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죽음

논술작문 2011. 10. 30. 22:17

아버지가 죽었다. 학교에서 축제가 한창이던 5 13 20 11, 그는 남아있는 마지막 숨을 힘겹게 몰아 쉬며 눈을 크게 뜨고, 그렇게 멈춰버렸다. 뭔가 다음 행동이 발생해야 할 것 같은데 필름의 컷처럼 정지된 그의 모습은 내 머리 속에는 뚜렷이 박제되어 버렸다. 삶과 죽음이 서로 등을 돌리는 틈을 타 나는 그의 이마에 마지막 키스를 하였다. 시퍼런 차가움이 느껴졌다. 하얀 천이 그를 덮었고 앙상한 발가락만이 흔들리는 침대 위로 덜컹거렸다. 나는 영안실로 향하는 그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죽음과 대치하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을 죽음과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마치 판문점의 남북 군인들처럼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두고 서로를 위협하고 있었다. 그는 죽음 앞에서 무기력하지만은 않았다. 죽음을 노려보는 눈빛을 나는 그가 잠자는 도중에 이따금씩 치켜 뜨는 눈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어머니와 우리 남매가 의사의 ‘길어봐야 이틀’이라는 벽력 같은 선고를 듣고 그의 죽음을 예비하는 동안에도 그는 삶에 대한 끝없는 갈망을 야수처럼 드러내었다. 거친 숨을 몰아 쉬면서도 명료한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눈을 번뜩였다. 총 맞아 죽어가는 광포한 사자처럼. 나는 그의 옆에서 며칠 동안을 지켰다. 그리고 나는 서서히 그를 죽였다.

그를 죽인 것은 암이 아니었다. 바로 아들인 나 자신이었다. 그는 사실 그 순간 그렇게 죽지 않을 것이었다. 의사가 우리 가족에게 그만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명령 같은 그 말에 나는 종놈처럼 따랐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아버지는 1년 전에 간암 진단을 받으셨다. 초기에 발견하여 쉽게 고칠 수 있다던 병은 거듭되는 수술과 치료를 모두 물리치고 아버지의 몸을 장악하고 말았다. 그렇게 아버지는 죽음의 문턱까지 떠밀려 가서 그 문턱 앞에서 처절한 반항을 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 그 전 과정을 지켜 보면서 나는 희망의 끈을 놓고 말았다.

만약 죽은 아버지를 부검했다면 그의 사인은 이렇게 나올 것이다. 부친의 죽음을 미리 예감하여 희망의 끈을 놓고 무기력하게 그의 죽음을 기다린 아들의 눈빛. 죽음을 눈 앞에 두고 두려워하는 한 인간의 처절한 호소에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단지 모든 것이 다 괜찮아 질 것이고 당신은 곧 일어나서 우리와 예전처럼 살 수 있을 것이라고만 변명처럼 되풀이했다. 그러한 교과서적이고 무미건조한 대답은 그에게 어떠한 희망도 줄 수 없다는 것을 어쩌면 나는 그 당시에도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상하리만큼 나의 의식은 그의 죽음을 앞두고 명료해졌다. 지금 와서 고백하건데 나는 그 때 아버지를 어떻게든 살려야겠다는 다급한 감정의 울림보다 앞으로 어머니와 동생들을 내가 어떻게 먹여 살려야 하는가에 대한 차가운 걱정들이 앞섰다. 어렸을 때는 상상만 해도 왈칵 쏟아지던 눈물들이 어쩐 일인지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를 앞에 두고, 또 다른 가족들 앞에서 내가 의연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내 자신의 다짐도 있었지만 어른이 되면 눈물이 줄어든다는 일반적인 사실이 그토록 야속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차가운 모습으로 아버지 옆에 병풍처럼 위치해 있었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나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곤 했다. 인공 호흡기로 겨우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도 그의 눈은 나의 눈동자를 향했다. 나의 눈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듯 했다. 하지만 그가 내게서 찾아간 것은 ‘절망’이었다. 자신이 가장 믿던, 자신을 꼭 살려주겠다고 약속했던 큰아들의 눈 속에서 그가 본 것은 절벽 끝에 매달린 절망이었다. 다른 가족들은 의사를 통해서 그의 죽음의 예언을 들었지만 아버지 당신은 아들의 눈빛으로부터 자신의 죽음을 보았던 것이다. 그 때 아마 그는 길었던 싸움을 끝낼 준비를 시작했던 것 같다.

그의 마지막은 기도의 아멘 소리와 함께 왔다. 목사의 마지막 기도가 끝나자 아버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필사적으로 잡고 있던 숨줄을 놓았다. 친족들과 교인들이 그를 빙 둘러싸고 있던 그 순간, 잠시간의 적막이 흐르고 내 눈에선 그제서야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버지의 죽음은 이렇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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