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군인

논술작문 2012. 7. 31. 00:53

풀이 질기다. 질경이. 이름처럼 잘 뽑히지 않는다. 그 옆으로 보드라운 강아지풀과 해맑은 민들레가 기다리고 있다. 호미에 뿌리가 찍혀 나와 내던져진다. 평소 정겹던 들풀은 잡초라는 이름으로 제거대상이 됐다. 지쳐가는 호미질에 땀이 흐른다. 벌써 두 시간째 쪼그리고 앉아 풀을 뽑고 있다. 30도를 훌쩍 넘는 8월의 땡볕에서 나는 왜 풀을 뽑고 있는가. 쪼그려 앉은 다리가 저려오고 팔의 힘도 빠져나간다. 멀리 나무 그늘에선 최중사와 김병장이 한가롭게 우리를 바라보며 부채질을 하고 있다. 노예. 지금 내 모습에서 나는 노예의 모습을 떠올린다. 주인은 놀고 노예는 일을 한다. 그들은 놀고 나는 일을 한다. 무언가 잘못됐다.

 

다음 주에 공군 본부에서 투스타가 부대를 방문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부대 내의 온갖 풀들을 뽑아야 한단다. 풀은 뽑아도 뽑아도 끝이 없고 몸은 너무 힘들다. 나는 호미를 내려두고 머리에 쓰고 있던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나무 밑에서 놀고 있던 최중사에게 갔다. “지금 풀을 뽑는 일이 나라를 지키는 일입니까?” 나는 자갈밭 사이사이로 자란 들풀을 뽑는 것이 국방이냐고 물었다. 그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다그쳤다. “군대서 까라면 까는거지 뭔 말이 많아? 그렇게 하기 싫으면 너 혼자 들어가 쉬어!” 말문이 막혔다. 그렇지만 동기들과 후임들이 힘들게 일하는데 나만 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를 노예로 만드는 전략이 아닐까 생각하며 조용히 호미를 들고 민들레 줄기를 꺾었다. 하얀 진액이 흘러나왔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군대의 강제사역이 노예노동과 같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누가 시키기 전에 시킬만한 일들을 찾아 알아서 하곤 했다. 남이 강제로 시켜서 하는 것은 내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기에 차라리 시키기 전에 선수치는 것이 자유의지를 지키는 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조차 부질없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누가 내게 강제로 일을 시키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 일을 먼저 찾아서 하는 것은 이미 자유의지와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상관에게 그저 생각만으로도 조종이 가능한 로봇에 불과했던 것이다.

 

결국 나의 노예해방운동은 실패로 끝났다. 그저 다른 노예들 틈에 끼어 최대한 나를 숨기며 죽은듯 살았을 뿐이다. 분명한 건 개인의 노동을 국가가 강제한다면 나를 국가가 소유하는 것이 되고 개인은 국가의 노예로 전락한다는 것이다법은 군인의 자유가 국방의 의무에 의해 제한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전투훈련이 아닌 관습적인 강제사역이 과연 나라를 지키는 일인지는 의문이다. 내가 보기에 그 날의 풀 뽑기는 상관의 눈에 들기 위해 하급자의 노동력을 부당하게 이용한 권력남용에 가까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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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논술작문 2012. 7. 23. 16:39

  영화 <다크나이트>에서 악당 조커는 범죄조직으로부터 훔친 산처럼 쌓인 돈을 모두 불태워 버린다. “중요한 것은 돈이 아냐, 메세지지불타는 돈을 두고 하는 그의 말은 돈을 태우는 행위 이면의 메세지에 주목하게 한다. 경제학의 '신호보내기' 이론은 광고를 통해 이를 설명하는데 막대한 광고비가 들어갈수록 해당 제품이 잘 팔려야 기업은 생존가능하다. 그렇기에 아예 돈을 다발로 태우는 광고는 제품의 품질에 대한 기업의 자신감을 보여주고 소비자들이 주저 없이 그 제품을 사게 만든다. 이러한 신호보내기는 대학졸업자의 고용시장에서도 적용된다. 비싼 등록금 내고 배운 것은 더 이상 중요치 않다. 명문대 졸업생은 그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끈기, 성실성, 학습능력을 갖췄다는 메세지가 중요하다기업들이 원하는 개인의 역량 또한 대체로 이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인재를 골라내는 저비용의 효율적인 방법은 출신대학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습은 고착화된 학벌주의를 낳았고 이런 세태를 타파하자며 최근 국공립대학 통합네트워크가 대선의 주요공약으로 떠오르고 있다.

 

  야권에선 부인하고 있지만 사실상 국공립대학 통합네트워크 방안은 서울대 폐지를 정조준 하고 있다. 2003년 경상대 정진상 교수가 민주노동당 기관지 <이론과 실천>에 처음 발표했을 때부터 이 방안은 줄곧 서울대의 위상을 끌어내려 고착화된 SKY 학벌체제에 구멍을 내려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었다.  현재의 학벌구조가 무너지려면 서울대부터 잡아야 한다는 발상은 언뜻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학벌개혁이 정당하며 실효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사회는 계층화 과정을 통해 개인에게 역할을 분담시킨다. 문제는 대학진학률이 83%가 넘도록 일반화된 나라에서 대학의 서열이나 위계 없이는 사회계층화 과정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할 방법이 딱히 없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실력에 따라 역할을 분배하자고 하는데 실력에 따른 분배는 결국 실력에 따른 대학진학과 별 다를바 없는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공정하게 실력만을 반영한다는 각종 국가고시 합격률 순위가 대학순위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이를 방증한다. 실력을 통한 공정성이라는 말이 기존 학벌체제를 지탱하는 수사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결국 대학서열의 존치 외에는 사회계층화에 정당성을 부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대가 폐지 돼도 기존의 연고대가 서울대의 위치를 차지할 것이고 언제나등 대학은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 때마다 학벌개혁을 위해 일등대학이 희생당해야 한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는 통합네트워크의 지향점이 서열구조 타파가 아니라 주요대학들이 독점하고 있는 사회적 자원들의 재분배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 3급 이상 고위 공무원들의 47%가 SKY대학 출신이고 법조계 부장판사 이상 비율은 80%를 넘어선다. 이는 단지 대학 순위변동이 능사가 아니라 공직 등의 사회적 자원의 재분배를 위한 직접적인 제도의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합네트워크와 함께 논의되고 있는 출신학교의 지역에 따른 공무원, 전문직 국가면허의 지역균형 인재선발제도는 이런 점을 놓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제도는 국공립대의 경쟁력을 높일 뿐 아니라 인재들의 지역분산을 통해 국가 균형발전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단순한 서울대의 폐지가 아니라 경쟁의 장을 넓혀 사회적 자원들이 보다 균등하게 배분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개혁들이 성공할 수 있으려면 사회 전반의 구조개혁과 인식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학벌의식이 강한 이유는 학벌에 따른 소득격차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할 것은 부자증세와 복지제도 확충을 통한 사회 안전망 확보와 사후 소득격차 완화이다. 이러한 제도의 개혁이 선행될 때에야 입시위주 교육, 무분별한 대학진학, 청년실업 등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소득격차의 완화는 직업의 귀천에 대한 집착보다 자기가 정말 잘하고,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국가적으로도 인적자원의 효율적 배치가 가능해진다. 실제로 덴마크나 핀란드 등의 복지국가에서는 벽돌공이나 청소부들도 자기 일에 자부심을 느끼며 사회적으로도 존중 받는다고 하니 말이다. 이는 우리의 학벌개혁이 비단 서울대 없애기나 서열구조 개편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학서열 자체의 문제가 아니고 서열의 존재가 불가피하다면, 굳이 서울대를 통합 네트워크 안에 넣어야 할까? 서울대의 위상은 나머지 국공립대학보다 월등하기에 서울대와 동문들의 반발이 거셀 것이 분명하고 실현가능성도 희박하다. 또한 서울대 폐지에 해당하는 기존 안의 고수는 대학의 자율성을 해치고 백 년 가까이 되는 대학의 문화와 학풍을 말살한다. 국립대이기에 정부가 맘대로 할 수 있다는 발상은 폭력에 가까워 보인다. 차라리 스스로 원하는 국공립 대학들이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정부가 집중투자-육성하는 방식이 대학 공교육 경쟁력 강화의 취지에도 맞을 것이다. 만약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가 정부 의도대로 성공한다면 자연스레 학벌체계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고 기존의 명문대들도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날이 올 것이다. 결국, 진짜 중요한 것은 대학서열이 아니라, '서열에 집착하게 만드는 사회구조 개혁이 먼저'라는 메세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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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김정은 비판 비교 2

논술작문 2012. 7. 20. 21:16

 당신의 몸뚱어리는 그저 유전자의 탈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옥스포드대 리처드 도킨스 박사는 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여러 데이터들과 과학적 근거들을 가지고 전개하는 그의 이론은 다윈 이후 진화생물학계가 전진할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모든 생명체는 자기 유전자와 닮은 유전자를 최대한 많이 퍼뜨리고 존속시키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그의 이론은 여러 논란 속에서도 수많은 증거들을 바탕으로 학계의 정설로 자리잡아 가는 중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박정희의 최대목표는 박근혜를 만드는 것이고 김정일의 목표는 김정은을 만드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김정은을 만드는 건 그의 할아버지 김일성의 목표였을지도 모른다. 국가권력의 정점에 서려는 두 사람에겐 그 아버지들의 권력의지가 유전자를 타고 이어지고 있다. 혈연이란 이름으로 그들을 관통하는 건 유전자를 비롯한 여러 유산들이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 김정일의 아들 김정은. 두 독재자의 자식이 그 아버지의 자리를 승계하면 안 된다는 비판은 마땅히 아버지와 자식의 연결고리를 찾아가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장 원초적인 연결고리인 유전자는 자식에게 외모를 물려준다. 김정은은 아버지를 닮음과 동시에 놀랍게도 젊었을 적 김일성을 닮았다. 닮은 외모는 그가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이미지를 활용해 내부를 결속하고 권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러한 이미지 정치는 어릴 적 아버지 곁에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가녀린 딸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는 박근혜에게서도 나타난다. 닮은 외모를 통해 아버지의 이미지를 차용하려는 시도는 아무런 업적 없이 권력을 얻으려는 두 자식의 한계를 반증한다. 능력의 검증이 아닌 과거 지도자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두 사람에 대한 비판은 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서라도 타당하게 들린다.

 

  유전자 수준을 넘어 자식들에게 남겨진 것은 재산이다. 박근혜는 아버지로부터 정수장학회를 비롯해 육영재단, 영남재단 등의 재산을 물려받았다. 권력을 승계한 김정은이 김정일로부터 천문학적인 재산을 물려받았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이 재산이 독재체제 하에서 불법적으로 축적되었거나 인민의 피땀을 착취한 결과라는 데 있다. 이런 재산으로 호의호식한 두 사람의 정치적 정당성에 대한 공격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재산 외에도 아버지가 남긴 것은 그의 추종세력이다. 김정은을 후계에 옹립한 것은 김정일 체제의 핵심인물이었던 장성택과 최룡해 등이며 그들은 현재 김정은이 제창한 유훈통치의 상징적 인물이다. 문제는 박근혜의 추종세력이 상당수 군부독재에 결탁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박근혜가 독재자가 될 위험은 없다고 하나 추종세력과 현재의 불통 이미지를 고려했을 때 우려할 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자칫 독재 추종자들에 의해 세워진 정부의 꼭두각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아버지에 대한 그녀의 평가요구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아버지의 독재가 구국의 결단이었다는 그녀의 발언은 우리의 우려가 공상이 아님을 보여준다.

 

 아버지들은 자식들에게 사회적 지위 또한 남겼다. 김정일은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식 지명하고 죽기 전부터 권력이양의 정지작업을 함으로써 북한 최고 지도자 지위를 직접적으로 상속했다. 비록 권력을 직접 상속받는 것은 아닐지라도 박근혜 또한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 하는 수많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간접적 권력 승계의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 본질적으로 박근혜와 김정은의 권력에 대한 접근방식은 다르지 않다. 모두 아버지의 유산과 후광을 이용한 것이며 자신의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은 사람이 아버지의 그림자를 벗어나기는 어렵다. 지도자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능력을 인정받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는 불공평하다. 문제는 양 체제의 법과 제도가 두 사람의 권력승계 시도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모든 선택은 국민의 결정에 달렸다. 우리 삶의 절대적 기반인 국가마저 죽은 독재자의 유산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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