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작문 2012. 9. 18. 16:31

“Please let me pass” 이게 무슨 일인가. 나는 지금 파란 눈의 남자에게 애원하고 있다. “Sorry but I can’t” 그는 냉정하게 말했다. 무려 50배의 벌금. 피렌체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피에졸레 마을로 가는 버스에서 사건은 발생했다. 문제는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던 내 버스표. 정류장 포스트에서 산 1유로짜리 버스표를 손에 꼭 쥐고 있던 나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마을로 가는 길목에서 승차한 검표원에게 당당히 승차권을 보여준 나는 벌금을 내라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표가 있는데 내가 왜!

 

그 자의 말은 이러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버스에 탑승하면 버스표를 펀칭기계에 넣어 표에 구멍을 뚫어야 한단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놀이공원에서나 하는 그런 일을 버스에서까지 해야 할 줄이야. 그러고 보니 버스 한 가운데에 요상한 기계가 서 있는 것이 보인다. 표가 있음에도 그 표를 제대로 사용할 줄 몰랐던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이 처음인 외국인 관광객에게 50배의 벌금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나는 이런 룰을 사전에 고지하고 홍보하지 않은 당국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표원은 자기도 어쩔 수 없다며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나는 드디어 최후의 카드를 꺼냈다. “I don’t have any cash now” 나의 당당함에 살짝 주눅이 들어 보인 그는 내 귀에 이렇게 속삭인다. “You can pay with credit card” …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는 표가 있어도 그 표를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면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다. 표는 권리의 상징이다. 기차표, 비행기표 등은 돈을 주고 구입한 교통편의 이용권리다. 우표는 우편 서비스의 정당한 권리를 증명하며 화폐는 대표적인 경제권의 상징이다. 하지만 이 표를 소유한 것만으로 권리를 자연스레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표를 편지봉투에 붙이지 않고 편지봉투 속에 넣는다면 표를 제대로 사용했다고 볼 수 없다. 편지의 송달은 고사하고 소중한 편지가 분실되는 불상사를 맞으리라. 이렇듯 권리는 그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는 사람, 표를 적절히 사용하는 사람에게서만 진정한 가치를 발휘한다.

 

대선이 세달 앞으로 다가왔다. 대한민국의 성인이라면 누구나 한 표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하여 모두가 그 권리를 제대로 사용한다고 할 수는 없다. 선거에서 표의 제대로 된 사용은 후보들의 자질과 정책을 충분히 비교하고 숙고하는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단지 미디어에 비친 이미지만으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만으로 표를 던지기엔 결과에 대한 책임이 너무 무겁다. 대통령이 잘못한다고 욕하기에 앞서 그를 뽑은 이가 국민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내 표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후보들의 정책을 면밀히 살피고 충분히 고민해 본 뒤에 투표하자. 잘 알아보지 않고 서투르게 표를 사용했던 피렌체의 부끄러운 기억이 대선에서 재현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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