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아나 허핑턴 '허핑턴포스트' 회장, 대통령·영화감독 등 5만명 필진…댓글 토론으로 충성독자 확보

한국경제 2014. 3. 26. 10:47


‘이카로스 이후 가장 높이 올라간 그리스인.’

2011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허핑턴포스트의 설립자이자 현직 회장인 아리아나 허핑턴을 그리스 신화 속 인물에 빗대 이렇게 묘사했다. 미국 대형 온라인 포털 AOL이 창간 6년밖에 안된 허핑턴포스트를 3억1500만달러에 인수하면서 허핑턴이 얻게 된 평가다. 허핑턴포스트는 일찌감치 워싱턴포스트와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온라인 트래픽을 따라잡고 2011년에는 뉴욕타임스도 추월하며 세계에서 방문자 수가 가장 많은 인터넷 신문이 됐다. 결국 그해 허핑턴은 타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들었고 지난해에는 포브스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우먼 20인’에 선정됐다.

○콤플렉스 극복한 그리스 소녀

허핑턴은 1950년 7월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나치 점령 하에서 레지스탕스 신문을 펴낸 언론인으로 이후 경영 컨설턴트로 일했다. 허핑턴은 아버지를 따랐지만 그의 어머니는 전쟁 때문에 염세적으로 변해버린 아버지의 성격 탓에 허핑턴이 9세 때 이혼한다. 이후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그는 16세 때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대 거튼칼리지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어린 시절 그는 몇 가지 태생적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사춘기 시절에는 177㎝까지 커버린 큰 키에 절대 남자친구를 사귀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케임브리지대 유학 시절엔 억센 그리스 억양 때문에 외계인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외국인 최초로 케임브리지대 학생회장을 맡게 된다. 경영학 석사로 케임브리지대를 졸업한 21세의 허핑턴은 21세 연상의 ‘더 타임스’ 칼럼니스트 버나드 레빈을 만나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레빈은 허핑턴이 작가이자 지성인으로 활동할 수 있는 지적 토양을 제공했다.

레빈을 만나 세상에 눈을 뜬 허핑턴은 23세 때 여성 해방운동을 주장한 저매니 그리어의 저서 ‘여성적 내시’에 반박하기 위해 ‘여성적 여자’라는 책을 쓰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7년간의 동거 생활에도 레빈이 결혼을 원치 않자 30세가 된 허핑턴은 1980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으로 건너간 허핑턴은 저술가로 활동하다 1985년 석유재벌이자 공화당 정치인이던 마이클 허핑턴을 만나 이듬해 결혼하며 현재의 허핑턴이란 성을 쓰게 된다. 마이클은 1994년 상원의원에 당선됐으나 둘의 가정생활은 이후 3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허핑턴은 결별 이유에 대해 “마이클은 유럽에서 요트를 타며 노후를 즐기고 싶어했지만 나는 내 인생을 더 발전시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터넷판 ‘아고라’ 허핑턴포스트

마이클을 통해 미국 정계에 두터운 인맥을 쌓고 이혼으로 거액의 위자료를 받은 허핑턴은 2003년 무소속으로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도전했다가 영화배우 출신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높은 벽에 부딪혀 선거 전날 기권한다. 실패를 딛고 그가 선택한 것은 인터넷 신문. 선거운동을 치르면서 온라인의 영향력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2005년 그의 나이 55세에 자본금 100만달러(약 11억원)로 허핑턴포스트를 설립했다. 초창기 허핑턴포스트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르윈스키 스캔들을 폭로했던 최초의 미디어 블로그 ‘드러지리포트’를 베꼈다는 평가를 들었다. 그랬던 허핑턴포스트는 허핑턴의 폭넓은 인맥과 화학작용을 일으키면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월터 크롱카이트 등 당대 쟁쟁한 논객들이 돈 한푼 받지 않고 블로그에 글을 쓰게 만든 것은 전적으로 허핑턴의 능력이었다. 이후 오바마 미국 대통령, 노엄 촘스키 MIT 교수,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리처드 도킨스 옥스퍼드대 교수,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 등 쟁쟁한 명사들이 허핑턴포스트에 무료로 글을 썼고 수많은 독자를 끌어들였다.

허핑턴포스트는 기자들이 직접 취재하기보다는 5만명에 달하는 블로거의 글에 의존하고, 다른 매체가 보도한 기사를 적절히 가공해 보도한다. 그러다 보니 경쟁자들로부터 독립적인 매체라기보단 ‘기생충’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자신들의 기사를 베꼈지만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SNS)에 퍼뜨리는 등 마케팅은 더 잘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저널리즘적 관점에서 보면 700여명의 기자들은 대부분 비전문 인력이지만 인터넷 환경에 최적화돼 있다. 다른 매체 기자들이 기사를 송고하고 나면 일이 끝나는 반면 허핑턴포스트 기자들은 SNS에서 독자가 기사를 읽을 때까지 5분마다 한 번씩 제목의 토씨를 바꿔 가며 밤새 재발신한다.

허핑턴은 허핑턴포스트의 성공 배경에 대해 그가 그리스인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일반 시민들이 모여 정치와 사회, 예술 등을 토론하며 여론을 형성했던 ‘아고라(광장)’를 온라인에 옮겨 놓은 것이 허핑턴포스트라는 것이다. 허핑턴은 사람들이 기사를 읽을 뿐만 아니라 기사 내용에 대해 다른 독자와 얘기하고 싶어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소셜 뉴스’라는 코너를 통해 댓글을 매개로 친구를 모으고, 기존 SNS의 친구를 끌어와 토론할 수 있게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댓글 활성화로 독자가 늘면서 자연스레 악성 댓글도 늘어났는데 전문 댓글 관리자와 댓글 순화 프로그램을 통해 해결해 왔다. 하지만 악성 댓글이 너무 많아져 기존의 방법으로 감당할 수 없어지자 지난해 댓글 실명화를 선언했다.

‘그래도 나는 내 길 간다’

미국 언론계에서 허핑턴은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개방적이고 지성미를 갖췄으며 매혹적이라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그에 대한 비판 여론도 적지 않다. ‘변절’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정치적 신념과 원칙을 바꿔왔기 때문이다. 허핑턴은 남편이 공화당원이었던 만큼 열렬한 보수주의자였다. 그러다 1996년 알 프랭켄 민주당 의원과 함께 미국 코미디 방송국인 ‘코미디 센트럴’의 정치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민주당 지지로 전향했다.

여성주의적 신념도 바꿨다. 그의 첫 저서 ‘여성적 여자’에서는 여성주의자들을 비판했으면서도 ‘피카소: 창조자이자 파괴자’란 저서에서는 피카소를 여성 혐오주의자로 묘사하며 페미니즘적인 성향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워싱턴포스트의 다나 밀뱅크는 “허핑턴은 다음에 유행할 아이디어를 무작정 좇는 방식으로 성공한 기업가이자 작가”라고 평했다. 그의 성공은 만나왔던 남자들의 후광 때문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버나드 레빈을 통해 지적 토양을 얻었고 전 남편이었던 마이클 허핑턴을 통해 재력과 폭넓은 정계 인맥을 얻었다. 이후 AOL의 임원이었던 케네스 레러를 만났는데 허핑턴포스트에 대한 아이디어는 레러와의 대화에서 나왔으며 초기 투자금 100만달러 가운데 상당 부분을 레러가 투자했다. 레러는 허핑턴포스트의 첫 최고경영자(CEO)였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도 그녀의 능력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탁월한 사교술 덕분에 그는 넓은 인맥과 사랑을 얻을 수 있었다. 수많은 비판에도 그는 “다른 사람의 비판에 내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는 없다”며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2014.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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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립보드 - 신문은 이제 큐레이션 시대

스타트업 2014. 3. 23. 17:51




2010년 초 애플의 전성기를 이끌던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를 출시한 직후 미국 샌프란시스코 팰로앨토의 한 신생 벤처기업 사무실을 찾았다. 회사의 이름은 ‘플립보드’. 태블릿PC와 스마트폰에서 뉴스나 블로그 등을 잡지처럼 보여주는 모바일 기반의 소셜 매거진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 업체였다. 플립보드 직원들은 당시 서비스가 초기 단계였기 때문에 잡스가 혹평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플립보드를 몇 분간 사용해본 잡스는 예상을 깨고 “내가 사용해본 소프트웨어 중 최고다. 기존 오프라인 콘텐츠 업체를 돕는 게 이 회사의 역할”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해 플립보드는 애플이 선정한 ‘올해의 아이패드 앱’으로 꼽혔다.


○신문은 이제 ‘큐레이션’ 시대


벤처 사업가였던 마이크 매큐 플립보드 최고경영자(CEO)는 애플에서 개발자로 일했던 에번 돌과 함께 2009년 플립보드를 설립했다. 시장에 콘텐츠는 넘쳐 흐르지만 막상 소비자가 관심있는 콘텐츠를 찾기는 어렵다는 점에 착안했다. 기존 뉴스 콘텐츠는 각 언론사의 웹사이트와 포털사이트를 통해 그날 생산된 뉴스를 한데 모아 뿌리는 유통 방식을 취했다. 오프라인 신문, 잡지를 단순히 웹으로 옮겨왔을 뿐 콘텐츠 대량 방출 방식을 버리지 못했다. 신문 기업들은 기사를 생산하는 데는 익숙했으나 이를 적절히 가공해 온라인으로 전달하는 법에 대해서는 미숙했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매큐와 돌이 선택한 방식은 ‘큐레이션’이었다. 큐레이션은 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이 작품을 수집하고 기획·전시하듯, 수많은 정보 중에서 가치 있는 것만을 골라 요약해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플립보드는 뉴스, 잡지, 블로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수많은 온라인 콘텐츠 중 자기가 관심있는 것만 골라 구독할 수 있게 함으로써 사용자가 정보를 찾기 위해 들이는 수고를 줄였다. 동영상 큐레이션 서비스 매그니파이닷넷의 창립자 스티븐 로젠바움은 큐레이션을 “인간이 수집·구성하는 대상에 ‘질적인 판단’을 추가해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기사의 가치를 판단하는 ‘게이트 키핑’을 큐레이션을 통해 구현한다는 것이다. 


현재 수많은 언론사가 플립보드에 콘텐츠를 공급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뉴욕타임스가 플립보드와 콘텐츠 공급계약을 맺는 등 플립보드는 2000개가 넘는 콘텐츠 공급처를 확보하고 있다. 플립보드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현재 세계적으로 1억명이 플립보드를 사용하고 있으며 하루 25만명의 신규 사용자가 유입되고 있다. 투자도 잇따른다. 2010년 잭 도시 트위터 공동창업자, 더스틴 모스코비츠 페이스북 공동창업자 등이 6050만달러를 투자했으며 지난해 10월에는 골드만삭스 등으로부터 5000만달러를 추가로 유치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과정에서 플립보드의 기업가치가 2년 전보다 두 배 늘어난 8억달러(약 86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됐다”고 전했다.


광고마저 아름다운 앱


플립보드의 또 다른 특징은 유독 ‘아름다움’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잡스가 이 앱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앱’이라고 치켜세웠던 이유다. 매큐 CEO가 서비스의 심미성을 위해 갤러리로 사용하던 건물을 사무실로 임대했을 정도다. 플립보드는 마치 잡지를 넘기는 것처럼 물 흐르듯 구현되는 사용자환경(UI)을 갖추고 있어 종이책이 가지고 있는 오프라인의 ‘맛’을 살렸다. 콘텐츠의 편집 방식도 오프라인 잡지와 유사한 방식으로 보기 편하고 아름답다. 신문 기사는 물론 페이스북, 링크트인 등 SNS의 글까지 잡지처럼 멋지게 보여준다. 에릭 알렉산더 플립보드 부사장은 “잘나가는 잡지나 신문도 웹사이트나 스마트폰에서 보면 그저 줄글의 나열 같았다”며 “신문 기사를 신문보다 예쁘게 보여주는 것이 플립보드의 존재 목적”이라고 말했다. 


플립보드의 아름다움 추구는 콘텐츠에 그치지 않는다. 심지어 광고까지 아름답게 만든다. 알렉산더 부사장은 “사람들은 덕지덕지 붙어 있는 인터넷 광고에 짜증을 내는 반면 패션잡지 광고는 보고 싶어한다”며 “광고도 콘텐츠의 일부로 여기고 볼거리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플립보드가 다른 유사 서비스와 다른 점은 기사를 읽기 위해 스크롤하는 방식이 아닌 잡지나 신문처럼 한장 한장 넘기며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같은 특징은 완결된 형태의 전면광고를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보여준다. 기존의 배너광고가 기사 중간에 지저분하게 붙어 있어 읽기를 방해했다면, 플립보드는 기사와 광고를 아예 분리시키는 방법으로 독자가 기사와 광고에 몰입할 수 있게 했다. 자체적인 광고 사업부를 가지고 있는 플립보드는 광고 수익을 언론사와 나눈다.


‘디자인의 벽’ 통해 아이디어 교환


플립보드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낸 것은 창의성을 북돋는 업무환경 때문이다. 플립보드는 창의적인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해선 직급과 상황,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소통의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철학에 따라 사내에 카페를 설치해 직원 간 대화를 유도한다. 또 격의 없는 ‘산책회의’ ‘맥주회의’ 등을 열어 인턴사원부터 사장까지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무실 한쪽에 생긴 ‘디자인의 벽’도 소통을 늘리기 위한 방책이다. 한쪽 벽면에 차기 플립보드 앱에 적용할 각종 디자인 가안을 붙여놓으면 직원들은 벽에 붙어 있는 디자인을 보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전달한다.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플립보드지만 최근 강력한 도전에 직면했다. 큐레이션 서비스의 미래를 밝게 본 페이스북이 플립보드와 유사한 서비스인 ‘페이퍼’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페이퍼에 대항하기 위해 플립보드가 선택한 전략은 ‘몸집 불리기’다. 플립보드는 지난 5일 CNN이 가지고 있던 라이벌 업체 ‘자이트’를 인수한다고 밝혔다. 인수가격은 밝히지 않았지만 업계는 6000만달러가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 2014.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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