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근혜 김정은 비판 비교 1
우리는 흔히 여론을 선동하는 행위를 일컬어 여론을 ‘조장’한다고 한다. 조장(助長)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맹자가 그의 제자 공손추와 정치에 대해 얘기하다 나온 일화에서 유례됐다. 중국 송나라에 성격이 급한 농부가 살았는데 그가 보기에 그의 논의 벼가 너무 더디게 자라는 것이었다. 이에 불만을 품고 있던 농부는 어느 날 묘책을 냈고 논에 있는 모든 벼를 엄지 손가락 한마디만큼씩 위로 뽑아 당겨주었다. 농부가 늦은 저녁에 집에 들어와 자랑스레 이 얘기를 하자 농부의 아들은 깜짝 놀라 서둘러 논에 가보았지만 벼들은 모두 말라 죽어 있었다. 농부의 기준에서 ‘조장’은 벼가 빨리 자랄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었으나 벼의 입장에서는 죽임을 당한 것이었다. 이처럼 자기 기준으로 섣부르게 남을 재단하려는 태도는 위험하다. 최근 박근혜를 겨냥한 독재자의 딸 대통령 불가론과 김정은에 대한 3대세습 비판 또한 자기 기준으로 섣부르게 남을 재단하는 여론의 ‘조장’이 아닐 수 없다.
근대 자연법 사상은 인간의 기본권으로서 자유를 전제한다. 이러한 자연법의 원리에 따르면 ‘~해도 된다’가 기본이 되며 ‘~하면 안 된다’가 예외가 된다. 이러한 예외는 각 사회가 동의하는 방식과 절차에 따라 정당성을 얻어야만 인정된다. ‘독재자의 딸은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 ‘김정은의 3대세습은 안 된다’ 등의 주장은 모두 각각 사회가 정하는 준거 틀에 따라 그 정당성 여부가 판단되어야 한다. 정치적 경쟁자에 대한 감정적인 여론선동이나 우리와 다른 체제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이 아닌 자연법적 기준 위에 각 사회가 가진 특성을 고려한 합리적인 비판이 요구된다.
인간의 존엄과 자유, 평등의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 대한민국의 헌법은 그 목적이 합리적이다. 이러한 실질적 합리성에 덧붙여 법이 목적달성을 위해 제대로 만들어져 있고 개인이 위법한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절차적 합리성은 획득된다. 실질적 합리성과 절차적 합리성이 모두 확보될 때 개인의 행위는 사회가 동의한 준거 틀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게 된다. 대한민국 헌법이 그 가치실현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제헌 이후 60여년 역사가 잘 보여주기에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한 판단은 박근혜 개인에 대한 법적인 판단에 따른다. 헌법은 개인의 참정권을 보장한다. 40세 이상의 모든 국민은 피선거권을 가질 수 있다는 조항에 따라 박근혜는 대선출마가 가능하다. 헌법 13조 3항은 모든 국민이 자기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연좌제에 대한 헌법상의 금지는 아무리 독재자의 딸이라고 해도 그녀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주장에 아무런 근거가 없음을 보여준다. 또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박근혜가 아버지에게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생각을 핑계로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야권의 주장을 무력화한다. 헌법적 판단에 비추어 볼 때,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은 상대 대권주자에 대한 폄훼에 불과하다.
민족해방, 계급해방, 인민해방을 목적으로 하는 통치이념인 주체사상도 북한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가치로서 실질적 합리성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존에 고수해 오던 인민민주주의 헌법이 1972년에 사회주의 헌법으로 개정되면서 수상체제가 주석체제로 전환되었다. 이는 주석 독재체제를 북한 헌법이 인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독재는 공산주의 사상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로부터 파생되었으며 사회주의 혁명 완수를 위한 그들 나름의 합리적 절차로 여겨진다. 독재에 대한 법적인 인정은 존재하지만 권력세습에 대한 견제장치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기에 김정은의 3대 세습에 대한 법적인 하자는 없다. 혹자는 권력세습이 사회주의 이념과 맞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회주의는 정치제도가 아닌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문제이다. 지금껏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북한체제에 대한 섣부른 비판은 '조장'이 될 수 있다.
나의 기준으로 남을 멋대로 재단하고 비난하는 것은 오만이다. 자유민주주의가 시대정신이 되어버린 오늘날의 한국에서 과거를 독재라고 비난하는 것은 당시의 시대정신을 무시한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근거로 다른 체제를 비난하는 것 또한 다른 가치들에 대한 무지로부터 나오는 아집에 불과하다.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공존하며 경쟁하자. 정말 나쁜 것은 경쟁에서 도태될 것이다. 만약 정말 박근혜가 대통령감이 아니라면 대선에서 낙마할 것이고 김정은의 3대세습이 정당하지 않다면 북한 내부의 반발에 무너질 것이다. 상대에 대한 이해 없이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말고 각자 나름의 방식이 있음을 인정하자. 사회의 발전이 수많은 시행착오의 결과라는 것을 잊지 말고 모든 시도들이 더 나은 사회건설을 위한 것임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논술작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0) | 2012.07.23 |
|---|---|
| 박근혜 김정은 비판 비교 2 (1) | 2012.07.20 |
| 행복 (2) | 2012.07.17 |
| 종북논란에 대하여 (0) | 2012.07.12 |
| 잃어버린 인생 (논제-술) (0) | 2012.07.10 |
글
행복
활짝 창문을 열었다. 한쪽 벽에 붙은 공책만한 창문. 시원한 바람이 별빛을 담아 들어온다. 음악이 조그마한 라디오를 타고 흘러나와 창 밖으로 들리는 전철소리와 뒤섞여 흥겨운 리듬을 만든다. 침대를 제외하곤 간신히 의자를 움직일 정도의 고시원 방은 어느새 화려한 무대가 된다. 속옷만 입은 채 온몸을 흔들며 덩실대는 내 모습은 스페인 그라나다 해변의 플라맹고가 부럽지 않다. 빨라지는 음악에 내 심장소리가 뒤섞일 즈음 내 발과 어깨는 이미 내 의지와 상관없는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행복. 달밤에 손바닥만한 고시원에서 팬티만 입고 춤추는 내가 느낀 것은 광기가 아닌 바로 행복이었다.
첫 번째 대입시험에서 낙방한 나는 홀로 상경해 조그마한 고시원에서 재수를 준비했다. 권토중래의 야망을 품고 내 몸을 뉘인 곳은 바로 창문이 없어 햇볕이 들지 않는 고시원 지하 방이었다. 해를 보지 못하는 그 작은 공간에서 나는 낮과 밤을 분간하지 못한 채, 시간관념을 잃고 곰팡내를 맡으며 홀로 침전했다. 우울증. 불면증. 탈모증. 내가 그 곳에서 겪은 것은 전엔 겪지 못했던 절망이었다. 결국, 나는 5만원을 더 내고 건물 5층의 창문이 있는 방으로 이사하기로 했다. 새로운 나의 보금자리로 모든 짐을 옮긴 후, 내가 한 일은 바로 창문을 활짝 열고 찬바람을 맞으며 춘 달밤의 댄스였다. 오랫동안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하고 당연시했던 창문이 내게 돌아온 순간, 나는 주저 없이 일어나 온 몸으로 그 황홀함을 즐겼다. 인생을 돌이켜 보더라도 이 때보다 더 행복한 순간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내가 재수를 결정한 것은 경쟁에서 패배한 나를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명문대를 합격한 친구들에게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과 부모님의 실망은 내게 견딜 수 없는 무게로 다가왔다. 중·고등학교를 피말리는 경쟁 속에서 다녔던 나의 행복은 저 멀리 대학입시에서의 성공으로 정조준 되어 있었다. 그런 나의 행복은 대입실패와 함께 산산이 부서졌다. 꼭 명문대에 합격해 자랑스런 아들이 되어 돌아오겠다던 나는 출사표 같은 편지를 남기고 부모님 곁을 떠나 노량진 재수학원으로 흘러들어 간 것이었다. 일년 후, 누구나 인정하는 명문대에 합격했다. 하지만 행복은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내가 온만큼 행복은 저만큼 물러나 있었다. 오히려 신기루같은 목표를 쫓아 헐떡이며 달리던 그 수많은 날들이 내 뒤에 전사자들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매일매일 이어지는 학점경쟁이 행복을 속삭이고 취직이라는 관문이 행복을 위한 선결조건이라고 사람들은 떠들어댄다. 하지만 이제 나는 믿지 않는다. 행복은 미래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현재이지 결코 과거나 미래가 아니다. ‘옛날이 좋았지’라고 말하며 과거에 취해있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한 것은 ‘미래에는 행복해질거야’라는 막연한 희망이다.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끊임없이 현재의 행복을 유보한다. 하지만 그 행복은 취직 후에도, 결혼 후에도 오지 않을 것이며 죽음 뒤에도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지금 당장 의자에서 일어날지어다. 창문을 열고 음악에 맞춰 신나게 한판 춤을 추자. 정신 없이 추다 보면 막연한 희망이 아닌, 생의 감각으로서의 행복을 온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논술작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박근혜 김정은 비판 비교 2 (1) | 2012.07.20 |
|---|---|
| 박근혜 김정은 비판 비교 1 (0) | 2012.07.19 |
| 종북논란에 대하여 (0) | 2012.07.12 |
| 잃어버린 인생 (논제-술) (0) | 2012.07.10 |
| 경제민주화의 길 (0) | 2012.07.05 |
글
고딩스토리(10년 전 이야기)
2005년 웃긴대학에 올려 꽤나 흥행했던 작품ㅋ
중화야 기억 나는지 모르겠다만 그 땐 내가 미안했다.
수의사 된 것 축하한다.
'아이디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Master & Slave (0) | 2013.01.23 |
|---|---|
| 존재에 대하여 (0) | 2012.04.24 |
| 가치론의 문제 (0) | 2012.04.24 |
| 노동가치론 비판 (0) | 2012.04.24 |
| 신자유주의의 진짜 문제 (0) | 2012.04.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