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로 본 휴가지 인기 1위는 '대천'

한국경제 2014. 8. 6. 09:57



올해 여름철 인기 휴가지는 어디일까. 한국경제신문이 내비게이션 소프트웨어 업체 현대엠엔소프트와 함께 7월 한달간 ‘맵피위드다음’에서 목적지로 입력된 휴가지를 분석했다. 맵피위드다음은 현대엠엔소프트의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으로 50만명 가량이 사용하고 있다.


 여름철 피서에는 역시 물놀이가 제격. 1위부터 4위까지 해수욕장이 싹쓸이했다. 대천 해운대 을왕리 경포대 등 전통의 해수욕장이 상위권을 휩쓸었다. 광안리 속초 송정 등을 포함할 경우 20위권내 해수욕장이 9곳을 차지했다. 내륙에서는 워터파크가 대세인 것으로 집계됐다. 용인 캐리비안베이와 홍천 비발디파크가 젊은이들과 가족단위 방문객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다.


 해수욕장 틈바구니에서 전주 한옥마을이 5위에 오르며 선전했다. 전주국제영화제로 관광객이 부쩍 늘어난 전주는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볼거리, 먹거리가 풍부해 연중 인기있는 여행지로 떠올랐다. 이국적인 모습의 전주 전동성당은 사진찍기 좋은 장소로 꼽혔고, 독특한 초코파이로 유명한 63년 역사의 ‘풍년제과’는 전주 방문객들의 필수코스로 자리잡았다.


 섬도 빼놓을 수 없는 여름 휴양지다. 남이섬이 9위, 거제도의 '바람의 언덕'이 12위, 월미도가 18위에 이름을 올렸다. 남이섬은 다양한 수상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점이 인기요인. '이브의화원' '회전목마' 등 TV 드라마로 유명해진 바람의 언덕은 해안 절벽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남해 풍광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개장한 수원 광교호수공원도 수도권의 대표적인 피서지로 부상했다. 광교신도시의 호수공원 면적(202만5418㎡)은 일산호수공원의 두배 수준이다. 국토교통부가 주관한 ‘2014 대한민국 경관대상’에서 1위에 오르면서 아름다운 경관을 인정받았다. 


 항구도 인기 휴양지다. 주문진항과 소래포구항은 나란히 13위와 14위를 꿰찼다. 시원한 바다를 배경으로 생선회와 조개구이 등을 즐길 수 있다. 이 외에도 경주 안압지, 담양 죽녹원 등이 20위권에 포함됐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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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NSA '한국민 감시'…정부 협조 가능성 높아

한국경제 2014. 7. 8. 23:37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세계를 대상으로 한 통신 감시에 한국 정부가 가담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덴마크 일간 인포메이션은 6월19일 전 중앙정보국(CIA) 직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으로부터 입수한 기밀문서를 공개했다. 한국에는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다. 이 문서에 따르면 세계 33개국 정부가 NSA의 자국민 감시를 도왔다. 이 33개국은 기존에 알려진 NSA의 긴밀한 협력국인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와는 다른 범주의 느슨한 협력국이다.


 이들 정부는 'RAMPART-A'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NSA가 해당 국가의 광케이블 기간망에 감청장치를 설치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대신 수집된 자국 국민의 정보를 공유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 기간망을 감청할 경우 전화 통화는 물론 이메일, 모바일 메신저, 인터넷 채팅 등의 도청이 가능하다. 미국 정부는 이 프로젝트에 2011부터 3년 동안 1억7000만 달러의 예산을 투입했다.


 공개된 문서에 33개국의 구체적인 명단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인포메이션과 공조 취재한 영국의 온라인 매체 인터셉트는 글렌 그린왈드의 저서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에 등장하는 33개의 NSA 협력국을 지목했다. 이 명단에는 일본 독일 프랑스 등과 함께 한국이 포함돼 있다. 그린왈드는 스노든과 함께 NSA의 실태를 최초 고발한 전직 가디언지 기자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NSA의 정보수집 국가에 한국이 포함됐을 경우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 도청 의혹에 대해서도 미국 정부에 사실 여부 확인을 요청했다. 만약 정부가 NSA의 한국 감시를 돕고도 이같은 반응을 내놓은 것이 사실이라면 파장이 예상된다.


 공개된 기밀문서에 대해 기간망 관리를 담당하는 미래창조과학부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며 "사실 여부를 확인해 보겠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외교부와 주한 미국 대사관도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한국경제 기사 :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070782391&intype=1

덴마크 인포메이션 기사 : http://www.information.dk/501280


영국 인터셉트 기사 : https://firstlook.org/theintercept/article/2014/06/18/nsa-surveillance-secret-cable-partners-revealed-rampar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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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 전시회에서 삼성 모델들이 몸을 꽁꽁 싸맨 이유

한국경제 2014. 4. 17. 17:03


아시아 최대 규모의 사진영상 전시회인 서울국제사진영상기자재전(P&I)이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나흘간의 일정으로 17일 개막했습니다. 삼성전자 소니 캐논 니콘 등 주요 카메라 업체들과 프린터, 방송장비 업체 등이 참여해 뜨거운 반응을 모았습니다.


사진영상 전시회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늘씬늘씬한 여성 모델. 주요 카메라 업체 부스는 아리따운 모델들과 이들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특히 올해 열리는 월드컵을 컨셉으로 치어리더 복장의 모델을 내세운 소니 부스는 그야말로 움직이기조차 힘들 정도였습니다. 대부분의 카메라 업체 부스가 시원시원한 차림의 모델을 앞세운 포토타임을 가졌습니다.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삼성 부스의 모델은 노출이 거의 없었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사진기자들이 주요 카메라 업체 모델을 모아놓고 촬영할 때 삼성은 파란색 티셔츠를 정숙하게 차려입은 모델들을 내보냈습니다. 탱크탑 차림의 노출이 심한 다른 모델들 사이에서 확연히 눈에 띌 수 밖에 없었죠.


삼성 관계자에 물어보니 속내는 이렇습니다. 삼성은 지난해 3월 남아공에서 열린 삼성포럼에서 식기세척기 등을 홍보하기 위해 수영복 차림의 어린 댄서들을 동원해 춤을 추게 한 일이 있습니다. 당시 선정적인 홍보로 인해 현지 언론의 뭇매를 맞았죠. 행사에 나온 여성 댄서들은 제품과 전혀 관련이 없는 데다 국민 80% 가량이 기독교 신자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확대됐습니다. 이후 삼성은 ‘성 상품화’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몸을 사리고 있습니다. 이번 P&I의 삼성측 메인 모델마저도 노출 없이 꽁꽁 싸맨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비통한 사건 앞에서 최대한 정숙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삼성이기에 더욱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한편 오늘 전시회에는 톱클래스의 모델이 총출동 했다고 합니다. 대충 둘러봐도 그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었는데요^^; 예년에는 서울모터쇼와 P&I가 겹쳐 톱클래스 모델들은 대부분 모터쇼로 갔는데 올해는 일정이 겹치지 않아 P&I에도 올 수 있었다네요. 노동시장의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모델료는 하락했습니다. 모터쇼와 P&I의 일정이 겹쳤던 지난해의 경우 톱클래스 모델의 시간당(포토타임 기준) 임금이 100~150만원을 호가한 반면 올해는 40~50만원까지 떨어졌습니다. 더군다나 이번 전시회에는 올림푸스와 후지필름이 참가하지 않아 카메라 업체들의 모델 섭외가 한결 수월했다는 후문입니다.




이 기사는 한국경제신문의 유료 서비스 한경+의 콘텐츠입니다. 한경+에는 취재 뒷얘기를 다룬 흥미로운 기사들이 넘쳐납니다. 깊이 있는 정보와 지면으로 옮기지 못하는 내밀한 얘기들을 한경+로 만나세요! 


http://plu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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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결제라더니 '꼼수결제'? BC·국민카드 모바일 ISP 논란

한국경제 2014. 4. 15. 19:12


지난달 A씨는 휴대폰 요금 청구서를 살펴보다 깜짝 놀랐다. ‘모바일 안전결제(ISP)’라는 항목으로 550원이 청구된 것. 3월에 이 같은 서비스를 사용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언제 가입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해당 이동통신사인 SK텔레콤에 문의하니 “이미 지난해 1월 가입해 지금껏 매달 550원씩 요금이 부과됐다”고 설명했다. 몇 달째 한번도 쓰지 않은 서비스라며 항의했지만 “본인이 직접 가입한 것이라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모바일 ISP’로 인한 피해자가 늘고 있다. 모바일 ISP는 휴대폰에서 신용카드 결제 시 카드번호와 비밀번호 등을 매번 입력하지 않고 미리 설정한 ISP 인증서를 통해 결제하는 방식이다. 결제대행사(VAN) ‘브이피’가 제공하고 비씨카드와 국민카드 등이 채택하고 있다.


문제는 휴대폰에 저장된 ISP 인증서를 PC에서도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ISP 휴대폰 저장 서비스’다. 매월 550원(부가세 포함)이 부과되는 서비스임에도 유료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용자가 많다. 하단에 깨알 같은 글씨로 표시된 ‘이용요금’ 문구를 보지 못해 그저 결제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무심코 가입하는 사용자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트위터에는 연일 피해자들의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이용요금 문구가 매우 작아 눈에 잘 띄지 않는다”며 “사용자가 인터넷 결제 시 무심코 ‘확인’ 버튼을 누르는 점을 악용한 꼼수”라고 지적했다. 브이피 측은 “유료 서비스임을 표기했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브이피의 지분 구조를 살펴보면 피해자들의 지적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브이피는 모바일 ISP를 채택하고 있는 비씨카드(50.9%)와 국민카드(10.8%)가 결제대행사 이니시스(20.7%)와 합작으로 세운 회사다. 지난해 서비스를 해지했다는 김모씨는 “비씨카드와 국민카드가 우회적인 방법으로 자사 회원들의 돈을 뜯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휴대폰 부가서비스로 분류된 요금 부과 방식에 대해 이통사와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모바일 ISP의 수익은 이통사가 20%, 운영사인 브이피가 80%를 가져간다. 이통사는 가만히 앉아서 공돈을 벌고 있는 셈이다. 매일같이 걸려오는 항의 전화에도 이통사가 서비스 해지만 해줄 뿐 모르쇠로 일관하는 이유다.


박병종/김재후 기자 dda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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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UHD 방송이 오후 3시8분에 시작된 이유

한국경제 2014. 4. 11. 18:29


2014.04.10. PM 03:08.

지난 10일 오후 3시8분 세계 최초로 UHD 방송 상용서비스가 시작됐습니다.UHD 방송은 HD 방송보다 네 배 이상 선명한 영상과 생생한 음질로 차세대 방송산업을 이끌 것으로 기대되는 서비스입니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는 10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4 디지털케이블TV쇼에서 세계 최초 ‘케이블 UHD 상용화 선포식’을 열고 전용채널 유맥스를 통해 UHD 방송을 송출했습니다.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과 국내외 케이블 업계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습니다.

한가지 눈길을 끄는 것은 방송 시작 시간이 오후 3시8분이라는 것. 뭔가 정시로 딱 떨어지지 않는 이 어정쩡한 시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기자라면 그냥 넘길 수 없는 부분이죠. 기자들 사이에서 여러가지 추측이 난무했습니다. 하지만 협회 관계자의 대답을 듣고는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죠.

“장관님께서 축사를 하시고 송출 스위치까지 이동하는 시간까지를 고려한 것입니다."

오후 3시 정각 선포식 시작. 사회자의 참석자 소개(2분) + 최문기 장관의 축사(5분) + 최 장관을 포함한 VIP들의 송출 스위치까지의 이동시간(1분) = 8분.

세계 최초 UHD 서비스의 시작을 알리는 이벤트는 장관의 일거수 일투족을 중심으로 짜여졌습니다. 협회 관계자에게 오늘의 주인공이 UHD 방송인지 최 장관인지 물었으나 들어오는 대답은 “알면서 왜 그러세요”였죠.

또 다른 문제는 축사에서 발생했습니다. 최 장관의 축사 도중 사회를 보던 아나운서가 장관의 말을 끊고 “장관님, 시간이 부족하니 짧게 해주시죠”라고 말한 것. 3시8분에 송출 스위치를 누르는 퍼포먼스를 통해 방송의 시작을 알리도록 시나리오가 짜여져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최 장관에 맞춰져 있던 시나리오가 최 장관의 행동을 제약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 겁니다. 당황한 최 장관은 작심하고 준비해온 축사를 서둘러 끝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장관 보좌진 측에서 아나운서가 장관의 말을 끊은 것에 대해 거세게 항의한 것입니다. 안그래도 미래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케이블TV방송협회 입장에선 뒷맛이 개운치 않은 행사가 돼버렸습니다.

제목 ‘오후 3시8분’의 미스터리 영화는 이렇게코미디 영화로 끝나게 됩니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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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옌훙 바이두 회장, 실리콘밸리의 유망한 엔지니어…호텔방서 중국형 검색엔진 개발

한국경제 2014. 3. 26. 10:57


지난달 초 중국 재계에 주목할 만한 일이 있었다. 리옌훙 바이두 회장이 부동산 재벌 왕제린 완다그룹 회장을 제치고 중국 부자 순위 1위에 오른 것. 중국에서 정보기술(IT)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최고 부자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블룸버그 억만장자지수’에 따르면 리 회장의 재산 규모는 122억3145만달러다. 1년 만에 65%나 증가했다. 음료기업 와하하의 쭝칭허우 회장을 제치고 2위 자리에 앉은 지 14일 만에 1위 자리까지 올랐다. 미국에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최고 부자가 되면서 미국 성장산업의 지형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처럼 중국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대체 리옌훙은 어떻게 바이두를 성공시켰을까.


○도서관에서 시작된 꿈


리옌훙은 1968년 중국 산시성 양취안의 공장 노동자 부부의 5남매 중 유일한 아들로 태어났다. 중학생 시절 그는 독서를 매우 좋아했다. 책을 읽기 위해 직원에게만 개방되는 공장 도서관을 아버지 출입증을 이용해 몰래 드나들 정도였다. 그는 “당시 도서관에서 원하는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없어 힘들었다”며 “이는 내가 검색엔진 개발에 나서게 된 배경 중 하나”라고 회상했다.


어렸을 적 리옌훙의 어머니는 “우리 집안은 평범하기 때문에 네가 성공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에 가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어머니의 바람대로 리옌훙은 베이징대에 진학해 정보관리학을 전공하는 동시에 컴퓨터 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당시 습득한 정보관리학과 컴퓨터 지식은 향후 그가 검색 사이트 바이두를 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베이징대를 졸업한 리옌훙은 미국 유학길에 올라 뉴욕주립대 버팔로대학 컴퓨터학과 석사과정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여름방학을 맞은 리옌훙은 파나소닉 정보기술 연구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광학식문자판독기(OCR) 분야를 연구해온 그는 실습 기간 동안 식별효율을 높이는 알고리즘을 개발해 주목을 받았다. 실습이 끝날 무렵 파나소닉은 실습생을 정규직원으로 채용하지 않았던 관행을 깨고 그를 채용했다. 이후 리옌훙은 자신이 개발한 알고리즘에 관한 논문을 국제 학술지에 발표했다. 리옌훙의 지도교수는 국제적인 수준의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뛰어난 리옌훙이 박사학위를 따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았다. 하지만 실무 경험을 중시했던 그는 월스트리트의 스카우트 제의에 과감하게 박사 학위를 포기했다.


○3성 호텔방서 시작한 바이두


경제뉴스를 제공하는 다우존스에 입사한 리옌훙은 박사급 대접을 받으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다우존스에서 그가 개발한 금융정보 검색 시스템은 아직까지 월가의 수많은 기업이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성공했다. 이후 그는 인포시크라는 유명 검색엔진 업체를 거치며 기술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창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999년 중국에도 인터넷 환경이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그는 120만달러를 모아 중국으로 돌아가 창업에 뛰어든다. 당시 그의 나이 31살이었다.


첫 사무실은 3성급 호텔의 객실이었다. 6개월의 밤낮없는 개발 끝에 중국 실정에 가장 적합한 검색엔진 바이두가 완성됐다. 바이두라는 이름은 송나라 시인 신치지의 시구에서 나왔다. ‘무리 속에서 그를 수백, 수천 번 찾았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니 등불 아래 그가 있더라’라는 시구 중 ‘수백번(百度)’이라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 필요한 것을 찾는다는 검색엔진의 이미지를 잘 살린 이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다른 엔지니어들과 차별화됐던 것은 기술 개발보다 비즈니스 전쟁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꿰뚫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던 시절 애독했던 월스트리트저널(WSJ)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신문을 통해 마이크로소프트가 어떻게 IBM에 대항하고 있는지,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에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등 비즈니스 전략을 읽을 수 있었다. 리옌훙은 뒷날 “기술은 결정적 요소가 아니며 비즈니스 전략을 어떻게 구사하는지가 승부를 결정하는 진정한 요소”라고 말했다. 


그의 비즈니스 감각이 유감 없이 드러난 것은 바이두의 미국 증시 상장이었다. 세계적인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해외 자본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리옌훙은 바이두의 미국 나스닥 상장을 결정했다. 2005년 8월 개장가 66달러로 상장된 바이두의 주가는 당일 최고 151달러까지 오르며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렀다. 이후 바이두는 승승장구하며 성장해 2012년에는 매출 223억600만위안(약 3조9000억원)을 달성했으며 2013년에도 40~50%의 성장세를 보였다.


○수평적 리더십이 성공 비결 


“호랑이 없는 곳에 토끼가 왕노릇을 한다.” 일부 사람들은 바이두를 두고 이렇게 비아냥대기도 한다. 2010년 중국 정부와의 관계 악화로 세계 최대 검색엔진 구글이 철수하자 중국 시장은 바이두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바이두의 검색 점유율은 70%를 넘어서고 있다. 일각에서는 “구글이 중국에서 퇴출되지 않았다면 시장점유율 1위는 어림도 없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수많은 경쟁 업체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왜 유독 바이두가 크게 성공했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리옌훙의 경영철학이 주된 성공 요인 중 하나였다. 그는 직원들에게 ‘실패해도 좋으니 뭐든지 해보라’며 새로운 시도를 장려한다. 사실 바이두의 초기 검색엔진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는데 리옌훙은 우선 부딪치고 보자는 생각으로 고객에게 서비스하기로 했다.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는 그때그때 해결해 나가면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타이밍이 무엇보다 중요한 인터넷 시장에서 만약 기술적으로 완벽한 상태에서 시장에 진출하려고 했다면 시장 선점의 기회는 영영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바이두의 지식 검색 서비스도 고객들의 피드백을 통해 끊임없이 개선해 현재에 이른 것이다. 리옌훙은 “바이두는 넘어지며 성장하는 어린이”라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리옌훙이 미국에서 공부해 민주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도 회사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다른 중국 기업들이 수직적 의사전달 구조를 가지고 있는 데 비해 바이두는 수평적 의사소통 구조를 가진 회사로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제품기획 회의에서 리옌훙이 외부 업체와 합작해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자는 의견을 냈지만 다수의 임원들이 반대해 그의 의견이 통과되지 못한 적도 있다. 리옌훙이 말하는 중간에도 누구든 이견을 제시하거나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상하관계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는 민주적인 의사소통 구조는 직원들의 사고를 유연하게 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촉진해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는 것이 동종업계의 평가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2014.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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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나 허핑턴 '허핑턴포스트' 회장, 대통령·영화감독 등 5만명 필진…댓글 토론으로 충성독자 확보

한국경제 2014. 3. 26. 10:47


‘이카로스 이후 가장 높이 올라간 그리스인.’

2011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허핑턴포스트의 설립자이자 현직 회장인 아리아나 허핑턴을 그리스 신화 속 인물에 빗대 이렇게 묘사했다. 미국 대형 온라인 포털 AOL이 창간 6년밖에 안된 허핑턴포스트를 3억1500만달러에 인수하면서 허핑턴이 얻게 된 평가다. 허핑턴포스트는 일찌감치 워싱턴포스트와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온라인 트래픽을 따라잡고 2011년에는 뉴욕타임스도 추월하며 세계에서 방문자 수가 가장 많은 인터넷 신문이 됐다. 결국 그해 허핑턴은 타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들었고 지난해에는 포브스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우먼 20인’에 선정됐다.

○콤플렉스 극복한 그리스 소녀

허핑턴은 1950년 7월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나치 점령 하에서 레지스탕스 신문을 펴낸 언론인으로 이후 경영 컨설턴트로 일했다. 허핑턴은 아버지를 따랐지만 그의 어머니는 전쟁 때문에 염세적으로 변해버린 아버지의 성격 탓에 허핑턴이 9세 때 이혼한다. 이후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그는 16세 때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대 거튼칼리지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어린 시절 그는 몇 가지 태생적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사춘기 시절에는 177㎝까지 커버린 큰 키에 절대 남자친구를 사귀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케임브리지대 유학 시절엔 억센 그리스 억양 때문에 외계인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외국인 최초로 케임브리지대 학생회장을 맡게 된다. 경영학 석사로 케임브리지대를 졸업한 21세의 허핑턴은 21세 연상의 ‘더 타임스’ 칼럼니스트 버나드 레빈을 만나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레빈은 허핑턴이 작가이자 지성인으로 활동할 수 있는 지적 토양을 제공했다.

레빈을 만나 세상에 눈을 뜬 허핑턴은 23세 때 여성 해방운동을 주장한 저매니 그리어의 저서 ‘여성적 내시’에 반박하기 위해 ‘여성적 여자’라는 책을 쓰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7년간의 동거 생활에도 레빈이 결혼을 원치 않자 30세가 된 허핑턴은 1980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으로 건너간 허핑턴은 저술가로 활동하다 1985년 석유재벌이자 공화당 정치인이던 마이클 허핑턴을 만나 이듬해 결혼하며 현재의 허핑턴이란 성을 쓰게 된다. 마이클은 1994년 상원의원에 당선됐으나 둘의 가정생활은 이후 3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허핑턴은 결별 이유에 대해 “마이클은 유럽에서 요트를 타며 노후를 즐기고 싶어했지만 나는 내 인생을 더 발전시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터넷판 ‘아고라’ 허핑턴포스트

마이클을 통해 미국 정계에 두터운 인맥을 쌓고 이혼으로 거액의 위자료를 받은 허핑턴은 2003년 무소속으로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도전했다가 영화배우 출신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높은 벽에 부딪혀 선거 전날 기권한다. 실패를 딛고 그가 선택한 것은 인터넷 신문. 선거운동을 치르면서 온라인의 영향력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2005년 그의 나이 55세에 자본금 100만달러(약 11억원)로 허핑턴포스트를 설립했다. 초창기 허핑턴포스트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르윈스키 스캔들을 폭로했던 최초의 미디어 블로그 ‘드러지리포트’를 베꼈다는 평가를 들었다. 그랬던 허핑턴포스트는 허핑턴의 폭넓은 인맥과 화학작용을 일으키면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월터 크롱카이트 등 당대 쟁쟁한 논객들이 돈 한푼 받지 않고 블로그에 글을 쓰게 만든 것은 전적으로 허핑턴의 능력이었다. 이후 오바마 미국 대통령, 노엄 촘스키 MIT 교수,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리처드 도킨스 옥스퍼드대 교수,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 등 쟁쟁한 명사들이 허핑턴포스트에 무료로 글을 썼고 수많은 독자를 끌어들였다.

허핑턴포스트는 기자들이 직접 취재하기보다는 5만명에 달하는 블로거의 글에 의존하고, 다른 매체가 보도한 기사를 적절히 가공해 보도한다. 그러다 보니 경쟁자들로부터 독립적인 매체라기보단 ‘기생충’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자신들의 기사를 베꼈지만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SNS)에 퍼뜨리는 등 마케팅은 더 잘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저널리즘적 관점에서 보면 700여명의 기자들은 대부분 비전문 인력이지만 인터넷 환경에 최적화돼 있다. 다른 매체 기자들이 기사를 송고하고 나면 일이 끝나는 반면 허핑턴포스트 기자들은 SNS에서 독자가 기사를 읽을 때까지 5분마다 한 번씩 제목의 토씨를 바꿔 가며 밤새 재발신한다.

허핑턴은 허핑턴포스트의 성공 배경에 대해 그가 그리스인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일반 시민들이 모여 정치와 사회, 예술 등을 토론하며 여론을 형성했던 ‘아고라(광장)’를 온라인에 옮겨 놓은 것이 허핑턴포스트라는 것이다. 허핑턴은 사람들이 기사를 읽을 뿐만 아니라 기사 내용에 대해 다른 독자와 얘기하고 싶어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소셜 뉴스’라는 코너를 통해 댓글을 매개로 친구를 모으고, 기존 SNS의 친구를 끌어와 토론할 수 있게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댓글 활성화로 독자가 늘면서 자연스레 악성 댓글도 늘어났는데 전문 댓글 관리자와 댓글 순화 프로그램을 통해 해결해 왔다. 하지만 악성 댓글이 너무 많아져 기존의 방법으로 감당할 수 없어지자 지난해 댓글 실명화를 선언했다.

‘그래도 나는 내 길 간다’

미국 언론계에서 허핑턴은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개방적이고 지성미를 갖췄으며 매혹적이라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그에 대한 비판 여론도 적지 않다. ‘변절’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정치적 신념과 원칙을 바꿔왔기 때문이다. 허핑턴은 남편이 공화당원이었던 만큼 열렬한 보수주의자였다. 그러다 1996년 알 프랭켄 민주당 의원과 함께 미국 코미디 방송국인 ‘코미디 센트럴’의 정치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민주당 지지로 전향했다.

여성주의적 신념도 바꿨다. 그의 첫 저서 ‘여성적 여자’에서는 여성주의자들을 비판했으면서도 ‘피카소: 창조자이자 파괴자’란 저서에서는 피카소를 여성 혐오주의자로 묘사하며 페미니즘적인 성향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워싱턴포스트의 다나 밀뱅크는 “허핑턴은 다음에 유행할 아이디어를 무작정 좇는 방식으로 성공한 기업가이자 작가”라고 평했다. 그의 성공은 만나왔던 남자들의 후광 때문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버나드 레빈을 통해 지적 토양을 얻었고 전 남편이었던 마이클 허핑턴을 통해 재력과 폭넓은 정계 인맥을 얻었다. 이후 AOL의 임원이었던 케네스 레러를 만났는데 허핑턴포스트에 대한 아이디어는 레러와의 대화에서 나왔으며 초기 투자금 100만달러 가운데 상당 부분을 레러가 투자했다. 레러는 허핑턴포스트의 첫 최고경영자(CEO)였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도 그녀의 능력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탁월한 사교술 덕분에 그는 넓은 인맥과 사랑을 얻을 수 있었다. 수많은 비판에도 그는 “다른 사람의 비판에 내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는 없다”며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2014.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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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파스키에 주한 프랑스 대사 "마더·설국열차…봉준호 감독 영화 안본게 없어요"

한국경제 2014. 3. 26. 10:42


“영화 ‘마더’(봉준호 감독)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한국 특유의 강렬한 표현 방식으로 인간의 감정을 깊이 있게 그려냈습니다. 봉 감독의 최근 인기작 ‘설국열차’보다 제가 마더를 더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이태원의 프랑스 음식점 ‘르꽁뜨와’에서 만난 제롬 파스키에 주한 프랑스 대사는 한국 영화를 줄줄이 꿰고 있었다.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실미도’, 봉 감독의 대표작 ‘괴물’, 최근 비행기에서 봤다는 ‘7번 방의 선물’까지….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들이 그의 입에서 술술 나왔다. 심지어 한국 사람에게도 생소한 베니스 영화제 초청작 ‘무게’와 칸 영화제에서 단편부문 황금종려상을 받은 ‘세이프’ 등에 대한 칭찬도 곁들였다. 그가 ‘무게’에 대해 “제목에서 오는 느낌처럼 무거운 이야기를 비극과 희극을 오가며 절묘하게 조율했다”는 평가를 할 때는 영화평론가로 착각할 정도였다.


○문화강국 비결은 정체성 확보


한·불 문화 교류에 관심이 많은 그가 지난달 20일 프랑스 음식을 제대로 보여주겠다며 찾은 곳은 르꽁뜨와였다. 다른 유명 프랑스 레스토랑도 많은데 굳이 이곳을 택한 이유에 대해 파스키에 대사는 “일반적으로 ‘프랑스 요리’라고 하면 비싸고 고급스러운 정찬만을 떠올리는데 이곳은 소담하고 친근해 프랑스 요리의 새로운 면모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한국인 셰프가 운영하는 만큼 한·불 문화 교류의 상징”이라는 의미도 더했다.


파스키에 대사는 프랑스 음식점을 고르긴 했지만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 1988년부터 5년간 주한 프랑스대사관 문화 참사관으로 근무했던 그는 2012년 대사로 다시 부임했다. 프랑스에 돌아간 뒤 ‘삼계탕’의 맛이 너무 그리웠다고 했다.


르꽁뜨와의 점심은 주방장이 정한 코스대로 매일 메뉴가 바뀐다. 빵이 나오기 전 레드 와인으로 잔을 채웠다. 와인의 이름은 코트뒤론. 한국 사람에게도 익숙한 보르도와 보르고뉴 사이에 있는 원산지의 이름을 땄다. 텁텁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달지도 않은 향이 혀끝을 맴돌았다. 파스키에 대사는 “한국에 지역별로 특산 김치가 있듯 프랑스는 지역마다 독특한 와인이 있다”고 소개했다. 프랑스 관광산업이 국내총생산(GDP)의 7~8%를 차지할 정도로 발달할 수 있었던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갓 구운 빵 소쿠리가 테이블에 놓였다. 고소한 냄새가 코로 전해졌다. 파스키에 대사는 관광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여러 지방이 각자 독특한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리에 가서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여행의 목적은 그 지역의 특수한 문화를 느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는 바스크, 프로방스 등 각 지방이 저마다 다양한 분위기를 품고 있어 어느 곳이나 신선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채 요리로 정갈한 접시에 샐러드가 곁들여진 ‘테린 캄파뉴’가 올라왔다. 테린은 돼지 간을 각종 채소와 함께 오븐에서 중탕으로 익힌 프랑스의 대중적인 음식이다. 이야기는 프랑스에 불고 있는 한류로 흘렀다. 파스키에 대사는 “프랑스 젊은이들 사이에서 K팝, 영화, 드라마 등 한류 바람이 거세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한·불 정상회담으로 프랑스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 드라마를 사랑하는 프랑스인 모임’을 찾았을 정도다. 파스키에 대사 자신도 “2010년 방영한 드라마 ‘장난스런 키스’를 재밌게 봤다”며 “개인적으로 판소리도 좋아한다”고 귀띔했다.


일자리 위해 갈아탄 정책 노선


메인 요리로 ‘커리 소스로 쪄낸 홍합’이 한가득 보울에 담겨 나왔다. 포크로 홍합을 까던 파스키에 대사에게 프랑스 경제에 관해 물었다. 그는 “지난해 성장률을 보면 확실히 경기 후퇴에서는 벗어나 회복되고 있다”며 “작년 4분기 성장률은 0.3%로 유럽에서 가장 잘 나가는 독일의 0.4%와 큰 차이가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기업의 세금 부담을 줄여주기로 한 것이 경제정책 방향의 근본적 변화인지 궁금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취임 초기 부유세 추진 등 각종 포퓰리즘적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파스키에 대사는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일자리 부족”이라며 “올랑드 정부는 기업 지원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기업의 사회보장 부담금을 줄여주고, 프랑스에 투자하는 해외 기업에 각종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이 같은 정책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지난달 18일 올랑드 대통령은 삼성전자, 인텔, GE 경영진 등 30명의 기업인을 엘리제궁으로 초대했다.


최근 중국 둥펑자동차가 프랑스의 대표적 자동차 기업 푸조를 인수한 데 대해서는 “무엇이 문제냐”고 반문했다. 그는 “푸조는 가족 경영 구조로 규모가 작아 자동차산업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었다”며 “이번 지분 인수를 통해 규모도 키우고 급성장하는 중국 자동차 시장도 노릴 수 있어 오히려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는 유럽의 심장에 위치해 교통이 좋고 프랑스의 6500만 인구는 물론 유럽 전역을 시장으로 삼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초과학을 기반으로 한 우수한 노동력, 뛰어난 교통·에너지 인프라, 높은 문화 수준 등 다른 이점도 열거했다. 


타협의 톨레랑스


파이의 일종인 사과 타르트가 디저트로 나왔다. 입 안에 남은 커리 향이 서서히 사라져 갔다. 조금 민감한 사안으로 화제를 돌렸다. 올랑드 대통령의 스캔들에 대해 물었다. 지난 1월 프랑스 잡지 클로저는 올랑드 대통령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여배우 쥘리 가예와 밀애를 나눠왔다고 폭로했다. 그 ‘바람’에 동거녀인 트리에르바일레는 몸져 누웠으며 끝내 결별했다. 파스키에 대사는 담담하게 답했다. 타르트를 입에 넣은 채 “대부분의 프랑스인은 대통령의 사생활에 개의치 않는다”며 “프랑스 국민이 대통령에게 원하는 것은 좋은 가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정책을 펴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시라크, 미테랑, 사르코지 등 전임 대통령도 비슷한 전력이 있다. 오히려 대통령도 평범한 남자라는 것을 보여줘 대중적인 지지도는 올라갈 수도 있다”며 웃었다. 실제로 지난 1월 외도를 공식 인정한 이후 올랑드 대통령의 지지율은 깜짝 상승했다.


올랑드 대통령의 예에서도 엿볼 수 있듯 프랑스는 톨레랑스(tolerance)의 나라다. 톨레랑스는 ‘타인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에 대한 존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파스키에 대사는 “프랑스인의 이런 면모를 사회적 타협의 과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프랑스 정부가 노조와 수개월에 걸친 협상 끝에 ‘연금 개혁의 틀’을 세웠다”며 “개혁에 앞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퇴직자는 늘고 경제활동인구는 줄어 연금 개혁이 불가피해진 상황에서 이해당사자들이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고 한발짝씩 양보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연금 개혁의 핵심 내용은 법정 퇴직 연령을 현행 62세로 유지하는 대신 연금을 받기 위한 기여금 납부 기간을 늘리는 것이다.


얼 그레이, 에스프레소 등 각자의 찻잔이 바닥을 드러낼 즈음 임기 중 가장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물었다. 그는 “남은 임기에 한국 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프랑스에 유치하고 싶다”며 “2015~2016년 ‘한·불 상호교류의 해’를 통해 양국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불 비즈니스와 문화의 가교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그의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2014. 3. 6]




파스키에 대사의 단골집,르꽁뜨와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2에 있는 르꽁뜨와는 한국인 셰프가 운영하는 정통 프랑스 음식점이다. 파란색을 중심으로 아기자기하고 깔끔한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이태원역과 가까워 접근성도 좋다.


이 가게의 셰프 서문용욱 씨(37)는 프랑스 리옹의 유명 요리학교 ‘엥스티튀 폴 보퀴즈’에서 요리를 배우고 파리 미슐랭 가이드 선정 3스타 레스토랑인 ‘르도옌’을 거쳐 파리 ‘라시에스트’에서 헤드셰프로 일했다. 휴가차 한국에 왔다가 때마침 이태원에 좋은 자리가 난 것을 놓치지 않고 르꽁뜨와를 열었다. 한국의 많은 프랑스 레스토랑이 한국화된 프랑스 음식을 선보이지만 서씨는 ‘기본이 흔들리면 이도 저도 아닌 정체불명의 요리가 될 것’이라며 프랑스 정통 레시피를 고집한다. 한국에 사는 프랑스인들이 이곳을 많이 찾는 이유다.


인기 있는 메뉴는 르꽁뜨와 샐러드, 양갈비구이, 자연산 대구요리, 부드러운 소 뽈살찜 등이다. 메인요리는 3만~4만원, 애피타이저는 1만4000~2만4000원, 디저트는 1만원 안팎이다. 평일 점심에 가면 그날 셰프가 정한 ‘점심 특선 코스’를 맛볼 수 있다.가격은 1만9000원. (02)792-8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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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커의 경고…"유출된 정보로 당신 은행계좌 다 털 수 있다"

한국경제 2014. 3. 26. 10:35

“지금까지 털린 개인정보로 거의 모든 범죄가 가능해졌어요. 빠져나간 개인정보를 악용할 수 있는 사례가 어찌나 많은지 시나리오 공모전을 열어도 될 정도예요.”


대한민국이 금융범죄에 벌거벗겨졌다. 지난 1월 KB국민·NH농협·롯데 등 카드 3사에서 1억400만건의 고객정보 유출이 드러난 데 이어 지난 6일에는 KT 홈페이지 해킹으로 1200만건(981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잇따라 새나간 개인정보가 이미 시중에 범람하며 각종 범죄에 이용되고 있다는 해커들의 증언이 나오고 있다. 


개인의 사생활을 뒷조사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본인을 사칭한 금융사기도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국경제신문이 17일 인터뷰한 익명의 해커 A씨는 “과거에도 개인정보 유출이 있었지만 카드사와 KT 사태 이후로 광범위한 정보가 풀려 개인정보를 얻는 게 너무 쉬워졌다”며 “1인당 100원이던 4대 개인정보(이름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이메일주소)를 이제는 1~5원에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정보 유출이 국가비상사태급이지만 정부와 국민이 심각성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며 “정부는 책임회피, 사태축소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진상을 있는 그대로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해커는 현재 시중에 돌아다니는 개인정보를 갖고 저지를 수 있는 범죄로 다음 세 가지를 제시했다.


(1) 대포폰 통해 소액결제


금융회사 등에서 유출된 개인정보 중 가장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경로는 ‘이메일’이다. 이메일 주소를 확보하면 비밀번호는 다양한 방식으로 알아낼 수 있다. 다른 경로로 유출된 정보에서 비밀번호를 얻거나 비밀번호 대입 프로그램을 이용해 알아낼 수도 있다.


비밀번호를 알아내 일단 이메일 계정에 접속하면 얻을 수 있는 개인정보의 폭은 확 넓어진다. 많은 사람이 민감한 개인정보를 메일함에 무심코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여권과 주민등록증 등 신분증 사본이다. 해외여행이나 출장을 다녀오면서 여행사나 회사 서무팀에 보낸 스캔 파일이 보낸편지함 등에 그대로 저장돼 있는 사례가 많다.


개인정보를 악용하기로 마음먹은 해커들은 ‘여권’ ‘주민’ 등의 키워드 검색을 통해 이 같은 고급 정보부터 확인한다. 신분증 사본이 있으면 온라인 휴대폰 판매사이트에서 피해자 명의의 대포폰을 개통할 수 있다. 이 대포폰을 소액결제에 활용하면 월 최대 30만원까지 결제가 가능하다. 이후 대포폰은 다양한 사칭 사기에서 본인인증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2) 불법 계좌이체·인출 


이메일 계정에는 인터넷 뱅킹 보안카드 사진파일이 저장돼 있는 경우도 많다. 적지 않은 인터넷 뱅킹 이용자들은 스마트폰에 보안카드를 사진으로 저장해 이용한다. 그 경우 스마트폰 데이터를 메일로 백업하면 보안카드 사진이 메일 계정에도 남는다.


유출된 개인정보에 추가로 보안카드까지 확보하면 공인인증서를 다시 발급할 수 있다. 재발급받은 공인인증서를 통해 피해자의 계좌에 있는 돈을 대포통장으로 이체할 수 있다.


이체한 돈을 현금화하기 위해서는 위조 주민등록증이 필요하다. 유출된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정보를 이용해 만들 수 있는 위조 주민등록증은 중국 출신의 브로커들이 약 3만원에 판매한다. 은행마다 대포 통장을 만들어 피해자의 돈을 각각 이체한 뒤, 조선족 등 외국인들로 구성된 인출조로 한꺼번에 돈을 인출한다. 순식간에 자기 통장에서 거액의 돈이 빠져나갈 수 있다.


(3) 신용정보 조작·사생활 공개 


유출된 개인정보가 금전 사기가 아니더라도 신용정보 조작이나 사생활 공개에 악용되면 치명적이다. 실제로 이번 유출 사태 이후 “입찰에서 떨어뜨리고 싶은 경쟁사가 있으니 해당 법인과 대표이사의 신용도를 불량으로 만들어 달라”는 청부해킹 의뢰가 들어오기도 했다고 A씨는 밝혔다. 제시된 대가는 2억원이었다. 유출된 개인정보를 이용해 신용대출 서류를 꾸미면 거액의 대출 사기를 벌일 수도 있다. 


과거의 애인이었던 연예인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다른 남자 연예인과 사귀는 동안 찍었던 사진을 유포해 달라”는 요청도 들어왔다고 한다. 두 건 모두 의뢰에 응하지는 않았다고 A씨는 말했다.


박병종/김보영 기자 ddak@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2014. 3. 17]



해커가 조언하는 긴급처방 5가지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늘면서 금융사고 등 2차 피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해커 A씨가 조언한 긴급 처방 다섯 가지를 추렸다.


#1. PC와 이메일, 클라우드 서비스 등에 저장된 개인정보부터 삭제하라.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 무심코 여행사에 여권 사본을 보냈다면 금융범죄의 타깃이 되기 쉽다. 특히 휴대폰에 인터넷 뱅킹용 보안카드를 사진으로 찍어 보관하고 있다면 즉시 삭제하라. 만약 이런 정보가 해킹되면 개인 과실로 간주돼 피해를 구제받기 힘들다.


#2. 신용카드와 은행 통장을 폐기하고 재발급받아라. 이미 당신의 신용카드 번호와 은행 계좌번호 등은 유출됐다고 봐야 한다. 조금 번거롭더라도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최소 조치다.


#3. 공인인증서를 USB메모리 등 휴대저장장치에 보관하라. PC나 인터넷상에 보관할 경우 해커들의 표적이 되기 쉽다. 특히 공인인증서 재발급이나 계좌 이체시 이용 내역을 바로 알려주는 문자(SMS) 통지 서비스에 가입해야 한다. 


#4. 인터넷 뱅킹 사이트의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즉시 바꾸고 다변화하라. 적어도 금융 서비스만큼은 다른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사용하는 게 안전하다.


#5. 인터넷뱅킹 이용시 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OTP)를 사용하라. OTP는 네 자리 숫자 35개가 쓰여 있는 보안카드와 달리 일회용 비밀번호를 1분마다 새로 만들어주는 안전한 보안매체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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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 월드와이드웹의 5가지 진실

한국경제 2014. 3. 23. 17:55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냉전 종식의 원년이 된 1989년, 세계를 하나로 묶어줄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났다. 인터넷 대중화의 결정적 역할을 한 월드와이드웹(WWW)의 탄생이다.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기 위해 웹브라우저 주소창에 입력하는 WWW가 12일로 탄생 25주년을 맞았다. WWW란 인터넷상에 흩어져 있는 온갖 종류의 정보를 동일한 표준으로 서로 연결할 수 있게 만든 서비스다. 줄여서 ‘웹(web)’이라고 부른다. 세계 네티즌들은 거의 매일 웹을 이용하지만 웹에 대해선 모르는 사실이 많다. 25살 생일을 맞은 웹의 잘 알려지지 않은 진실 다섯 가지를 추렸다. 


첫째, 웹의 탄생지는 통신기술업체가 아니라 물리학 연구소다. 1989년 스위스 제네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신참 프로그래머 팀 버너스리(사진)가 노트에 끄적여 놓은 개념도가 시초가 됐다. 당시 노트를 본 그의 상사 마이크 센달은 “말도 안 되지만 재미있다”며 연구소가 보유하고 있는 최첨단 컴퓨터 넥스트(NeXT)를 내줬다. 얼마 뒤인 1989년 3월12일 버너스리는 WWW의 기본개념을 공식 제안하며 웹을 탄생시켰다. 이듬해인 1990년, 그는 최초의 WWW 웹브라우저를 만들었고 이때 사용된 넥스트 컴퓨터는 최초의 웹서버가 됐다. 


둘째, 세계 최초의 웹사이트는 CERN의 연구내용을 소개하는 사이트(www.info.cern.ch)로 1991년 만들어졌다. 애초에 웹을 만든 목적이 고에너지 물리학계의 국제적인 정보와 자료를 교환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이후 1993년 CERN이 저작권이나 사용료를 요구하지 않고 WWW 기술을 세계에 무료로 배포하면서 인터넷 대중화의 전환점이 됐다. 이 기술 이전의 인터넷은 사용법이 복잡하고 어려워 대부분 연구소나 정부기관에서만 사용됐다.


셋째, 웹에 처음 올라간 사진은 CERN 소속 여비서로 구성된 아마추어 보컬 밴드 ‘레 오라블 세레네테’ 멤버 네 명의 모습이다. 버너스리는 새로 개발한 인터넷 이미지 업로드 시스템을 시험해보기 위해 급하게 테스트용 사진을 찾다가 우연히 이 사진을 발견하고 업로드했다. 그 덕에 프랑스어로 ‘무서운 CERN의 소녀들’이란 뜻의 이 밴드는 인터넷에 데뷔한 세계 최초의 보컬 밴드가 됐다. 


넷째, 웹에서 처음으로 팔린 물건은 버섯과 치즈를 넣은 피자헛의 페퍼로니 피자였다. 신기술에 발빠르게 대응한 피자헛은 1994년 자사 웹사이트를 통해 피자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1995년 아마존과 이베이 등 온라인 쇼핑몰 업체들이 웹에 둥지를 틀면서 전자상거래 시대가 열렸다. 


다섯째, 국내에 웹을 처음 소개한 사람은 국내 벤처 1세대로 꼽히는 허진호 크레이지피쉬 대표다. 1995년 ‘아이네트’라는 인터넷망서비스기업(ISP)을 통해 국내 최초로 웹을 상용화했다.


앞서 국내에 인터넷을 처음 소개한 사람은 허 대표의 스승인 전길남 KAIST 명예교수다. 그는 1982년 5월15일 경북 구미시 전자기술연구소(KIET·현 한국전자통신연구소)와 서울대 전자계산기공학과(현 컴퓨터공학과) 연구소 간 인터넷 연결을 성공시켰다.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이 개통된 순간이었다. 미국 UCLA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근대화에 뒤처진 고국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인터넷이 들어와야 한다고 판단했다. 국내에 들어와 3년간의 노력 끝에 인터넷 시스템 개발에 성공했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 2014.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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