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양산... 오바마케어의 역설

한국경제 2013. 9. 2. 14:39


국민의 건강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미국 건강보험개혁법(오바마케어)이 비정규직 양산이라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 미국의 저소득층과 중산층에 혜택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법안이 오히려 이들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0년 3월 승인된 오바마케어 법안에 따르면 정규직 근로자(주당 30시간 이상 근로)를 50명 이상 고용하고 있는 고용주는 의무적으로 이들에게 건강보험을 제공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근로자 한 명당 2000~3000달러의 벌금을 내야 한다. 기업으로선 적지 않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당장 기업들은 비용 부담을 덜기 위해 정규직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늘릴 태세다. 당초 내년 시행 예정이었던 이 의무 조항은 기업들의 반대로 1년 미뤄져 2015년 1월 시행될 예정이지만 기업들은 벌써부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한국인 동포가 설립한 미국의 대표적인 패션 브랜드 포에버21은 최근 재고관리, 판매, 매장 유지 근무자 등의 근무시간을 29.5시간으로 줄일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근로자별 노동 시간을 오바마케어 기준선인 30시간 아래로 조정해 건강보험 부담을 지지 않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3만명의 정규직 근로자들이 시간제 비정규직 근로자로 전환될 전망이다.


패스트푸드 업체 등 외식업체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21개의 서브웨이 샌드위치 지점을 운영하는 로런 굿리지는 “오바마케어의 비용 부담 때문에 근로자들의 노동시간이 29시간을 초과하지 않도록 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10년 넘게 일하고 있는 루크 퍼팩트는 “노동 시간이 줄어들면 소득도 줄어들 것”이라며 걱정했다.


기업들의 이 같은 움직임에 제이슨 퍼먼 백악관 경제자문 위원장은 “일시적 해프닝에 불과하다”며 “법안에 구조적인 문제는 없다”고 말했지만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다. 비슷한 현상이 기업뿐 아니라 학교와 지방정부에서까지 나타나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주의 공립대학인 세인트 피츠버그대와 조지아주의 조지아 군사학교 등은 청소부나 경비원은 물론 시간제 강사들의 근무시간까지 30시간 아래로 조정했다.

지방정부들도 노동 시간 감축에 동조하고 있다. 코네티컷주 미들타운 카운티와 플로리다주 브리바드 카운티는 건강보험료 부담 때문에 이미 상당수 직원들의 노동 시간을 30시간 아래로 조정했다. 위스콘신주 치페와 카운티의 프랭크 파스카렐라 행정관은 “16만3000달러의 건강보험료 부담을 피하기 위해 75%의 직원들을 시간제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필립 노프트싱어 CBIZ 고용서비스부문 회장은 “기업들이 건강보험 부담을 피하기 위해 직원들의 노동 시간을 하향 조정하면서 지난 7월 미국 평균 노동 시간은 6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당초 2014년 시행 예정이었던 고용주의 건강보험 부담 때문에 2013년 비정규직 고용이 급격히 늘었기 때문이다. 


 하이디 시어홀즈 미국 경제정책연구소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노동 시간이 줄어든 만큼 임금도 같이 줄어 주당 40시간 노동을 기초로 하는 중산층의 소득 수준이 악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 오바마케어 법안


미국의 건강보험개혁법으로 전 국민의 건강보험 가입 의무화를 골자로 한다. 현재 4500만명에 달하는 건강보험 미가입자 수를 줄이고 턱없이 높은 의료비를 낮추기 위한 오바마 정부의 핵심 정책이다. 정규직 근로자 50명 이상 고용 기업은 종업원의 보험료 대부분을 지원해야 한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 2013.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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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그림자' 中 스모그…기대수명 5.5년 단축

한국경제 2013. 8. 7. 16:43




중국의 고사 중 ‘귤화위지(橘化爲枳), 남귤북지(南橘北枳)’라는 말이 있다. 귤이 화이허강(중국 동부 화북지방과 화동지방을 가르는 강) 남쪽에서 나면 귤이 되지만, 화이허강 이북에서 나면 탱자가 된다는 말로 화이허강 남북의 토양과 기후 차가 크다는 의미다. 그런 화이허강이 사람의 수명마저 좌우할지 모르겠다. 화이허강 북쪽의 스모그가 사람의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9일 중국의 스모그가 사람의 평균 기대수명을 5.5년 단축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중국 칭화대·베이징대, 이스라엘 헤브루대 연구팀의 공동연구 결과 중국 동북부지역에 만연한 유독성 스모그가 기대수명을 단축시킬 뿐 아니라 폐암과 심장마비, 뇌졸중 등의 발생 빈도를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국립과학원 회보에 실린 이번 연구 결과는 중국의 화이허강을 기준으로 북부와 남부지방 거주민들을 분석한 것이다. 겨울철 추위가 심한 화이허강 북부의 경우 난방 연료인 석탄을 무상으로 지원하는 정부 정책 때문에 대기오염 정도가 남부보다 훨씬 심하다.


연구진은 1981~2000년의 대기오염 데이터와 1991~2000년의 주민 건강 데이터를 비교 분석한 결과 대기중 부유물질이 ㎥당 100㎍ 증가하면 평균 기대수명이 3년 감소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화이허강 북부와 남부 지방의 대기중 부유물질 농도 차이는 ㎥당 185㎍가량으로 이를 환산하면 5.5년의 기대수명 차이가 발생한다. 이런 기대수명 감소는 이 지역 노동인구의 8분의 1가량이 줄어드는 여파를 가져온다.


논문의 공동저자인 마이클 그린스톤 MIT 교수는 “이는 정부 정책이 의도치 않은 결과를 불러온 대표적 사례”라며 “정부 정책으로 보건비용이 급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동북부 지방에서 갈수록 악화되는 유독성 스모그는 지난 1월 베이징의 대기오염 농도가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국가 이슈로 떠올랐고, 시민들이 공기청정기와 마스크를 사재기하는 사태를 야기했다.


리홍빈 칭화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대기오염이 인간의 생명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며 “정부가 경제성장을 희생하더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 2013.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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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3D 프린터로 만든 총기'

한국경제 2013. 8. 7. 16:40





국내에서 3차원(3D) 프린터를 이용한 사실상의 총기(사진)가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지난 4일 미국 텍사스의 비영리단체 디펜스디스트리뷰티드가 ‘해방자’라는 이름의 3D 프린터용 권총 설계도를 공개한 지 열흘 만이다. 프린터와 설계도만 있으면 누구나 총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입증돼 파장이 예상된다. 

3D 프린터 생산업체인 오브젝트빌드는 15일 국내 최초로 3D 프린터를 이용해 총기를 만드는 과정을 공개했다. ‘해방자’의 설계도 파일을 이용해 작업을 진행했다. 현재 설계도는 미국 정부의 삭제 명령에 따라 홈페이지에서 내려진 상태지만 이미 10만명 이상이 내려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권총 제작은 경기 안양시 오브젝트빌드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3D 프린터 ‘윌리봇’과 연결된 노트북에서 권총 설계도 파일을 실행해 인쇄 버튼을 누르자 윌리봇이 윙윙 소리를 내며 작동했다. 플라스틱 원료가 분사되는 3D 프린터의 노즐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유리판 위에 플라스틱 구조물을 층층이 쌓아 올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쌓여 가는 플라스틱 덩어리는 차츰 총기 부품의 형태를 갖춰갔다. 10분 만에 완성된 부품은 권총 내부에 장착하는 용수철의 일종이었다. 작은 부품은 10분, 부피가 큰 총열은 3시간, 총기 몸체는 9시간 정도 걸렸다. 

인터넷에 게재된 ‘해방자’ 사진을 참고해 완성된 부품들을 조립했다. 모두 16개 부품 중 15개가 3D 프린터로 만들어졌다. 전체적으로 걸린 시간은 하루 정도였다. 격발장치인 공이는 유일하게 금속으로 설계됐으나 총기 제작을 금지하는 국내법 때문에 제작하지 않았다. 공이는 철물점 등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이만 달면 총을 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발사실험에 성공했다. 

권도혁 오브젝트빌드 디자이너는 “예전에 설계됐던 3D 프린터용 총기는 강선이나 용수철 등 많은 부품이 금속으로 제작됐지만 이번 제품은 공이를 제외한 모든 부품이 플라스틱”이라며 “누구나 총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3D 프린터는 현재 인터넷 카페 등을 중심으로 100만원 정도에 팔리고 있다. 

3D 프린터로 만든 총기가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나온다. 쉽게 만들 수 있고 총알을 넣어 발사하면 인체에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금속탐지기로 적발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양=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 2013.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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