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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위 코르크 회사 포르투갈의 '아모림'
와인의 주요 생산국은 프랑스를 비롯해 이탈리아, 칠레, 호주 등이 꼽히지만, 와인병의 코르크 마개는 포르투갈산을 제일로 친다. 코르크 나무 생산지가 주로 지중해 지역인데, 그 중에서도 포르투갈이 코르크 마개의 최대 생산국이다. 포르투갈은 세계 코르크 생산량의 55%를 맡고 있으며,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포르투갈 수출 품목 가운데 코르크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도 2.3%에 이른다. 세계 1위 코르크 마개 생산업체도 포르투갈에 있다. 코르티세이라 아모림(이하 아모림)이라는 회사다.
아모림은 세계 코르크 마개 시장의 25%를 점유하는 회사다. 코르크 제품과 그 파생품의 생산과 판매를 통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부상했다. 이렇게 높은 시장점유율을 가진 기업은 포르투갈에서 아모림이 유일하다. 아모림은 1870년 포르투갈 산타마리아 페이라에서 와인저장고로 시작했다. 창업주 안토니우 알베스 아모림 이래로 현재 회장인 안토니우 리오스 데 아모림까지 4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회사명도 창업주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아모림은 코르크 마개, 절연 코르크, 복합 코르크 등을 생산하는데 그 중에서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코르크 마개는 미국, 스페인, 러시아 등 세계 82개국 1만5000여개 와인제조업체에 납품한다. 아모림은 지난해 기준 5억유로(약 7318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3800명의 직원을 고용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친환경 경영’의 대표 주자
아모림 경쟁력의 원천은 세계 최대인 포르투갈 코르크 나무 숲이다. 아모림의 코르크 숲에만 8000여만 그루의 코르크 나무가 자생한다. 코르크 나무는 참나무과의 교목으로 높이는 15~30m에 달한다. 평균수령은 200년 정도이며, 지중해 지역과 북아프리카에 걸쳐 분포한다. 코르크 마개의 원료가 되는 코르크 나무의 껍질은 최대 25㎝까지 두꺼운 층을 형성한다. 추위와 더위로부터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코르크 나무 한 그루에서 4000개의 코르크 마개를 만들 수 있다.
포르투갈 리스본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포르투갈 코르크 숲의 이산화탄소 흡수능력은 포르투갈 연간 배출량의 5%인 480만에 달한다. 아모림의 코르크 나무 숲은 연간 2만5000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탄소 배출로 인한 기후변화를 막는 데 일조하고 있다.
아모림은 코르크 마개를 만들고 남은 재료로 건물의 바닥소재, 벽지, 신발 등을 만들 뿐만 아니라 자동차와 항공기 부품 제작에도 사용한다. 코르크는 단열이 뛰어나고 방음이 잘 돼 건축용 자재로 안성맞춤이다. 무게가 가볍고 불에 잘 타지 않아 자동차와 항공기의 내·외장재를 만드는 데도 제격이다. 미생물에 의해 무해물질로 쉽게 분해되기도 한다.
제품으로 만들 수 없는 폐기물은 공장에서 연료로 사용한다. 아모림의 에너지 수요 중 45% 이상이 재활용 원료로 충당된다. 아모림의 재활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 세계 와인 소비자들로부터 회수한 코르크 마개를 재활용해 다양한 파생품을 만든다. 폐기물을 자원으로 활용해 부(富)를 창출하는 아모림은 지속가능 경영의 대표적인 예다.
환경을 고려한 아모르 껍질 채취 기준도 눈여겨볼 만하다. 껍질은 25년 이상 된 나무에서 9년마다 한 번씩 벗겨낸다.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 껍질을 벗길 때마다 나무에 그해의 연도를 표시해 과도하게 껍질을 벗기지 않도록 유의한다. 껍질이 다 자라는 데 9년이 걸리는 특성을 배려한 조치다. 마누엘 상투스 아모림 홍보실장은 “껍질을 벗겨도 나무의 생장에는 지장이 없다”며 “다시 코르크 층이 생겨 주기적으로 껍질을 벗겨주는 것이 오히려 나무의 생장에 좋다”고 설명한다. 나무를 벌목할 필요 없이 껍질만 벗겨내면 되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다.
◆오랜 세월을 견디게 한 혁신의 힘
기업의 역사가 140년이 넘는다는 것은 세월의 변화에 적응해 끊임없이 혁신해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모림은 혁신을 위해 매년 5만유로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할 뿐만 아니라 3800명의 직원들에게 기술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살아남기 위한 끊임없는 기술투자는 아모림을 세계 일류 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은 원동력으로 꼽힌다.
대표적인 기술혁신의 예는 TCA라는 화학성분의 제거 시스템이다. 와인을 보관할 때면 코르크에서 TCA가 생성돼 와인의 풍미를 저해하는 ‘코르키 현상’이 종종 일어난다. 이 현상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와인에 코르크 마개 대신 플라스틱이나 알루미늄 뚜껑을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모림은 코르크 마개 생산과정에 자체 개발한 TCA 제거 시스템을 도입해 이 같은 우려를 씻어냈다. 혁신을 위한 기술투자가 아모림의 코르크 마개를 명품으로 만든 것이다.
와인 마개를 따는 번거로움을 없애버린 혁신적인 마개도 개발했다. 아모림이 최근 선보인 코르크 마개 ‘헬릭스’는 오프너 없이 머리 부분을 잡고 돌려 열면 된다. 유리병과 코르크 마개에 파인 나선형 홈을 통해 나사를 풀 듯 쉽게 열 수 있다. 와인을 마시고 남을 경우 마개를 반대로 돌려 밀봉할 수도 있다. 다른 코르크 마개가 한번 열면 다시 사용할 수 없고, 남은 와인을 보관하기 어려웠던 것과 대조적이다.
헬릭스는 이런 장점들을 갖추고서도 와인이 가진 특유의 품위와 멋진 분위기를 잃지 않는다. 외신들은 “코르크 마개의 불편함 때문에 그동안 알루미늄이나 플라스틱 뚜껑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됐지만, 헬릭스 출시로 그런 주장은 힘을 잃게 됐다”고 전했다.
아모림 회장은 “헬릭스는 재사용이 가능하고 편하게 열 수 있다”며 “품위와 편리성을 모두 바라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킨다”고 설명했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 한국경제신문 - 2013. 7.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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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저스와 로컬모터스
2011년 미국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기획청(DARPA)은 이례적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차세대 전투차량의 시제품 디자인을 공모했다. 전통적으로 군용차를 설계하는 것은 DARPA의 업무였지만, 민간에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해 2월부터 한 달간 진행된 공모전에는 총 160개의 디자인 시안이 경합을 벌였다.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한 건 ‘로컬모터스’라는 무명의 작은 회사였다. 2008년 설립한 로컬모터스는 기존의 대량생산 체제 위주의 자동차 회사들과 달리 취향이 다양한 구매자들의 구미에 맞는 맞춤형 자동차 생산업체다. 공동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존 로저스는 ‘XC2V’라는 전투차량 설계안을 출품해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쳤다.
전장에서 신속한 병력 수송과 부상자 구출에 사용되는 차세대 전투차량인 XC2V는 혁신적이고 탁월한 기능 설계로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얻었다. 부상자의 손쉬운 후송을 위해 뒷좌석을 탈착식으로 만든 것이나, 앞·뒷자리 높이를 달리 만들어 뒷자리에서도 창문을 전후좌우의 경계가 가능하도록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XC2V 시제품을 지켜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정부가 세금 쓰는 방식을 바꿀 탁월한 군용차”라고 치켜세웠다. 로저스는 이때부터 개성을 중시하는 자동차 마니아층 사이에서 주목받는 인물로 떠올랐다.
○유년기부터 시작된 자동차 개발의 꿈
로저스는 유명 모터사이클업체 인디언모터사이클의 CEO였던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기계와 엔진 등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특히 장난감 자동차 모델을 만드는 것을 좋아한 그는 프린스턴대 재학 중 실제 자동차 제작에 나서기도 했다. 1995년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뒤 중국의 의료 벤처기업을 거쳐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을 다니다 해병대에 입대했다. 저격소대 지휘관으로 7년간 복무한 그는 이라크 파병 당시 동료 병사가 차량 사고로 사망한 것을 계기로 다시 자동차 제작에 대한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안전한 군용 차량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된 것이다. 이때의 경험은 DARPA 공모전 우승작인 XC2V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로저스가 창업을 결심한 직접적인 계기는 전역 후 하버드대에서 MBA 과정을 밟던 무렵이다. 로저스는 섬유업계의 전설적인 성공모델로 인정받는 티셔츠 회사 ‘스레드리스’에 대한 강의를 듣다 미래의 사업모델을 구상하게 됐다. 스레드리스는 온라인 상에서 티셔츠 디자인 공모전을 연 뒤 공모전에서 수상한 디자이너에게 상금을 주고 이를 상품화하는 ‘크라우드소싱(대중을 제품 생산 과정에 참여시키는 방식)’ 방식이다.
MBA를 수료하고 맥킨지 등에서 경영컨설턴트로 일하며 경영 감각을 익힌 그는 2008년 자동차 업체 로컬모터스를 창립했다. 대중이 기업의 제품 생산에 직접 참여하는 크라우드소싱을 통해 기존의 고루한 자동차 생산방식을 변혁해보자는 발상에 착안한 것이다.
○온라인 마니아들이 공동으로 디자인
로저스의 경영철학은 ‘집단지성으로부터의 혁신’이다. 그가 만든 ‘로컬모터스 커뮤니티’ 웹사이트는 수많은 디자이너와 엔지니어의 아이디어 집합소다. 세계 각지의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이 온라인 상에서 3차원 시뮬레이션 기술을 이용해 협업하면서 최적화된 디자인을 만든다. 로컬 모터스에 ‘세계 최초의 크라우드소싱 자동차 회사’라는 별명이 붙은 까닭이다.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업에서는 디자이너가 자동차를 디자인하면 설계도를 바탕으로 엔지니어들이 시제품을 만들고, 다시 디자인을 수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로저스는 이런 절차를 간소화해 개발속도를 대폭 높였다. 스레드리스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자동차산업에 응용한 것이다.
로저스는 또 자동차업계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진짜 원하는 일을 할 수 없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그는 “진정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100% 능력이 발휘된다”며 “고용계약 때문이 아니라 순수하게 일에 대한 애착과 열정을 바탕으로 그들의 재능을 살릴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런 신념으로 웹사이트에서 무급으로 일하는 수많은 인재들을 모을 수 있었고, 개발비용 또한 크게 줄일 수 있었다. 그는 커뮤니티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참여 동기에 대해 “돈이 아니더라도 최고의 인재들과 함께 일한다는 사실 그 자체로 동기 부여가 된다”고 말했다.
디자인에 참여하는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중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 분야에서 여러모로 잔뼈가 굵은 경험자다. 로저스는 그중에서도 자동차 디자인을 전공하는 젊은 대학생들에게 주목했고, 그들의 무한한 상상력과 창조성을 이끌어냈다. 그 결과 현재 로컬모터스 커뮤니티에는 2만5000여명의 회원이 활동 중이며, 로컬모터스는 이를 통해 6만개 이상의 자동차 디자인 시안을 보유하고 있다.
○성공비결은 ‘소규모 고효율’
로저스는 자동차 제작공정에서 ‘소규모 고효율’을 추구한다. 로컬모터스의 공장에는 컨베이어 벨트도, 조립로봇도 없다. 그저 조금 큰 차고 규모의 공장에서 12명의 직원이 수작업으로 차량을 조립한다. ‘마이크로 공장’이다. 자동차 제작은 수작업으로 이뤄지지만, 애초에 대량생산이 아닌 마니아들을 위한 맞춤형 소량생산에 집중하기 때문에 업무효율이 높은 편이다. 이마저도 자동차를 구매한 소비자가 직접 공장에 들러 회사의 엔지니어들과 함께 자동차를 조립하는 형태다.
로저스는 수(手)작업으로 설비투자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감하는 동시에 자신의 손으로 직접 차를 만들고 싶어하는 마니아들의 수요를 노렸다. 부품도 새로 만들지 않고 기존의 제품을 다른 공장에서 조달하는 등 비용을 최소화했다.
로저스가 로컬모터스에서 내놓은 첫 번째 모델은 사막 경주용 자동차 ‘랠리파이터’였다. 2009년 공개된 랠리파이터는 유명 자동차 프로그램 ‘탑기어’에 소개될 정도로 화제를 모으며 마니아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로저스는 랠리파이터에 대해 “18개월 미만의 기간 동안 전 세계에 흩어진 500여명의 인원이 온·오프라인에서 협업해 만들었다”며 “제작기간이 일반 자동차업체의 25% 수준이며, 중량은 기존 차량의 40%에 불과하고 자본집약도는 100배 더 나은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랠리파이터 개발에는 한국인 디자이너 김상호 씨도 참여했다.
로저스는 “로컬모터스의 성공은 수많은 사람들의 협업을 바탕으로 개발비용을 줄이고 상품을 시장에 빠르게 유통했기 때문”이라며 “미래 자동차 산업은 소비자들의 기호 변화에 따라 물리적인 생산구조를 빠르게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 2013.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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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항공모함 대전
누가 아시아의 무적함대를 갖게 될 것인가. 지난 12일 인도 남부 케랄라주 코치항에서 인도가 자체 기술로 제작한 첫 항공모함 비크란트호를 진수하면서 아시아에서 해양패권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앞서 나간다’는 뜻을 가진 비크란트호의 건조로 인도는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에 이어 5번째로 항공모함을 자체기술로 만들 수 있는 나라가 됐다.
비크란트호는 길이 260m, 폭 60m, 배수량 3만7500t 규모로 축구장 2개 크기다. 인도 해군은 미그29K 등 전투기 25~36대를 탑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보유한 10만톤급 항공모함들에 비하면 작은 수준이지만 오랫동안 자체 항모 제작을 꿈꿔온 인도 입장에선 숙원사업이 이뤄진 셈이다. 인도는 이 배를 만드는 데 50억달러(약 5조6000억원)를 쏟아부었다. 아시아에서는 인도를 비롯 중국, 태국이 항모를 1척씩 보유하고 있으나 자체 제작에 성공한 것은 인도 뿐이다.
인도의 비트란트호 진수소식에 중국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차이나데일리는 진수식 소식을 전하며 “인도의 해군력이 증강됐다“며 “인도양을 지배하겠다는 야심을 보여준 것”이라고 보도했다.
비트란트호를 계기로 아시아 국가들의 항모 경쟁은 한층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우크라이나로부터 옛 소련제 항모인 바랴크함을 사들인 뒤 개조해 만든 랴오닝호를 지난해 취역시켰다. 1998년 바랴크호를 사들일 때 카지노로 개조할 것이라며 주변국들을 안심시켰으나 15년 뒤 첨단 무기를 장착한 항공모함으로 등장한 것이다.
랴오닝호는 만재배수량(최대 적재시 배수량) 6만5000t에 갑판길이만 300m를 넘는다. 중국이 개발한 함재기(항공모함 탑재용 전투기) 선양 J-15 26대와 헬기 24대를 탑재할 수 있으며 탑승인원은 2600여명에 달한다. 아직 자체 기술로 제작된 항모는 없다. 최근 영국 군사전문지 제인스디펜스위클리는 인터넷에 유출된 중국 상하이 부근 창싱다오 조선소 선박 건조 사진을 분석해 “중국이 만들고 있는 자체 제작 항모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자체 기술로 항공모함을 만들어 태평양에 본격적으로 배치할 경우 미국과의 대결은 피할 수 없게 된다. 미국은 현재 11척의 항공모함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중 6척을 태평양 함대에 배치하고 있다. 특히 일본 요코스카에 배치된 조지워싱턴호와는 정면으로 부딪히게 된다. 조지워싱턴호는 만재배수량 11만6700t에 5600여명의 승조원을 탑승시킬 수 있는 대형 핵추진 항공모함이다.
대형 항공모함은 적에게 공포의 존재인 동시에 탐스러운 먹잇감이기도 하다. 한공모함을 한척 잃으면 미군은 해군 공군력의 약 10%와 수천명의 승무원들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항공모함은 자체적인 방어능력이 거의 없기 때문에 수많은 군함과 전투기의 호위를 받아야 한다. 조지워싱턴호는 이지스함, 구축함, 순양함, 핵잠수함 등 함정 20여척의 호위를 받는다. 여기에 FA-18 전폭기, 조기 경보기 등 89대의 전투기와 정찰기가 상공을 지배한다. 어지간한 중소국가는 초토화할 수 있는 정도의 전력이다.
더욱이 미군은 지난 7월 사상 처음으로 항공모함용 무인항공기(드론) 착륙실험을 성공시켰다. 해외 드론기지를 이용할 경우 해당 국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번거로운 절차가 필요한데 반해 항모를 이용할 경우 드론의 활동범위가 거의 무한대로 늘어나기 때문에 경쟁국에는 큰 위협이다. 게다가 미국은 아시아 중시전략으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10만t급 항공모함을 추가배치할 방침이어서 중국을 더 자극하고 있는 실정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20척의 항모를 보유한 전력이 있는 일본도 항공모함 보유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지난 6일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 이즈모호가 진수했다. 14대의 헬기가 뜨고내릴 수 있는 평갑판에 기준배수량 1만9500t급인 이 배를 놓고 일본은 “헬기용 호위함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기준배수량 2만t 이상을 정규항공모함으로 보기 때문에 기준에 약간 미달하는 배수량을 내세웠다. 하지만 F-35B 등 수직이착륙기용 엘리베이터까지 갖추고 있어 향후 일본이 F-35B를 도입하면 충분히 항공모함으로 운용이 가능하다.
중국 언론은 “사실상의 항공모함”이라며 “군국주의로의 회귀”라고 비난했다. 일본이 사실상 항공모함을 만들어놓고, 항모 보유를 금지한 자국 평화헌법의 제한을 피하기 위해 편법을 썼다는 것이다. 이즈모는 일본이 1930년 중국을 포격했던 순양함의 이름과 같아 중국을 더욱 격앙시켰다. 이에 이즈모호 진수식 다음날인 7일 중국은 4척의 해경선을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해역에 보내 27시간가량 무력시위를 벌였다.
주변국들이 항모경쟁에 뛰어들면서 국내에서도 항공모함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국군은 초대형 상륙함인 독도함을 보유하고 있다. 독도함은 배수량 1만4500t에 길이 199m의 갑판을 갖췄으며 6대의 헬기가 동시에 뜨고 내릴 수 있다. 태국이 보유하고 있는 수직이착륙기 탑재 경항공모함 ‘샤크리 나루벳’보다 규모가 커 일각에서는 사실상 경항공모함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독도함이 경항공모함으로 활용되려면 함수에 스키점프대처럼 생긴 갑판을 설치하고 수직이착륙기를 탑재해야 하는데 현재 그런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경항공모함으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단순한 상륙작전 지원 외에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다목적 상륙함이 정확한 표현이라는 평가다.
진짜 항공모함을 건조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된다. 대체로 항모 건조비용은 9만톤급 이상의 대형은 5~8조원, 3~4만톤 급 중형은 2~3조원정도, 그 이하도 조단위의 돈이 든다. 지난 2006년 진수된 미국의 조지부시호는 약 7조원을 들여 건조됐다. 연간 유지비만 3천억원에 달한다. 항모를 호위할 전함들과 항모에 탑재될 함재기까지 고려하면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올라간다. “시퀘스터 등 재정압박으로 2~3척의 항공모함을 줄일 수도 있다”는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의 말이 괜한게 아니다.
주변국들이 경쟁적으로 항공모함을 취역시키는 상황에서 넋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현재 정부는 2018년 취역을 목표로 독도함에 이은 두번째 상륙함을 도입할 예정이다. 후속 함정의 만재배수량은 2만t이 넘어 독도함보다 크며 스키점프대 갑판을 만들어 유사시 경항공모함으로 운용할 수 있게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김대영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현실적으로 항공모함을 도입할 수 없다면 새로 건조되는 대형 상륙함에 F-35B와 같은 수직이착륙기를 탑재하는 것도 방법이다”고 강조했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한국은 이미 항공모함을 사들인 적이 있다. ‘영유통’이라는 민간 무역회사가 1994년 러시아 극동함대에서 퇴역한 기준배수량 3만7000t의 핵추진 항공모함 2척을 러시아 콤파스사(社)로부터 매입했다.
영유통이 사들인 노보로시스크호와 민스크호는 지난 79년과 84년 각각 러시아 극동함대에 배치됐던 최신형 핵추진 항공모함으로 미 태평양함대의 엔터프라이즈호와 미드웨이호등과 대치했다. 소련 해체 후 경제사정이 극도로 나빠지자 러시아는 연간 1억5000만달러에 달하는 유지비를 댈 수 없다는 이유로 1992년 이 항공모함들을 러시아 해군에서 퇴역시킨 후 국제시장에 ‘매물’로 내놓았다.
최신형 항공모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약가격은 각각 37억원, 34억원에 불과했다. 이유는 러시아가 이 항공모함의 주요 무기와 전자장비 등을 제거하고 t당 170달러의 고철가격으로 팔았기 때문이다. 당초 러시아는 군사용으로 매각하려 했지만 중국, 일본 등의 반대 때문에 고철용으로 판 것이다. 영유통은 이 항공모함들을 부산의 해체조선소에서 4~5개월 동안 대형크레인과 해체장비를 동원해 200t급 이하의 작은 덩어리로 분리해 국내 철강업체에 판매하고 남는 양은 해외로 수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한국 환경단체들이 “항모의 원자로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환경이 오염될 수 있다”며 한국에서 해체하는 것을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이에 영유통은 진해에서 비밀리에 노보로시스크호만 해체하고 민스크호는 중국에 매각했다. 중국에 팔려간 민스크호는 이후 광둥성 선전시에서 해상 테마파크로 다시 태어났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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