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잠든 사이…스마트폰, 슈퍼컴 된다

IT이야기 2014. 3. 25. 22:03

직장인 조준하 씨(28)는 잠들기 전에 스마트폰의 ‘파워슬립(power sleep)’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을 켜둔다. 조씨가 자는 동안 스마트폰 중앙처리장치(CPU)의 연산 능력은 인터넷을 타고 토마스 라타이 오스트리아 빈대 생명정보학부 교수 연구팀의 클라우드 슈퍼컴퓨터를 가동하는 데 쓰인다. 이 컴퓨터는 암, 알츠하이머 질환과 관련한 단백질 구조를 분석해 치료제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이 앱은 삼성전자가 개발한 그리드 컴퓨팅(grid computing) 앱이다. 


클라우드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리드 컴퓨팅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그리드 컴퓨팅은 인터넷에 연결된 다양한 컴퓨터의 유휴 연산 능력을 하나로 통합해 가상 슈퍼컴퓨터를 구성하는 기술이다. 1990년대 중반 미국 시카고대 교수인 이안 포스터와 칼 키셀만의 이론에서 유래했다.


그리드 컴퓨팅이 본격 시작된 것은 RC5 암호기술로 유명한 보안기업 RSA시큐리티가 “암호문을 해독하는 사람에게 1만달러의 상금을 지급하겠다”고 공언하면서다. 이에 모든 가능한 경우의 수를 하나씩 넣어 보는 무차별 대입 방식으로 암호를 풀자는 공감대가 인터넷상에서 형성됐고 1997년 디스트리뷰티드넷이라는 그리드 컴퓨팅 프로젝트가 출범했다. 수만명의 네티즌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첫 번째 암호가 그해 풀렸다. 암호문은 “이제 더 긴 암호문에 도전할 때”였다. 이후 2007년 두 번째 암호가 풀렸고 현재는 세 번째 암호 해독이 시도되고 있다. 


이후 그리드 컴퓨팅은 주로 과학 연구 분야에서 많이 사용됐다. 2013년 ‘힉스 입자’를 발견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역시 그리드 컴퓨팅의 도움을 받았다. 힉스 입자는 우주에 있는 모든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고 사라진 물질로 세계 물리학계는 수십년 동안 그 존재 규명에 매달렸다. 세계 34개 국가에서 20만대의 컴퓨터를 연구작업에 동원한 결과 결국 그 존재를 입증했다. 심지어 외계인을 찾는 데도 그리드 컴퓨팅이 이용된다. 1999년 시작된 세티(SETI@home) 프로젝트는 참여자 컴퓨터에서 화면보호기가 작동되는 동안 푸에르토리코 전산소로부터 외계 전파 자료를 받아 분석하고 분석자료를 재전송한다. IBM도 ‘월드커뮤니티그리드’로 고영양쌀·청정에너지 개발 프로젝트 등을 지원하고 있다.


그리드 컴퓨팅 기술은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의 생태계 구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김진화 한국비트코인거래소(Korbit) 이사는 “비트코인은 거래시 시스템이 자체적으로 화폐의 위조 여부를 검증하는데 이 과정에서 그리드 컴퓨팅 기술이 이용된다”며 “검증 과정에 참여한 컴퓨터는 보상으로 비트코인을 받는데 이를 ‘채굴’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그리드 컴퓨팅에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CPU의 연산 능력을 훔쳐 사익을 추구하는 악성 프로그램도 넘쳐나고 있다. 최근 다른 사람의 컴퓨터를 감염시켜 비트코인 채굴에 동원하는 악성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디도스(분산서비스 거부) 공격 역시 불특정 다수의 컴퓨터 연산 능력을 훔쳐 동시에 특정 컴퓨터를 공격하는 방식이다. 


일부 국내 웹하드 업체는 자신의 서버 비용을 줄이기 위해 고객의 컴퓨터를 일종의 서버로 이용하는 프로그램을 강제 설치하기도 한다. 다른 웹하드 이용자가 같은 파일을 찾으면 웹하드 서버 대신 이용자 PC를 통해 파일을 전송해주는 방식이다. 이 경우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컴퓨터가 느려지며 먹통이 되기도 한다. 인터넷 포털 업체들도 그리드 컴퓨팅을 이용한 적이 있다. 다음은 동영상 서비스 ‘티비팟’에, 네이버는 웹툰 서비스에 적용했다가 사용자들의 불만으로 기술 적용을 중단했다.


■ 그리드 컴퓨팅


인터넷으로 연결된 수많은 컴퓨팅 기기의 유휴 연산 능력을 묶어 가상의 슈퍼컴퓨터를 구성하는 기술.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가 평균적으로 50% 미만의 연산 능력만 사용한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모인 연산 능력은 암 에이즈 등의 질병 치료제 연구나 DNA 분석 등에 이용된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2014. 3. 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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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아프리카 투자 늦으면 후회"

한국경제 2013. 10. 14. 10:18



세계적인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사진)가 11일 “중국 일본 등 주변국들이 아프리카 개발을 서두르는 동안 한국만 뒤처진다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삭스 교수는 이날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아프리카 새시대 포럼’ 초청 강연에서 “아프리카는 자원이 풍부하고 인프라 수요도 많은 반면 한국은 교통 통신 건설 등 인프라 기술이 뛰어나고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한국과 아프리카 국가들은 상호보완적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삭스 교수는 “눈부신 경제발전 경험을 가진 한국이 아프리카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과 인프라 개발 참여 등을 늘려야 한다”며 “특히 한국의 연기금이 아프리카에 투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삭스 교수는 “한국은 물론 미국조차 빈곤 탈출의 초기 단계에서는 해외 원조를 받았다”며 “한국이 국제사회의 리더로 부상한 만큼 그에 걸맞은 책임감을 가지고 아프리카 원조에 힘써 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극도로 빈곤한 마을이 어떻게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는지에 가장 큰 영감을 준 것이 한국의 ‘새마을 운동’이었다”며 “새마을 운동을 응용해 아프리카의 마을들이 자생력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삭스 교수는 폴 크루그먼, 로렌스 서머스와 함께 세계 경제학계의 3대 천재로 꼽힌다. 하버드대 수석 졸업 및 최연소(29세) 정교수 임용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현재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특별자문관으로서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유엔 새천년개발목표(MDG)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 MDG는 가난·기아 퇴치, 교육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유엔의 개발원조 프로그램이다.


삭스 교수는 최근 미국 정부의 셧다운(일부 폐쇄)과 디폴트 우려에 대해 “미국 정부 셧다운이 만약 디폴트로 넘어간다면 세계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주겠지만 디폴트로 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런 상황이 과거에도 몇 차례 발생했고 마치 몇 년 전 방송한 TV 쇼가 재방송되는 것 같다”며 “사람들이 이 워싱턴 드라마를 박진감있게 지켜보고 있어서 협상이 바로 타결되지는 않겠지만 마지막까지 싸우다 결국 합의에 도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의회는 2011년 8월에도 부채 한도 증액 협상에서 디폴트 시한을 하루 앞두고 막판 극적인 합의를 이룬 바 있다.


삭스 교수는 라이벌인 서머스가 탈락하고 재닛 옐런이 Fed 의장에 지명받은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옐런은 40년 전 내게 거시경제학을 가르쳐준 스승”이라며 “정직함과 시민을 섬겨야 한다는 신념을 갖춘 동시에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 총재, Fed 부의장을 지내는 등 이렇게 준비된 Fed 의장은 없을 것”이라고 평했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제프리 삭스의 재미있는 인맥



폴 크루그먼, 로렌스 서머스와 함께 세계 경제학계의 3대 천재로 불리는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를 지난 11일 국회에서 만났습니다. 삭스 교수는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가진 ‘아프리카 새시대 포럼’ 강연에서 한국이 아프리카 개발에 적극 참여해 줄 것을 요청했는데요, 재밌는 것은 삭스 교수의 흥미로운 인맥입니다.


하버드대 수석 졸업 및 최연소(29세) 정교수 임용 기록을 보유한 삭스 교수는 현재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특별자문관으로서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개발원조 프로그램인 유엔 새천년개발목표(MDG)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등 한국과의 인연도 깊습니다.


이날 강연에 앞서 사회를 맡은 이재영 의원(새누리당)은 지난해 세계은행(WB) 총재 후보였던 삭스 교수가 김용 전 다트머스대 총장에게 밀린 것에 대한 위로로 강연의 시작을 알렸는데요, 삭스 교수는 이에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물론 내가 됐다면 더 좋았겠지만, 월스트리트 출신이 아닌 경제 개발 전문가가 총재가 돼서 개인적으로 기뻤다”고 털어놨습니다.


삭스 교수의 한국과의 인연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1980년 하버드대 교수가 됐을 당시 ‘한덕수’라는 한국인이 내 첫 학생이었다”며 새내기 교수 시절을 회상했는데요, 그 학생이 바로 나중에 주미대사를 거쳐 국무총리가 된 한덕수 전 총리입니다. 삭스 교수는 “내가 가르친 학생이 커나가는 것을 보면서 자랑스러웠다”고 말해 청중의 호응을 이끌어냈습니다.


강연 말미의 질문시간에 저는 삭스 교수에게 조금은 짖꿎은 질문을 했습니다. 바로 미국중앙은행(Fed)의 차기 의장 자리에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 낙마하고 재닛 옐런 Fed 부의장이 지명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것이었죠. 삭스 교수와 서머스 전 장관이 세기의 라이벌로 꼽힐 뿐 아니라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는 루머가 오랫동안 있어왔기 때문에 상당히 민감할 수 있는 질문이었습니다. 실제로 하버드대 정교수였던 삭스가 2002년 컬럼비아대로 이직할 당시 동료교수였던 서머스와의 불화설이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삭스 교수는 제 질문에 한참 동안 웃더니 “옐런은 40년 전 내가 하버드대 학부생일 때 내게 거시경제학을 가르쳐 주신 교수님”이라며 옐런과의 인연을 소개했습니다. 이어 옐런은 “정직함과 시민을 섬겨야 한다는 마인드를 갖춘 동시에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 총재와 Fed 부의장을 지내는 등 경험도 풍부하다”며 “이렇게 준비된 Fed 의장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고 평했습니다. 서머스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아쉬웠지만 옐런에 대한 찬사를 쏟아냄으로써 우회적으로 속내를 비춘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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