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과 공익성은 양립가능한가?

논술작문 2012. 4. 13. 13:00

영국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은 공리주의를 주창하며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도덕과 입법의 기초원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쾌락주의 철학의 연장선 상에서 공리주의는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최소단위의 자극은 쾌락 또는 고통이라고 한다. 고통 또한 음의 쾌락으로 보았을 때 전체 사회 구성원들이 최대한 쾌락을 누리는 상태를 바람직한 것으로 본 것이다. 여기서 쾌락은 행복의 기본단위이며 사회 구성원들의 행복을 최대한 증진시키는 것은 바로 공익을 달성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공리주의는 방송의 공익성을 판단하는 잣대로서 기능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시청률과 공익성은 상호 대립하는 개념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공리주의의 원리에 따르면 이 두 개념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합치되기도 한다. 프로그램이 재미있는 경우 대체로 시청률이 높다. 이러한 재미는 그 자체로 이미 공익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시청하면 할수록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의 원칙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이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지, 혹은 교훈을 주는지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은 시청률과 공익 모두에 긍정적 이익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재미만 고려해서는 방송의 공익성을 제대로 구현할 수 없다. 이는 방송을 시청할 때 즉각적으로 얻게 되는 일차적 쾌락 뿐만 아니라 그 방송을 통해 얻은 유용한 정보나 지식, 교훈, 희망 등에서 파생되는 이차적 쾌락 또한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그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또 다른 사회적 행복을 만들어 낸다면 이는 금상첨화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시청률과 공익성은 대립하지 않고 같은 방향으로 작용한다. 문제는 일차적으로는 쾌락을 주지만 이차적으로는 고통을 발생시키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폭력적인 콘텐츠는 일차적으로 그 방송을 시청할 때는 쾌락을 주지만 이차적으로는 모방행동을 통해 사회를 폭력적으로 만듦으로써 사회 전체의 잠재적 행복을 감소시키고 고통을 증가시킨다. 만약 일차적인 쾌락보다 이차적인 고통이 더 클 경우 방송은 공익성을 잃는다. 이 경우는 시청률과 공익성이 양립하지 못하며 상호 대립하게 된다.

방송 제작자는 시민의 공유자원을 빌려 사용하느니만큼 그에 대한 대가로서 공익성을 갖는 방송을 제작할 의무가 있다. 높은 시청률을 통한 영리추구는 그 반대편에 공익성이 항존하는 범주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공익성을 담보하지 않은 방송은 시민과의 계약 위반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청률과 공익성은 대립적인 개념이 아니다. 다만 콘텐츠의 내용과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에 따라 높은 시청률이 공익성을 얻기도 하고, 오히려 공익을 해치기도 한다. 분명히 시청률과 공익성은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 가능하다. 그 길은 어렵지만 가야 하는 길이며 그렇기에 방송제작자의 책임이 막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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