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민영화

논술작문 2012. 8. 11. 04:37

영화 로보캅에는 경찰이 민영화 된 디트로이트 시티가 등장한다. 시의 재정압박에 못 이겨 민영화 된 경찰 서비스는 공공성을 잃고 사적 이익을 쫓는 경찰들을 만들어낸다. 시민을 위한다는 사명감을 잃은 경찰들은 도시 치안은 내팽겨치고 자신들의 고용주가 된 거대기업 OCP를 상대로 임금협상에만 골몰한다. 도시의 치안은 엉망이 되고 각종 범죄가 급격하게 증가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이는 민영화의 극단적인 예가 되겠지만 민영화를 하지 말아야 할 부문이 있음을 분명히 말해준다.

 

현 정부 들어 공기업 선진화라는 명분으로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대체로 민영화를 지지하는 편에서는 경쟁을 통한 공공재 가격하락, 경영 효율화, 정부부채 축소 등을 근거로 선진화라는 논리를 편다. 실제로 POSCO, KT&G 등의 공기업들이 민영화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 기업들은 민영화 했을 시 경쟁체제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산업이었다. POSCO 민영화 당시 이미 수입철강들이 국내시장에 진출해 있었고 현대제철, 동국제철 등이 존재했다. KT&G 또한 국내시장이 개방돼 있었기에 찬성론자들이 말하는 경쟁체제가 가능했다. 하지만 현재 정부의 민영화 논의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인천공항이나 KTX는 국가주도의 자연독점기업으로서 경쟁기업이 없다. 자연스레 민영화는 일부 민간자본에게 독점권을 넘겨줌으로써 시장을 왜곡하고 공공 서비스의 가격을 상승시킬 소지가 크다.

 

경영 효율화가 근거가 되기에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6년 연속 세계공항 경쟁력 순위 1위의 인천공항과 매년 안정적인 흑자를 내고 있는 KTX의 경영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결국은 공기업 매각수입을 이용해 정부 재정적자 폭을 줄이려는 의도가 가장 그럴듯하게 보인다. 하지만 현재 우리 정부의 재정적자 폭은 GDP 대비 2% 정도로 다른 OECD 국가들이 10%에 육박하는 점을 미루어 볼 때 매우 건전한 수준이다. 결국 찬성론자들이 내세우는 공공재 가격하락, 경영 효율화, 정부부채 축소의 주요한 세가지 목표는 정당성을 갖기 힘들다. 또한 오랫동안 적자를 보고 있어 민영화가 더 시급한 일반열차 부분을 제쳐 두고, 안정적인 고수익을 내고 있는 KTX만 민영화하려는 시도는 일부 대기업과 정부 고위인사의 배만 불린다는 의혹을 피하기 어렵다.

 

문제는 공기업을 민영화해서 민간자본이 독점력을 가질 경우 그 폐해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맥커리에 매각한 시드니 공항의 이용료는 9배로 치솟았다. 얼마 전 서울 지하철 9호선 요금인상 시도는 민영화의 부작용이 결코 기우가 아님을 보여준다. 사후에 생길 해악을 깊이 생각하지 않은 민영화는 공기업 선진화가 아닌 우리의 공공시설을 사유자본에 포로로 넘겨주는 꼴이 된다. 이를 막기 위해선 장기간에 걸친 여론수렴을 통해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들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투명한 정책결정과정을 통해 국민들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민영화 사업은 정권 말기에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 없이 졸속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국민의 반절 이상이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인천공항, KTX 민영화의 찬성론자 중 일부는 지속적인 기업의 발전을 위한 투자재원 확보 차원에서 지분의 일부를 매각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투자재원은 민영화가 아니라 먼저 막대한 흑자분을 통해 조달하는 것이 순리이다. 수지가 악화되면 그 때 가서 민영화 해도 늦지 않다. 진짜 시급한 것은 지속적인 적자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다른 공기업들이다. 정부가 국가부채 증가의 진짜 범인은 안중에도 없고 오히려 계속해서 수익성 높은 공기업들을 민영화하려 한다면 제사엔 관심 없고 젯밥에만 관심이 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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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논술작문 2012. 8. 6. 22:51

아스팔트 길이 이글거린다. 팔월의 태양은 이미 내 등짝을 벌겋게 태워놓고 있었다. 숨이 막힌다. 패달을 구르는 발은 감각을 잃은 지 오래다. 이마 위로 흐른 땀이 눈에 들어가 따갑다. 입술이 짜다. 길 옆으로 펼쳐진 푸른 바다는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 나는 지금 무얼 향해 가는가. ‘제주도 자전거 여행의 낭만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저 앞사람의 자전거 꽁무니만 쫓아 기계적인 발구름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애초에 여행을 계획한 건 학교 시험으로 지친 심신을 쉬게 하려 한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자유롭게 유유자적하며 제주의 아름다움과 새로운 경험을 통해 여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지에 도착해 한 친구가 제안한 제주도 한 바퀴 완주는 나의 낭만적인 계획을 완전히 뒤집어 엎었다. 완주라는 뚜렷한 목표와 결승점이 생기고 나니 친구들 사이에선 은근한 경쟁심이 생기게 됐고 여행은 경주가 됐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새로운 체험도 없었다. 이미 시험으로 힘들어진 심신을 또 다른 경쟁과 나에 대한 채찍질로 닥달하고 있는 것이었다.

 

바위가 파도에 부서질 때 퍼뜩 정신을 차렸다. 다섯 명 중 꼴지로 달리던 나는 전속력으로 나머지 자전거들을 앞질러 선두에 선 뒤, 갑작스레 자전거를 멈춰 세웠다. 다른 친구들도 나의 갑작스런 행동에 차례로 멈췄다. 모두 너무 힘겨워 보였다. “우리 지금 뭐 하는 거니? 우리가 원했던 게 이런 거였어?” 나의 말에 제주도 해안도로 182km 완주를 제안한 친구는 그래도 한번 세운 목표는 달성해야 하지 않겠냐고 맞섰다. 결국 전체 의견 또한 둘로 갈리었고 해가 저무는 탓에 일단 주변에서 야영을 하기로 했다. 멀리 매운탕집이 보였고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들어갔다.

 

매운탕이 보글보글 끓는 사이 주인집 아저씨 내외와 대화를 나누게 됐다. 여행얘기부터 자식걱정, 학교생활에 이르기까지 제주도 토박이 부부는 우리와 참 통하는 게 많았다. 아저씨는 공짜라며 광어회와 소주를 내왔고 우리도 챙겨온 안주거리를 풀어 밤이 늦도록 이야기 꽃을 피웠다. 우리가 밖에서 텐트 치고 야영할 계획이라고 하니 가게에 빈방이 있다며 공짜로 자고 가란다. 심지어 아침밥도 차려놓을 테니 먹고 가란다. 너무나 고맙다. 말로만 듣던 우리네 인심을 피부로 느낀 순간이었다. 그날 밤 우리 일행은 여행 중에 서로 하지 못했던 속 깊은 얘기를 나누며 쌓였던 갈등을 풀었다. 멀리 파도 소리가 평화롭다.

 

다음 날, 웬일인지 몸이 날아갈 듯 개운했다. 식탁 위에는 잘가라는 편지와 함께 아침밥이 펼쳐져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 여행의 진짜 목적이었는지도 모른다며 서로를 쳐다보며 껄껄 웃었다. 끝내 제주해안 182km를 완주하진 못했다. 하지만 항상 어떤 목표를 세우는 습관이 여정을 전혀 즐겁지 않은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내가 원했던 것은 이미 얻었다. 그날 밤, 매운탕집 부부와 나눴던 정과 친구 사이의 속 깊은 대화가 삭막한 도시의 경쟁에 지쳐있던 나를 힐링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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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사회

논술작문 2012. 8. 3. 14:50

지구상의 거의 모든 사회가 근친상간을 금지한다. 우리 무의식 깊은 곳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 금기는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이 아닌 문화적으로 습득하는 것이다. 이것이 왜 안 되는지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전자의 다양성 추구를 통해 자손의 유전적 결함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유전병을 막는 것만이 아닌 근친혼 금지를 통해 가족제도를 안정시키고 이를 중심으로 한 사회구조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변화를 내포하고 있는 유전적 다양성 추구와 사회제도 지키기의 보수적 성격이 긴장 속에서 공존하는 것. 이게 바로 근친상간 금지의 실체다.

 

다문화 사회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서도 이와 비슷한 맥락을 발견할 수 있다. 다민족 사회는 용인하면서도 다문화 사회는 꺼려지는 것이 한국인의 대체적인 정서다. 각종 사회-경제적 요구에 의해 이민족의 유입은 허용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한국의 색깔을 입히려고만 하지 그들의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거나 더 나아가 그들의 문화를 수용하려 하지는 않는다. 필리핀 며느리가 김치를 잘 담근다고 칭찬하지만 필리핀의 전통음식이 무엇인지는 관심도 없다. 인도인 노동자가 한국말을 잘한다고 신기해 하지만 그들의 언어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살게 해주는 대신 한국문화를 따라야 한다는 문화적 패권주의는 급격하게 유입되는 외부세력에 의해 문화적 주도권이 약화되진 않을지 하는 조바심으로부터 나온다. 결국 근친상간의 예에서와 유사하게 민족적 다양성 추구와 문화적 정체성 수호, 두 가지 키워드가 파열음을 내며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문화적 강요가 이민족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그들이 우리 사회에 융화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융화되지 못한 사람들은 물 위에 뜬 기름처럼 부유하기 마련이다. 이는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각종 사회문제를 발생시켜 사회적 비용을 상승시킨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서로 대립하는 키워드인 민족적 다양성 추구와 문화적 정체성 수호 간의 긴장관계를 해소하는 것이다. 근친상간에 대한 금기는 유전적 다양성을 추구함과 동시에 가족제도를 안정시켜 기존의 사회구조를 수호하는 방식으로 변화와 보수 간의 긴장관계를 해소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민족의 문화를 모두 인정하는 길이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는다면 다민족 사회의 긴장관계 또한 해결되지 않을까?

 

이를 위해선 문화에 대한 인식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 음식문화를 대표하는 김치가 지금의 형태를 갖춘 것은 17세기 초에 일본으로부터 고추가 전래된 이후이다. 일본은 포르투갈로부터 고추를 받아들였고 포르투갈은 고추의 원산지인 중부 아메리카로부터 가져왔다. 멕시코의 매운 음식 문화를 떠올린다면 우리가 자랑스러워 하는 김치도 결국은 다른 음식문화들과의 문화접변을 통해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K-POP도 서양의 음악에 우리의 색깔이 덧입혀져 우리의 독특한 문화를 만든 것이 아닌가. 결국 문화적 정체성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문화적 교류를 통해 변화하는 과정, 그 자체인 것이다.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바뀌고 나면 민족적 다양성 추구는 문화적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닌 정체성의 형성과정 그 자체가 되어버리고 긴장관계는 사라진다. 영어가 세계언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영국과 미국의 정치-경제적 영향력과 더불어 다양한 언어들의 특성을 받아들여 영어가 가진 문화적 저변을 넓혔기 때문이다. 반면 수많은 소수민족의 언어가 사라지고 있는 것은 자기 것만을 고수하여 언어적 고립을 자초한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정체성을 지키려던 노력이 오히려 그들 언어의 영향력을 제한하고 시간이 흘러 정체성을 완전히 소멸시킨 것이다. 결국 우리 문화를 지키기 위해선 다른 문화도 지켜주고 더 나아가 그들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근친상간의 금지가 유전적 다양성 확보를 통해 사회의 번영을 도왔듯 이민족들의 다양한 문화가 한국 문화 발전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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