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죽음이 사라진 사회
몇 달 전 인간이 지구 상에서 갑자기 사라졌을 때를 가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인간이 사라진 후 가장 먼저 멸종할 동물은 바로 애완견이었다. 야생에서 사냥해 본 적이 없는 애완견들은 굶주림 속에 죽어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거추장스럽게 길쭉한 몸, 그 몸에 비해 지나치게 짧은 다리 등 자연스럽지 않게 개량된 신체는 그들이 사냥은 고사하고 포식자로부터 도망가는 것조차 힘들게 만든다. 결국 자연스러움으로부터 괴리된 존재는 갑작스런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위험에 빠지게 된다. 인간도 이 명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진데, 우려되는 것은 죽음과 괴리된 인간의 부자연스러운 삶이다.
사람들은 생명과 삶을 동일시 하는 경향이 있다. 생명이란 생명체의 탄생부터 죽음까지를 포괄하는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생명에서 죽음은 배제하려 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문명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삶에서 죽음을 격리시키려 노력해 왔다. 도축장을 따로 만들어 은밀히 죽음을 생산한다. 전쟁에선 칼이 살을 파고드는 생생한 죽음의 감촉을 피하기 위해 멀리서 총을 쏘더니 이제는 전투기와 미사일로 죽음의 광경을 회피한다. 심지어 병원이나 장례식장 또한 일상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죽음의 현장을 일상에서 분리하여 체계적으로 관리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죽음을 일상적으로 보고 느끼던 사람들은 이제 죽음에 대한 면역성을 잃어버린 채 무균돼지로 가축화 한다.
이러한 변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된다. 첫째로 일상에서 자연스레 얻을 수 있었던 죽음에 대한 면역력이 이젠 없기 때문에 갑작스런 죽음의 현장이 눈 앞에서 벌어졌을 때의 정신적 트라우마는 이전 세대보다 훨씬 심각할 수 있다. 갑작스런 사고나 재난으로부터 인간이 겪게 되는 정신적 고통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구조 현장에 있던 많은 구조원들이 현재까지도 그 때의 참상 때문에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한다. 만약 아메리카 대륙에서 일상적으로 사냥을 통해 죽음과 대면했던 인디언들이 그 자리에 있었어도 그 정도로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렸을까.
둘째론 죽음으로부터 분리된 삶이 우리를 죽음에 대해 무감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도축장에서 이뤄지는 죽음이 은폐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하루에도 수 마리의 닭을 소비한다. 이러한 무감각은 죽음을 과잉생산 하는 결과를 만든다. 미사일 등의 첨단무기는 전쟁으로 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은폐함으로써 국민들이 전쟁을 쉽게 용인하도록 만든다. 죽음을 회피하려는 현대인의 노력이 역설적이게도 훨씬 더 많은 죽음을 야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