가 흘러나왔다. 촉석루에서는 왜병들이 여자들을 끼고 낄낄거리고 있다. 역시나 내가 바라는 세상은 오지 않는가.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붉은 치맛자락이 바람에 날려 피 냄새가 났다.

내 청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알겠소. 왜장 게야무라가 말했다. 기생 중 가장 빼어난 미모를 가진 그녀에게 그는 자신의 둘째 부인이 되어주기를 청한다. 옆구리에 큰 칼을 차고 거친 갑옷을 입고 억센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그녀의 얼굴을 쳐다본다. 얼마나 많은 피를 묻힌 칼인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이것이 청혼이란 말인가. 협박과도 같은 몸에 대한 요구 앞에 그녀는 눈을 부릅뜨고 게야무라의 눈을 노려봤다.

겨우 이것이 너희가 말했던 새로운 세상이라는 것이냐? 독기 서린 그녀의 말에 왜장은 움찔했다. 너희가 오기 전까지도 나는 충분히 영욕의 삶을 살았다. 천한 신분으로 원하지도 않는 남정네들에게 웃음을 흘리고 살기 위해 몸을 팔았지. 세상이 바뀌면 이 짓을 하지 않아도 될까 싶어 너희 간사한 첩자 말만 믿고 진주성 성문을 열었다. 성 안 사람들 다 죽이고 너희들이 만든다던 새 세상이 고작 힘으로 위협해서 계집을 얻는 세상이더냐?

게야무라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단지 그녀를 얻고 싶었다. 오랫동안 치열하게 벌어지던 공성전은 성 내부의 관기 하나가 문지기 병사를 꾀어 성 문을 열면서 허무하게 끝이 났다. 문을 여는 대가로 목숨을 살려주겠다는 왜장 게야무라의 약속은 첩자를 통해 전달됐고 그녀는 살려둔 여자들 틈에 끼여 있었다. 그는 입성하기 전부터 순순히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던 그녀가 궁금했다. 그리고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동백같은 그녀의 미모에 홀려 연모의 감정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고분고분 말 잘 듣던 그녀가 핏발세운 눈을 하고 독기 어린 말을 하다니 그로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나는 당신을 사모하오. 만약 내 부인이 되지 않는다면 당신은 결국 노예의 삶을 살다 강간당해 죽게 될 것이오. 게야무라는 그녀를 타일러 보려고 하였다. 결국 너희 왜국 남자들도 내 몸을 얻기 위해 겁박을 하고 위협을 하는구나. 네가 나를 사모한다고는 하나 너도 조선의 양반들과 다를 바가 없어. 결국은 제도나 물리적 힘으로 내 몸을 착취하려고만 하지. 너희들이 만든 세상에서도 한낮 노리개에 불과한 삶을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볼에 눈물이 타고 흘렀다.

게야무라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싸움은 알았지만 사랑은 몰랐다. 어떻게 해야 마음을 얻을 수 있을지 그녀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발이 절벽 끝에 닿았다. 출렁이는 물소리가 들린다. 그녀의 얼굴만 쳐다보던 왜장은 그제서야 자기가 절벽 끝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순간 가냘픈 그녀는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게야무라는 재빨리 몸을 기울여 그녀를 잡았지만 그의 발도 이미 허공에 있었다.

붉은 꽃잎이 바람에 날린다. 논개와 왜장은 거꾸로 떨어졌다. 머리부터 거꾸로 떨어져 짐승 같은 물살 속으로 사라졌다. 무심히 강물이 흐른다. 세상을 거꾸로 뒤집으려던 두 남녀는 결국 자신을 거꾸로 던졌다. 그래서 거꾸로 떨어지던 그녀와 그의 모습은 장왜와개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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