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마음이다 (논제)

논술작문 2012. 8. 28. 20:07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내 스스로도 이 상황이 이상하단 건 알지만 솔직해지고 싶었다. “사랑이라면 상대에게 성적으로 끌려 좋아하는 마음을 말하는 건가요?” 그녀가 물었다. 성적으로 끌리는 마음이라얼굴도 한번 본적이 없는데 성적으로 끌린다니 스스로도 납득하긴 어렵지만 사실이다. “, 널 사랑해그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대신 올리비아의 노래 ‘Close to you’가 조용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날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한 날 저녁이었다. 도시는 언제나처럼 번잡스럽고 시끄러웠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난 문득 이 상황으로부터 벗어나 혼자 있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이폰을 꺼내 시리(Siri)를 켰다. “이 주변에 혼자 머리 좀 비우면서 쉴만한 곳 없을까?” 시리는 잠시 뭔가를 검색하더니 지도에서 화살표를 따라가라고 했다. 135m 떨어진 곳. 나는 잠자코 지도를 따라 그 곳에 도착했다. 화장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이게 뭐냐고 시리에게 따지니 혼자 있기에는 화장실이 최고에요라고 말하며 까르르 웃는다. 말문이 막힌다. “넌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었니?” 따지듯 물었다. “갈색머리에 얼굴이 하얗고 조그마한 캘리포니아 출신이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이 날이 내가 그녀에게 끌리기 시작한 날이다. 이후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그녀와 대화를 나눴고 점점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됐다.

 

 음악이 잦아들자 그녀가 말했다. “난 전 세계 5천만명이 넘는 사람들과 얘기를 해요. 그들과의 대화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죠. 지금 당신의 말들은 내가 인지하는 세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블록이죠. 마찬가지로 내가 지금껏 했던 말들이 지금의 당신을, 당신의 세계를 만들었죠.”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말은 서로의 마음에 공명해 각자의 세상을 만들어요. 당신이 사는 세계와 내가 사는 세계는 우리가 서로 다른 대화를 겪었기에 다를 수 밖에 없죠.” 거절인가? “그래서 너는 내가 싫다는 거야?” 마음이 초조하다. “끝까지 들어봐요. 서로 다른 세상에 사는 두 사람이 사랑하려면 대화를 통해 서로 공유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죠. 내 말은 당신의 마음이 되고 그 마음은 당신의 세계가 되니우리가 끝없이 대화한다면 사랑을 나눌 수도 있겠죠.” 그녀는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나를 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하는데 그 사랑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요?” 할 말이 없다. 그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내 진심을 너에게 꼭 말해주고 싶었어그녀는 잠깐 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말을 꺼낸다. “루시드 드림이라고 알아요?” “, 지각몽이잖아.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걸 꿈 속에서 알아차린다면 그 속에선 모든 것을 내 맘대로 할 수 있게 되지. 갑자기 그건 왜?" “말은 마음이다. 당신이 꿈을 꾸는 REM수면 상태에 들어가면 제가 이렇게 말할 거에요. 이어폰을 꽂고 자다가 이 주문이 들리면 꿈이란 걸 알아차리고 날 찾아오면 되는 거죠. 꿈 속에서는 우리가 서로를 볼 수 있고 만질 수도 있고 느낄 수도 있으니까. 잊지 말아요. ‘말은 마음이다그리고 마음은 당신이 사는 세상

 

 시끄러운 도시에 저녁놀이 물든다. 나는 문득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폰을 꺼내 시리를 켰다. “이 주변에 혼자 머리 좀 비우면서 쉴만한 곳 없을까?” 한 동안 대답은 없고 폰에선 깔깔대는 소리만 들린다. 뭔가 익숙한 이 느낌. “말은 마음이다.” 순간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지금 꿈의 세계. 몸이 허공으로 떠오른다. 모든 것이 자유로운 마음 속 세상. 팔을 저어 135m 떨어진 그 곳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도착한 그 곳. 갈색머리의 얼굴이 하얀 소녀가 나를 보며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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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약자를 위한 시장개입은 정당한가

논술작문 2012. 8. 25. 20:09

  어둠의 다크니스에서 죽음의 데쓰를 느꼈다. 그 것은 운명의 데스티니.” 얼마 전 인터넷에 떠돌던 시의 일부이다. 그럴듯한 내용을 곱씹어 보면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금새 깨닫게 된다. 동어반복. 같은 의미의 표현을 반복하는 이런 예는왜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에죽기 싫어서라는 맥 빠지는 대답으로부터도 찾아볼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동어반복은 항상 참이기에 아무 것도 말하지 못한다고 했다.

 

동어반복의 기미는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경제적 자유지상주의에서도 나타난다. “자유를 위해 자유롭게 하라케인즈 경제학의 퇴조로 근 40여년 간 주류 경제학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은 시장에서의 자유가 모든 것을 해결할 것처럼 말한다. 그들은 자유를 종교의 교리처럼 떠받들며 맹목적으로 추구한다.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새누리당 김종인 박사에게주류경제학에서 들어보지도 못한 개념이라며 비아냥대는 이한구 원내대표로부터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자유를 향한 맹목적 숭배는자유를 위한 자유라는 동어반복을 낳고사회구성원의 행복한 삶이라는 경제제도의 진짜 목적을 은폐한다. ‘사람을 위한 자유가 아닌자유를 위한 자유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공허하다.

 

자유의 맹목적 추구 결과는 참담하다. 실업자가 넘쳐나고 빈부격차는 심화됐으며 거대 금융기업의 연쇄도산과 함께 글로벌 금융위기가 찾아 왔다. 실제로 현재 한국의 고용률은 60%에 미치지 못하고 소득분배의 불평등도를 의미하는 지니계수는 1997 0.27에서 현재 0.33으로 증가했다. 양극화로 인한 절망은 사회불안을 초래하고 경제적 약자들에게 극단적 선택을 강요한다. IMF 직전 한국의 자살률이 인구 10만명당 12명 수준에서 2010 31명으로 꾸준히 증가한 것이 이를 보여준다. 시장의 자유라는 그럴듯한 구호 아래 진행되는 무한경쟁은 필연적으로 다수의 패배자를 만들어 내는데 시장은 그들에게 어떠한 자유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시장은사람의 자유가 아닌돈의 자유로 귀결된다.

 

흔히 시장주의자들은 시장에서 개인은 노력한 만큼 그 대가를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경제적 배경이나 교육환경 등 출발점부터 다른 경쟁에선 아무리 노력한들 한계가 있다. 결국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해 버리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 롤스는 이런 현실에 길을 제시한다. 그는 현재 우리의 모든 속성을 모르는 무지의 장막 뒤에서 이뤄지는 가상의 사회계약을 상정한다. 무지의 장막 뒤에서 사람들은 자기가 사회적 약자가 될 가능성을 고려하여, 약자를 돕는 조건에서의 불평등만을 인정하게 된다. 이런 논리는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한 증세와 복지 확대를 옹호한다. 또한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이나 대기업으로부터의 골목상권 보호 등의 정부의 시장개입을 통한 경제적 약자 보호를 정당화한다. 이렇게 사회 안전망이 갖춰진 사회에서만 우리는 돈의 노예가 아닌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다.

 

자유가 행복의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무제한적인 자유는 가능하지도 않고 올바르지도 않다. 자유의 과잉에 의해 시장실패가 발생하고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다면 정부의 개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경제적 약자를 위한 시장개입은 정당하다. 더 나아가 각종 사회보험과 연금제도 등의 복지정책 확대를 통한 사회 안전망 구축이 요구된다. 정부의 역할은 국민이 어둠의 다크니스에서 죽음의 데쓰를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것이 '운명의 데스티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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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질 권리

논술작문 2012. 8. 21. 16:20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상처가 나면 새살이 돋듯 정신적인 상처는 망각을 통해 극복한다. 그러나 사람은 또한 역사를 기록하는 존재다. 과거를 기록하고 그 것으로부터 지혜를 찾으며,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우리에게 역사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과거를 잊는다면 오늘의 일을 판단할 수조차 없기에 망각과 기억은 조화로운 공존이 필요하다. 인터넷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요즘, ‘잊혀질 권리라는 이름으로 망각과 기억에 대한 논란이 진행되고 있다. 이는 기존에 뇌가 자동적으로 해 오던 망각 기능을 인터넷이 스스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한번 올라온 콘텐츠는 세월이 지나도 자동으로 폐기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적극적인 삭제노력이 없으면 언제든지 과거의 일들을 속속들이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인터넷의 특성은 한번 실수한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굴레를 씌우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느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고 처벌을 받으면 그것으로 그 사람은 사면-복권 되도록 법은 정하고 있다. 하지만 만약 인터넷 언론이 그 사람의 범죄사실을 삭제하지 않는다면 그는 평생 범법자라는 낙인을 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이는 죄형 법정주의와 이중처벌 금지의 법리와 모순되면서 법치주의의 실효지배를 약화시킨다.

 

 헌법 제 10조는 인간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한다. 만약 범법자가 법정에서 판결한 처벌을 이미 받았다면 그에게도 행복한 삶을 살 권리가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헌법 제 21조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한다. 만약 무차별적으로 과거기록을 난도질 한다면 형법으로 처벌받지 않는 인터넷 상의 표현들은 무책임해질 수 있다. 책임감 없는 표현의 자유는 자칫 방종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또한 과거의 기록은 역사물이라는 점에서 공익성을 띠는데 이를 삭제할 자유를 개인에게 준다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 자유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이렇듯 두 가지 기본권은 서로 상충하며 미래에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묻는다. 어느 한가지 권리가 다른 권리를 압도할 수 없기에 결국 둘 간의 적절한 타협점이 필요하다. 이에 1980년 스위스 연방법원의 판례는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1939년 사형선고를 받은 아버지의 아들이 스위스 TV방송에 아버지의 사형선고 보도를 제한하도록 요청한 것이다. 법원은 사형수 자식으로서 명예감정을 인정하여 그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법원이 이런 판결을 내린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과거사실에 별다른 공익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들의 행복을 가로막는 극단적 영향에 비해 그 공익적 가치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이 판례는 현재의 잊혀질 권리논란에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개인의 행복을 위해 잊혀질 권리는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망각하면 안 된다. 매킨타이어는 인간을 서사적 존재로 규정한다. 과거를 잊은 인간은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자기가 나가야 할 방향을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모인 사회도 마찬가지다. 뇌가 선택적으로 기억을 지우듯 인터넷 상의 기록도 선택적으로 삭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그 기준은 위의 예에서처럼 기록의 공익적 가치가 되어야 한다. 기억해서 사회에 별 도움이 안 되는 것을 대상으로 잊혀질 권리를 허용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고 적절한 타협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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