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논술작문 2012. 9. 4. 22:05

연애 초기 난 여자친구에게서 재미있는, 그러나 웃지 못할 얘기 하나를 들었다. 한창 잘 나가던 고교시절 자기를 놓고 주먹다짐을 벌인 두 남고생의 이야기였다. 방과 후 운동장에서 벌어진 결투. 둘은 얼굴이 찢어져 피가 나도록 싸웠는데 결국 이를 목격한 선생님에 의해 싸움은 무위로 끝나게 됐다. 마치 순록들이 암컷 하나를 놓고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듯 그들의 싸움은 자못 진지하고 엄숙했으리라. 그런데 재밌는 건 내 여자친구는 그들이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중 한 명은 이웃학교 학생이었단다. 정작 구애에서 가장 중요한 여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뤄진 그들의 혈투는 상처만 남긴 채 허무하게 끝나고 만다. 문제는 사건이 일어난 후 여자친구는 여러 헛소문에 시달려 한 동안 학교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당사자의 입장을 무시한 싸움은 어떤 목적도 달성하지 못한 채 모두에게 상처만 남기고 끝난다. 물론 일부러 과장한 얘기일 순 있겠지만 이는 현재 진행 중인 독도 영유권 문제와 닮았다.

 

무엇보다 현재의 독도문제는 다분히 인간중심적인 사고로 점철돼 있다. 무언가 지배하고 소유할 수 있는 권리는 기독교의 사상으로 정당화됐고 이후 서양을 중심으로 주인 없는 것이 없어졌다. 주인 없는 개, 고양이들은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며 인간이 소유하며 보살펴줘야 한다는 온정적 시각마저 이를 보여준다. 결국 근래의 독도문제는 지금껏 무인도로 버려져 있던 섬의 주인을 정하는 대결이다. 모든 것에는 주인이 있어야 한다는 인간중심적인 사고의 틀 안에서 싸움은 시작됐다. 하지만 정작 섬의 입장에 대해서, 섬에 살고 있는 동식물들의 입장에 대한 고려가 있었는지는 의문스럽다.

 

인간이 모든 것을 소유하고 지배할 수 있다는 인간중심주의는 기본적으로 강하고 우월한 자가 약하고 열등한 존재를 지배하고 소유할 수 있다는 사고로부터 파생된다. 신대륙을 발견한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열등한 존재로 보아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들을 침탈하고, 죽이고, 노예로 만들었다. 독일의 나치즘도 결국 우월한 게르만족이 열등한 다른 민족들을 복속하고 지배해야 한다는 신념 아래 세계를 살육의 장으로 만들었다. 현대에 와서 반성되고 있는 이 침탈의 역사들은 1900년대 초 일본 어부들의 남획에 의해 멸종된 독도의 강치들과 겹쳐진다. 몇백만년 동안 인간이 살지 않은 독도에 주인이 있다면 그것은 바닷새와 강치 같은 섬의 동식물이었을진데 땅을 뺏는 것으로 모자라 아예 멸종시켜버린다니 강치 입장에선 기가 차고 눈물이 날 노릇이다.

 

이처럼 어떤 땅을 점령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폭력이 된다. 소유의 정당한 권리라는 것이 어떻게 성립되는지도 모호하지만 그 권리에 집착해 소유의 대상이 되는 것들의 입장을 잊어선 안 된다. 독도와 주변해역의 자원개발 가능성 때문에 격화되는 싸움이다. 인간들의 이권다툼에 희생될 독도의 동식물들을 생각하자. 수천마리의 괭이갈매기, 바다제비, 물 속 오징어들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마지막 한 마리까지 죽임 당한 강치들을 생각한다면, 인간들의 영유권 다툼이 얼마나 이기적인 것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만약 이러한 고려가 없다면 일본이 우리나라에 행했던 침탈의 답습에 불과하다. 독도의 진짜 주인은 무시된 채로 지금처럼 양보 없는 싸움만 계속된다면 결국 모두에게 상처만 남길 것이다. 피 터지게 싸워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사랑하는 여자에게 상처만 준 이름을 알 수 없는 두 남자가 떠오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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