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논술작문 2012. 7. 23. 16:39

  영화 <다크나이트>에서 악당 조커는 범죄조직으로부터 훔친 산처럼 쌓인 돈을 모두 불태워 버린다. “중요한 것은 돈이 아냐, 메세지지불타는 돈을 두고 하는 그의 말은 돈을 태우는 행위 이면의 메세지에 주목하게 한다. 경제학의 '신호보내기' 이론은 광고를 통해 이를 설명하는데 막대한 광고비가 들어갈수록 해당 제품이 잘 팔려야 기업은 생존가능하다. 그렇기에 아예 돈을 다발로 태우는 광고는 제품의 품질에 대한 기업의 자신감을 보여주고 소비자들이 주저 없이 그 제품을 사게 만든다. 이러한 신호보내기는 대학졸업자의 고용시장에서도 적용된다. 비싼 등록금 내고 배운 것은 더 이상 중요치 않다. 명문대 졸업생은 그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끈기, 성실성, 학습능력을 갖췄다는 메세지가 중요하다기업들이 원하는 개인의 역량 또한 대체로 이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인재를 골라내는 저비용의 효율적인 방법은 출신대학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습은 고착화된 학벌주의를 낳았고 이런 세태를 타파하자며 최근 국공립대학 통합네트워크가 대선의 주요공약으로 떠오르고 있다.

 

  야권에선 부인하고 있지만 사실상 국공립대학 통합네트워크 방안은 서울대 폐지를 정조준 하고 있다. 2003년 경상대 정진상 교수가 민주노동당 기관지 <이론과 실천>에 처음 발표했을 때부터 이 방안은 줄곧 서울대의 위상을 끌어내려 고착화된 SKY 학벌체제에 구멍을 내려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었다.  현재의 학벌구조가 무너지려면 서울대부터 잡아야 한다는 발상은 언뜻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학벌개혁이 정당하며 실효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사회는 계층화 과정을 통해 개인에게 역할을 분담시킨다. 문제는 대학진학률이 83%가 넘도록 일반화된 나라에서 대학의 서열이나 위계 없이는 사회계층화 과정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할 방법이 딱히 없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실력에 따라 역할을 분배하자고 하는데 실력에 따른 분배는 결국 실력에 따른 대학진학과 별 다를바 없는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공정하게 실력만을 반영한다는 각종 국가고시 합격률 순위가 대학순위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이를 방증한다. 실력을 통한 공정성이라는 말이 기존 학벌체제를 지탱하는 수사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결국 대학서열의 존치 외에는 사회계층화에 정당성을 부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대가 폐지 돼도 기존의 연고대가 서울대의 위치를 차지할 것이고 언제나등 대학은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 때마다 학벌개혁을 위해 일등대학이 희생당해야 한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는 통합네트워크의 지향점이 서열구조 타파가 아니라 주요대학들이 독점하고 있는 사회적 자원들의 재분배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 3급 이상 고위 공무원들의 47%가 SKY대학 출신이고 법조계 부장판사 이상 비율은 80%를 넘어선다. 이는 단지 대학 순위변동이 능사가 아니라 공직 등의 사회적 자원의 재분배를 위한 직접적인 제도의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합네트워크와 함께 논의되고 있는 출신학교의 지역에 따른 공무원, 전문직 국가면허의 지역균형 인재선발제도는 이런 점을 놓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제도는 국공립대의 경쟁력을 높일 뿐 아니라 인재들의 지역분산을 통해 국가 균형발전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단순한 서울대의 폐지가 아니라 경쟁의 장을 넓혀 사회적 자원들이 보다 균등하게 배분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개혁들이 성공할 수 있으려면 사회 전반의 구조개혁과 인식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학벌의식이 강한 이유는 학벌에 따른 소득격차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할 것은 부자증세와 복지제도 확충을 통한 사회 안전망 확보와 사후 소득격차 완화이다. 이러한 제도의 개혁이 선행될 때에야 입시위주 교육, 무분별한 대학진학, 청년실업 등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소득격차의 완화는 직업의 귀천에 대한 집착보다 자기가 정말 잘하고,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국가적으로도 인적자원의 효율적 배치가 가능해진다. 실제로 덴마크나 핀란드 등의 복지국가에서는 벽돌공이나 청소부들도 자기 일에 자부심을 느끼며 사회적으로도 존중 받는다고 하니 말이다. 이는 우리의 학벌개혁이 비단 서울대 없애기나 서열구조 개편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학서열 자체의 문제가 아니고 서열의 존재가 불가피하다면, 굳이 서울대를 통합 네트워크 안에 넣어야 할까? 서울대의 위상은 나머지 국공립대학보다 월등하기에 서울대와 동문들의 반발이 거셀 것이 분명하고 실현가능성도 희박하다. 또한 서울대 폐지에 해당하는 기존 안의 고수는 대학의 자율성을 해치고 백 년 가까이 되는 대학의 문화와 학풍을 말살한다. 국립대이기에 정부가 맘대로 할 수 있다는 발상은 폭력에 가까워 보인다. 차라리 스스로 원하는 국공립 대학들이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정부가 집중투자-육성하는 방식이 대학 공교육 경쟁력 강화의 취지에도 맞을 것이다. 만약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가 정부 의도대로 성공한다면 자연스레 학벌체계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고 기존의 명문대들도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날이 올 것이다. 결국, 진짜 중요한 것은 대학서열이 아니라, '서열에 집착하게 만드는 사회구조 개혁이 먼저'라는 메세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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