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UHD 방송이 오후 3시8분에 시작된 이유

한국경제 2014. 4. 11. 18:29


2014.04.10. PM 03:08.

지난 10일 오후 3시8분 세계 최초로 UHD 방송 상용서비스가 시작됐습니다.UHD 방송은 HD 방송보다 네 배 이상 선명한 영상과 생생한 음질로 차세대 방송산업을 이끌 것으로 기대되는 서비스입니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는 10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4 디지털케이블TV쇼에서 세계 최초 ‘케이블 UHD 상용화 선포식’을 열고 전용채널 유맥스를 통해 UHD 방송을 송출했습니다.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과 국내외 케이블 업계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습니다.

한가지 눈길을 끄는 것은 방송 시작 시간이 오후 3시8분이라는 것. 뭔가 정시로 딱 떨어지지 않는 이 어정쩡한 시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기자라면 그냥 넘길 수 없는 부분이죠. 기자들 사이에서 여러가지 추측이 난무했습니다. 하지만 협회 관계자의 대답을 듣고는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죠.

“장관님께서 축사를 하시고 송출 스위치까지 이동하는 시간까지를 고려한 것입니다."

오후 3시 정각 선포식 시작. 사회자의 참석자 소개(2분) + 최문기 장관의 축사(5분) + 최 장관을 포함한 VIP들의 송출 스위치까지의 이동시간(1분) = 8분.

세계 최초 UHD 서비스의 시작을 알리는 이벤트는 장관의 일거수 일투족을 중심으로 짜여졌습니다. 협회 관계자에게 오늘의 주인공이 UHD 방송인지 최 장관인지 물었으나 들어오는 대답은 “알면서 왜 그러세요”였죠.

또 다른 문제는 축사에서 발생했습니다. 최 장관의 축사 도중 사회를 보던 아나운서가 장관의 말을 끊고 “장관님, 시간이 부족하니 짧게 해주시죠”라고 말한 것. 3시8분에 송출 스위치를 누르는 퍼포먼스를 통해 방송의 시작을 알리도록 시나리오가 짜여져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최 장관에 맞춰져 있던 시나리오가 최 장관의 행동을 제약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 겁니다. 당황한 최 장관은 작심하고 준비해온 축사를 서둘러 끝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장관 보좌진 측에서 아나운서가 장관의 말을 끊은 것에 대해 거세게 항의한 것입니다. 안그래도 미래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케이블TV방송협회 입장에선 뒷맛이 개운치 않은 행사가 돼버렸습니다.

제목 ‘오후 3시8분’의 미스터리 영화는 이렇게코미디 영화로 끝나게 됩니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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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콘코리아 사장 "스마트폰과 카메라는 공존할 것"

IT이야기 2014. 4. 7. 09:31


“스마트폰과 디지털 카메라는 하나로 합쳐지기보다는 공존할 것이다.”


지난 2월 한국에 온 야마다 코이치로 니콘이미징코리아 대표는 부임 이후 처음으로 지난 2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같이 말했다. 야마다 대표는 1981년 니콘에 입사해 독일 지사장, 유럽 영업본부장, 본사 마케팅본부 제너럴매니저 등을 역임한 마케팅 전문가다. 그는 “스마트 칩셋을 추가하는 과정에서 내부 공간의 제약으로 카메라 본연의 기능이 희생될 수 있다”며 “당분간 스마트폰과 디지털 카메라는 무선통신으로 데이터를 공유하는 선에서 공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야마다 대표의 발언은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 간의 융합을 시도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전략과 대치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2월 카메라 사업부를 아예 무선사업부로 통합했다. 삼성전자가 강점을 보이고 있는 스마트 기기의 DNA를 카메라에 이식하겠다는 복안이다. 실제로 삼성은 갤럭시 NX, 갤럭시 카메라 등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탑재한 스마트 카메라 시리즈를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완전히 반대의 길을 선택한 두 업체의 희비가 올해 카메라 시장의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 디지털 일안반사식(DSLR) 카메라의 점유율을 넘어선 미러리스 카메라에 대해서도 야마다 대표의 생각은 확고했다. 그는 “국내 미러리스 시장이 올해도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점유율 확대에 목매지는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니콘의 미러리스 카메라는 단순히 작고 가벼워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여러 고급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며 “미러리스 카메라 시장이 더 성장하면 자연스레 시장이 세분화 될 것이고, 니콘의 가치를 인정하는 고객도 많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야마다 대표가 택한 길은 DSLR 집중 전략이다. 그는 “스마트폰 등장으로 죽어가는 콤팩트 카메라에 자원을 투입하는 대신, DSLR·렌즈·악세사리 등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특히 캐논에게 빼앗긴 DSLR 보급기 시장의 점유율을 되찾아 오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특히 “DSLR 보급기는 중·고급기 구입으로 이어지는 입구 역할을 한다”며 “현재 니콘이 D3300과 D5300 등 보급기 위주의 마케팅을 펼치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시장 탈환에 자신있냐’는 질문에 야마다 대표는 “당장 눈에 띄는 잘못만 고쳐도 상당히 개선될 것”이라며 “광고 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가전제품 판매점과 온라인에 유통하는 물량도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니콘 카메라는 디지털 화상처리, 색 재연, 암부 노이즈 제거 등에서 탁월한 성능을 보인다”며 “광학이 아닌 가전으로 출발한 회사들이 쫓아오지 못하는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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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같은 e북 만드는'북잼'

스타트업 2014. 4. 7. 09:20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 작가’로 꼽히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개미’ ‘뇌’ 등의 작품으로 인기를 얻은 그가 지난해 11월 신작 ‘제3인류’를 들고 한국을 방문했다. 기자회견장에서 신작을 소개하던 그는 갑자기 태블릿PC를 들어 보이더니 “이 아름다운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이 내 작품집”이라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책 디자인에 대해 까다롭기로 소문난 그가 만족할 수 있었던 것은 전자책 스타트업 ‘북잼’ 덕분이었다. 애초에 전자책 출판은 하지 않으려던 베르베르도 북잼이 만든 전자책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는 후문이다. 


무엇이 그의 생각을 바꿔 놓았을까. 조한열 북잼 대표(39)는 ‘아날로그의 아름다움’이라고 설명했다. 기존의 전자책 출판 방식이 대부분 글자의 나열에 불과했던 반면, 북잼의 전자책 포맷(BXP)은 종이책의 편집 디자인을 그대로 옮겼기 때문에 아날로그의 아름다움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책의 내용을 소비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책 자체를 소장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다”며 “국내 출판 시장이 미국 유럽과 달리 유독 책 디자인에 비중을 두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기능도 탁월하다. 기존 전자책에서 보기 힘든 지도 배경음악 동영상 사진 등을 맥락에 맞게 제공하고 메모하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유하기도 지원한다. 


조 대표가 창업을 시작한 것은 2008년 인터큐비트라는 ‘온라인 콘텐츠 큐레이션(블로그 등의 온라인 콘텐츠를 선별해 보여주는 서비스)’ 업체를 세우면서다. 10년 경력의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콘텐츠 사업에 뛰어든 것은 시나리오 작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창업을 했으나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여러가지 용역을 맡았는데 그중 하나가 전자책이었다. 그는 “작은 출판사에서 전자책 용역을 의뢰해 용역비로 2000만원을 불렀는데 깜짝 놀라더라”며 “나름 금액을 낮춰 불렀다고 생각했으나 출판업계는 생각보다 더 어려운 상태였다”고 말했다. 결국 조 대표는 전자책을 공짜로 만들어 주고 판매수익을 나누는 ‘이익공유제’ 방식을 제안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한 달 만에 만든 ‘청춘을 뒤흔든 한 줄의 공감’이라는 전자책이 애플 앱스토어에서 2위에 올랐다. 조 대표는 “불법 복제에 익숙하던 소비자들이 소프트웨어를 구매하는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며 “전자책 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2011년 회사 이름을 아예 ‘북잼’으로 바꾸고 본격적으로 전자책 시장에 뛰어들었다.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와 만화책 ‘열혈강호’ 등을 연달아 성공시켰다. 2012년 내놓은 ‘세계문학전집’은 앱스토어에서 1위에 오르며 한 달 만에 매출 10억원을 달성했다.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 알토스벤처스 등으로부터 18억원의 투자도 받았다. 


북잼의 성공에는 발상의 전환이 있었다. 기존 전자책이 서점 형식의 플랫폼 앱을 먼저 내놓고 그 안에 콘텐츠를 채워넣는 방식이었다면 북잼은 아예 단권의 책을 앱으로 만들어 파는 전략을 택했다. 조 대표는 “엄선된 콘텐츠를 완결된 형태의 앱으로 만들어 소장 가치를 높인 것이 성공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존 전자책 플랫폼은 출판사보다 플랫폼 자체의 브랜드가 강조된 반면 북잼 전자책에는 출판사 로고만 들어간다”며 “70여개의 출판사가 북잼을 선택한 이유”라고 덧붙였다. 


단권 앱으로 기반을 다진 북잼은 이제 플랫폼 업체로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일단 그동안 출시했던 전자책을 테마별로 모아 전자책 마켓인 ‘클라우드 서재’를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운영체제에 상관없이 책갈피기능 등을 동기화시켜 여러 단말기에서 공유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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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지도, 스터디할 카페 찾다 고대 기숙사서 창업

스타트업 2014. 3. 31. 23:55


2004년 스무 살의 마크 저커버그는 미국 하버드대 기숙사에서 페이스북을 만들었다. 친구들의 사진과 프로필을 모아 놓은 조잡했던 사이트는 현재 12억명이 이용하는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됐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이 지난 지금, 고려대 기숙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문주 대표(27)가 기숙사에서 창업한 대학생 스타트업 ‘모두의 지도’가 바로 그것이다. 


“기존 지도 서비스는 많은 정보를 제공하지만 정작 내가 필요한 정보를 찾기는 어려웠어요. 예를 들어 ‘콘센트를 제공하는 카페’를 찾는 것은 불가능했죠. 이처럼 ‘조건 중심 검색’이 저희 서비스의 차별점입니다.” 지난 28일 사무실에서 만난 이 대표의 표정엔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조건 검색되는 이용자 참여 지도


지난해 4월 이 대표는 창업 관련 교양 수업을 들었다. 담당교수는 수강생끼리 팀을 짜고 다음 시간까지 창업 아이디어를 가져오라고 했다. 아이디어를 구상하기 위해 소집된 팀은 밤늦게까지 회의를 하기로 했다. 


문제는 마땅한 회의 장소가 떠오르지 않았던 것. △밤 12시까지 문을 열고 △무선인터넷과 콘센트를 갖추고 있으며 △흡연이 가능한 △학교 주변의 △카페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 대표는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전부터 창업에 관심이 있던 그는 스마트폰 지도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을 만들기로 했다. 다음날로 예정됐던 SK텔레콤 공채 최종 면접도 포기했다. 이후 컴퓨터공학과 김재용 씨(공동대표·26)와 함께 모두의 지도를 창업했다. 


모두의 지도는 카페 식당 술집 등을 중심으로 내가 원하는 여러 ‘조건’을 충족하는 장소를 찾아주는 앱이다. 이를 두고 이씨는 ‘맞춤형 지도 큐레이션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젊은이들의 니즈를 살피기 위해 고려대생 150명을 조사해 조건을 추렸다. 이후 필요한 조건은 붙이고 잘 안 쓰는 조건은 빼면서 필터링 기능을 강화했다. ‘한식’ ‘양식’ ‘중식’ ‘맛있는’ ‘저렴한’ ‘양 많은’ ‘친절한’ ‘혼자 가기 좋은’ 등 제시된 36가지 조건 중 원하는 항목을 조합해 지정하면 적당한 장소를 찾아준다. 


정보의 신뢰성을 위해 이용자의 자발적 참여는 필수다. 서비스 이용자가 특정 상점이 어느 조건에 해당하는지 분류하면 이 정보가 다시 다른 이용자에게 노출되는 방식이다. 이 외에도 상점에 대한 후기를 남길 수 있고, 해당 장소의 사진을 찍어 올릴 수도 있다. 


○소비자 성향 분석 가능


지난해 11월 서비스를 시작한 이 대표는 학내 커뮤니티인 ‘고파스’에 소개글을 올렸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학생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한 달 만에 가입자가 3000명이 됐다. 


방학 동안 뜸하던 가입자 증가세는 3월 개강과 함께 회복되면서 하루에 100명꼴로 늘고 있다. 현재 가입자는 6000명 정도다. 고려대 주변 상권 정보로 시작했던 서비스는 인기를 얻으며 다른 지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지난 1월 신촌으로 확대된 데 이어 4월 초에는 홍익대와 이태원, 가로수길로 영역을 넓힐 예정이다. 하버드대를 기반으로 이웃 대학들로 영역을 넓힌 페이스북과 마케팅 방식이 비슷하다. 


모두의 지도가 주목받는 이유는 다른 서비스와는 달리 '왜'에 대한 정보를 주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조건으로 검색하기 때문에 '누가 언제 어떤 상점을 왜 방문하는가'에 대한 답을 준다. 이씨는 "지도 위에 사용자들의 이용 패턴이 쌓이면 소비자들이 어떤 니즈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낼 수 있고, 이 정보를 사업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잠재력을 눈여겨본 포스코는 지난해 12월 모두의 지도에 5000만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2014.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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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석 코빗 대표 "비트코인, 화폐논쟁보다 새 산업으로 봐야"

비트코인 2014. 3. 26. 11:00


“비트코인이 화폐인가 아닌가에만 논의의 초점을 맞춰서는 안됩니다. 비트코인이 가지고 있는 산업적 측면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한국 최초 비트코인 거래소 코빗(Korbit)의 유영석 대표(사진)는 10일 한국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현재 비트코인에 대한 논의가 다소 왜곡돼 있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섣불리 규제의 칼날을 들이댈 것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이 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 대표는 최근 정부가 비트코인을 화폐로 인정하지 않고 악용 가능성에 대해 감시를 강화하기로 내부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비트코인이 화폐의 역할을 일정 부분 수행한다고 해서 정부가 바로 화폐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비트코인을 성장 잠재력을 가진 디지털 금융 인프라로 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유 대표는 “비트코인은 단순한 가상화폐가 아니라 애플의 iOS나 구글의 안드로이드와 같은 일종의 금융 운영체제(OS)로 볼 수 있다”며 “스마트폰 OS에 애플리케이션(앱)을 깔아 쓰듯, 비트코인 플랫폼 안에서도 다양한 응용 서비스들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비트코인으로 대금을 결제할 때 문서 파일을 암호화해 함께 보낼 수 있고, 이 내역은 비트코인 네트워크에 고스란히 저장·공유돼 추후 증거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며 “일종의 디지털 공증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비트코인은 특정 조건이 충족됐을 때 거래가 자동으로 발생하도록 할 수 있다”며 “이를 이용해 비트코인으로 유산을 남기면 어린 자녀가 특정 연령이 되는 해에 비트코인을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주식시장의 지수나 환율 등 금융 데이터에 조건을 걸면 금융회사를 거치지 않고도 스스로 작동하는 선물이나 옵션, 보험 상품 등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일종의 스마트 금융 OS라는 설명이다.


유 대표는 비싼 수수료 때문에 활성화되지 못한 소액결제 시장에서 비트코인이 강점을 발휘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소수점 8자리까지 분할이 가능한 비트코인의 특성을 이용하면 인터넷상의 문화상품 소액결제에도 활용이 가능하다”며 “인터넷에서 공유되는 한류 콘텐츠에 100원이 안되는 돈도 쉽게 결제할 수 있어 한류문화 수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 비트코인에 대한 투기적인 접근이 미국의 닷컴버블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버블이 꺼진 뒤에도 인터넷이라는 기술의 가치는 변하지 않아 구글·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이 나온 것처럼, 장기적으로 비트코인이라는 기술 위에 새로운 산업이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이 나오기 힘들었던 이유는 언어 장벽 때문이었고, 글로벌 금융기업이 없었던 것도 원화라는 화폐를 기반으로 해 태생적인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비트코인이라는 세계 공통의 ‘금융언어’가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 IT와 결합하면 이런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 대표는 미국에서 전기공학과 금융학을 전공한 뒤 유엔 우주사무국에서 일했다. 이후 실리콘밸리에서 창업교육을 받고 한국에 들어와 올해 코빗을 세웠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2013.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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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옌훙 바이두 회장, 실리콘밸리의 유망한 엔지니어…호텔방서 중국형 검색엔진 개발

한국경제 2014. 3. 26. 10:57


지난달 초 중국 재계에 주목할 만한 일이 있었다. 리옌훙 바이두 회장이 부동산 재벌 왕제린 완다그룹 회장을 제치고 중국 부자 순위 1위에 오른 것. 중국에서 정보기술(IT)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최고 부자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블룸버그 억만장자지수’에 따르면 리 회장의 재산 규모는 122억3145만달러다. 1년 만에 65%나 증가했다. 음료기업 와하하의 쭝칭허우 회장을 제치고 2위 자리에 앉은 지 14일 만에 1위 자리까지 올랐다. 미국에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최고 부자가 되면서 미국 성장산업의 지형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처럼 중국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대체 리옌훙은 어떻게 바이두를 성공시켰을까.


○도서관에서 시작된 꿈


리옌훙은 1968년 중국 산시성 양취안의 공장 노동자 부부의 5남매 중 유일한 아들로 태어났다. 중학생 시절 그는 독서를 매우 좋아했다. 책을 읽기 위해 직원에게만 개방되는 공장 도서관을 아버지 출입증을 이용해 몰래 드나들 정도였다. 그는 “당시 도서관에서 원하는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없어 힘들었다”며 “이는 내가 검색엔진 개발에 나서게 된 배경 중 하나”라고 회상했다.


어렸을 적 리옌훙의 어머니는 “우리 집안은 평범하기 때문에 네가 성공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에 가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어머니의 바람대로 리옌훙은 베이징대에 진학해 정보관리학을 전공하는 동시에 컴퓨터 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당시 습득한 정보관리학과 컴퓨터 지식은 향후 그가 검색 사이트 바이두를 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베이징대를 졸업한 리옌훙은 미국 유학길에 올라 뉴욕주립대 버팔로대학 컴퓨터학과 석사과정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여름방학을 맞은 리옌훙은 파나소닉 정보기술 연구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광학식문자판독기(OCR) 분야를 연구해온 그는 실습 기간 동안 식별효율을 높이는 알고리즘을 개발해 주목을 받았다. 실습이 끝날 무렵 파나소닉은 실습생을 정규직원으로 채용하지 않았던 관행을 깨고 그를 채용했다. 이후 리옌훙은 자신이 개발한 알고리즘에 관한 논문을 국제 학술지에 발표했다. 리옌훙의 지도교수는 국제적인 수준의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뛰어난 리옌훙이 박사학위를 따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았다. 하지만 실무 경험을 중시했던 그는 월스트리트의 스카우트 제의에 과감하게 박사 학위를 포기했다.


○3성 호텔방서 시작한 바이두


경제뉴스를 제공하는 다우존스에 입사한 리옌훙은 박사급 대접을 받으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다우존스에서 그가 개발한 금융정보 검색 시스템은 아직까지 월가의 수많은 기업이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성공했다. 이후 그는 인포시크라는 유명 검색엔진 업체를 거치며 기술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창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999년 중국에도 인터넷 환경이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그는 120만달러를 모아 중국으로 돌아가 창업에 뛰어든다. 당시 그의 나이 31살이었다.


첫 사무실은 3성급 호텔의 객실이었다. 6개월의 밤낮없는 개발 끝에 중국 실정에 가장 적합한 검색엔진 바이두가 완성됐다. 바이두라는 이름은 송나라 시인 신치지의 시구에서 나왔다. ‘무리 속에서 그를 수백, 수천 번 찾았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니 등불 아래 그가 있더라’라는 시구 중 ‘수백번(百度)’이라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 필요한 것을 찾는다는 검색엔진의 이미지를 잘 살린 이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다른 엔지니어들과 차별화됐던 것은 기술 개발보다 비즈니스 전쟁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꿰뚫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던 시절 애독했던 월스트리트저널(WSJ)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신문을 통해 마이크로소프트가 어떻게 IBM에 대항하고 있는지,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에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등 비즈니스 전략을 읽을 수 있었다. 리옌훙은 뒷날 “기술은 결정적 요소가 아니며 비즈니스 전략을 어떻게 구사하는지가 승부를 결정하는 진정한 요소”라고 말했다. 


그의 비즈니스 감각이 유감 없이 드러난 것은 바이두의 미국 증시 상장이었다. 세계적인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해외 자본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리옌훙은 바이두의 미국 나스닥 상장을 결정했다. 2005년 8월 개장가 66달러로 상장된 바이두의 주가는 당일 최고 151달러까지 오르며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렀다. 이후 바이두는 승승장구하며 성장해 2012년에는 매출 223억600만위안(약 3조9000억원)을 달성했으며 2013년에도 40~50%의 성장세를 보였다.


○수평적 리더십이 성공 비결 


“호랑이 없는 곳에 토끼가 왕노릇을 한다.” 일부 사람들은 바이두를 두고 이렇게 비아냥대기도 한다. 2010년 중국 정부와의 관계 악화로 세계 최대 검색엔진 구글이 철수하자 중국 시장은 바이두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바이두의 검색 점유율은 70%를 넘어서고 있다. 일각에서는 “구글이 중국에서 퇴출되지 않았다면 시장점유율 1위는 어림도 없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수많은 경쟁 업체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왜 유독 바이두가 크게 성공했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리옌훙의 경영철학이 주된 성공 요인 중 하나였다. 그는 직원들에게 ‘실패해도 좋으니 뭐든지 해보라’며 새로운 시도를 장려한다. 사실 바이두의 초기 검색엔진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는데 리옌훙은 우선 부딪치고 보자는 생각으로 고객에게 서비스하기로 했다.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는 그때그때 해결해 나가면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타이밍이 무엇보다 중요한 인터넷 시장에서 만약 기술적으로 완벽한 상태에서 시장에 진출하려고 했다면 시장 선점의 기회는 영영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바이두의 지식 검색 서비스도 고객들의 피드백을 통해 끊임없이 개선해 현재에 이른 것이다. 리옌훙은 “바이두는 넘어지며 성장하는 어린이”라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리옌훙이 미국에서 공부해 민주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도 회사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다른 중국 기업들이 수직적 의사전달 구조를 가지고 있는 데 비해 바이두는 수평적 의사소통 구조를 가진 회사로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제품기획 회의에서 리옌훙이 외부 업체와 합작해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자는 의견을 냈지만 다수의 임원들이 반대해 그의 의견이 통과되지 못한 적도 있다. 리옌훙이 말하는 중간에도 누구든 이견을 제시하거나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상하관계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는 민주적인 의사소통 구조는 직원들의 사고를 유연하게 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촉진해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는 것이 동종업계의 평가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2014.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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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로 만든 달걀' 세계 갑부들이 반했다

스타트업 2014. 3. 26. 10:51


‘땅에서 자라는 달걀’에 세계 최고 부호들의 돈이 몰리고 있다. 식물성 단백질로 만든 달걀 대체재 산업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어서다.


실리콘밸리의 벤처 식품기업 햄튼크릭푸드는 17일(현지시간) 리카싱 홍콩 청쿵그룹 회장이 이끄는 벤처캐피털 호라이즌벤처스 등으로부터 2300만달러의 투자를 받았다고 발표했다. 310억달러(약 33조원) 자산가로 아시아 최고 부자인 리카싱 회장은 이전에도 페이스북 스카이프 등에 초기 투자해 상당한 성공을 거둔 인물이다. 이 밖에 세계 최대 부자인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MS) 기술고문, 피터 시엘 페이팔 공동설립자, 제리 양 야후 공동설립자, 비노드 코슬라 썬마이크로시스템즈 공동설립자 등 쟁쟁한 사업가들이 햄튼크릭푸드 투자에 참여했다.


햄튼크릭푸드는 2011년 조시 테트릭 최고경영자(CEO)가 설립한 식품기업으로, 황두 등 식물성 원료로 만든 인조 달걀 ‘비욘드에그(beyond eggs·사진)’로 주목받고 있다. 비욘드에그는 콜레스테롤이 포함돼 있지 않고 조류인플루엔자(AI)나 살모넬라 등 감염성 질병 걱정도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달걀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과 채식주의자 사이에서 환영받고 있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닭장에서 비인도적으로 닭을 사육할 필요도 없다. 맛은 달걀과 같거나 오히려 나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적 과학기술잡지 파퓰러사이언스가 지난해 이 업체에 혁신대상을 준 이유다.


투자자들이 비욘드에그를 주목하는 이유는 이런 장점뿐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생산비가 기존 달걀 대비 48% 저렴해 경제성을 갖췄기 때문이다. 빵이나 쿠키 마요네즈 등 가공식품 원료로 사용할 경우 상품 가격은 낮추면서 몸에 좋고 맛도 좋은 상품을 만들 수 있다. 몇몇 식품 제조업체에 비욘드에그를 공급하던 햄튼크릭푸드는 최근 대형 유기농 식품 유통업체 홀푸드마켓과 계약을 맺고 인조 달걀 마요네즈 ‘저스트마요’를 납품하며 미국·영국 소매시장에도 진출했다.


문제는 늘어나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 필요한 설비 투자 비용이었다. 투자자를 물색하던 테트릭 CEO는 우연한 기회에 리카싱 회장을 만나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리카싱을 찾아간 테트릭은 비욘드에그의 장점을 역설한 끝에 1550만달러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 비노드 코슬라와 제리 양으로부터 추가 투자를 받아 총 2300만달러를 확보했다. 테트릭 CEO는 “이 돈으로 생산 설비를 확충하고 연구개발(R&D)에 힘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햄튼크릭푸드에 있어 리카싱의 투자가 중요한 이유는 그가 중국 진출의 교두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세계 달걀 생산량의 38%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다. 테트릭 CEO는 “중국 각지에서 AI가 발생해 달걀의 위험성이 높아진 지금이 중국 진출의 적기”라고 강조했다. 중국 농부들과의 상생 가능성도 열어뒀다. 그는 “황두 등 인조 달걀 제조에 필요한 작물을 재배할 경우 이를 구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2014.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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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나 허핑턴 '허핑턴포스트' 회장, 대통령·영화감독 등 5만명 필진…댓글 토론으로 충성독자 확보

한국경제 2014. 3. 26. 10:47


‘이카로스 이후 가장 높이 올라간 그리스인.’

2011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허핑턴포스트의 설립자이자 현직 회장인 아리아나 허핑턴을 그리스 신화 속 인물에 빗대 이렇게 묘사했다. 미국 대형 온라인 포털 AOL이 창간 6년밖에 안된 허핑턴포스트를 3억1500만달러에 인수하면서 허핑턴이 얻게 된 평가다. 허핑턴포스트는 일찌감치 워싱턴포스트와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온라인 트래픽을 따라잡고 2011년에는 뉴욕타임스도 추월하며 세계에서 방문자 수가 가장 많은 인터넷 신문이 됐다. 결국 그해 허핑턴은 타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들었고 지난해에는 포브스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우먼 20인’에 선정됐다.

○콤플렉스 극복한 그리스 소녀

허핑턴은 1950년 7월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나치 점령 하에서 레지스탕스 신문을 펴낸 언론인으로 이후 경영 컨설턴트로 일했다. 허핑턴은 아버지를 따랐지만 그의 어머니는 전쟁 때문에 염세적으로 변해버린 아버지의 성격 탓에 허핑턴이 9세 때 이혼한다. 이후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그는 16세 때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대 거튼칼리지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어린 시절 그는 몇 가지 태생적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사춘기 시절에는 177㎝까지 커버린 큰 키에 절대 남자친구를 사귀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케임브리지대 유학 시절엔 억센 그리스 억양 때문에 외계인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외국인 최초로 케임브리지대 학생회장을 맡게 된다. 경영학 석사로 케임브리지대를 졸업한 21세의 허핑턴은 21세 연상의 ‘더 타임스’ 칼럼니스트 버나드 레빈을 만나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레빈은 허핑턴이 작가이자 지성인으로 활동할 수 있는 지적 토양을 제공했다.

레빈을 만나 세상에 눈을 뜬 허핑턴은 23세 때 여성 해방운동을 주장한 저매니 그리어의 저서 ‘여성적 내시’에 반박하기 위해 ‘여성적 여자’라는 책을 쓰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7년간의 동거 생활에도 레빈이 결혼을 원치 않자 30세가 된 허핑턴은 1980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으로 건너간 허핑턴은 저술가로 활동하다 1985년 석유재벌이자 공화당 정치인이던 마이클 허핑턴을 만나 이듬해 결혼하며 현재의 허핑턴이란 성을 쓰게 된다. 마이클은 1994년 상원의원에 당선됐으나 둘의 가정생활은 이후 3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허핑턴은 결별 이유에 대해 “마이클은 유럽에서 요트를 타며 노후를 즐기고 싶어했지만 나는 내 인생을 더 발전시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터넷판 ‘아고라’ 허핑턴포스트

마이클을 통해 미국 정계에 두터운 인맥을 쌓고 이혼으로 거액의 위자료를 받은 허핑턴은 2003년 무소속으로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도전했다가 영화배우 출신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높은 벽에 부딪혀 선거 전날 기권한다. 실패를 딛고 그가 선택한 것은 인터넷 신문. 선거운동을 치르면서 온라인의 영향력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2005년 그의 나이 55세에 자본금 100만달러(약 11억원)로 허핑턴포스트를 설립했다. 초창기 허핑턴포스트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르윈스키 스캔들을 폭로했던 최초의 미디어 블로그 ‘드러지리포트’를 베꼈다는 평가를 들었다. 그랬던 허핑턴포스트는 허핑턴의 폭넓은 인맥과 화학작용을 일으키면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월터 크롱카이트 등 당대 쟁쟁한 논객들이 돈 한푼 받지 않고 블로그에 글을 쓰게 만든 것은 전적으로 허핑턴의 능력이었다. 이후 오바마 미국 대통령, 노엄 촘스키 MIT 교수,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리처드 도킨스 옥스퍼드대 교수,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 등 쟁쟁한 명사들이 허핑턴포스트에 무료로 글을 썼고 수많은 독자를 끌어들였다.

허핑턴포스트는 기자들이 직접 취재하기보다는 5만명에 달하는 블로거의 글에 의존하고, 다른 매체가 보도한 기사를 적절히 가공해 보도한다. 그러다 보니 경쟁자들로부터 독립적인 매체라기보단 ‘기생충’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자신들의 기사를 베꼈지만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SNS)에 퍼뜨리는 등 마케팅은 더 잘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저널리즘적 관점에서 보면 700여명의 기자들은 대부분 비전문 인력이지만 인터넷 환경에 최적화돼 있다. 다른 매체 기자들이 기사를 송고하고 나면 일이 끝나는 반면 허핑턴포스트 기자들은 SNS에서 독자가 기사를 읽을 때까지 5분마다 한 번씩 제목의 토씨를 바꿔 가며 밤새 재발신한다.

허핑턴은 허핑턴포스트의 성공 배경에 대해 그가 그리스인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일반 시민들이 모여 정치와 사회, 예술 등을 토론하며 여론을 형성했던 ‘아고라(광장)’를 온라인에 옮겨 놓은 것이 허핑턴포스트라는 것이다. 허핑턴은 사람들이 기사를 읽을 뿐만 아니라 기사 내용에 대해 다른 독자와 얘기하고 싶어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소셜 뉴스’라는 코너를 통해 댓글을 매개로 친구를 모으고, 기존 SNS의 친구를 끌어와 토론할 수 있게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댓글 활성화로 독자가 늘면서 자연스레 악성 댓글도 늘어났는데 전문 댓글 관리자와 댓글 순화 프로그램을 통해 해결해 왔다. 하지만 악성 댓글이 너무 많아져 기존의 방법으로 감당할 수 없어지자 지난해 댓글 실명화를 선언했다.

‘그래도 나는 내 길 간다’

미국 언론계에서 허핑턴은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개방적이고 지성미를 갖췄으며 매혹적이라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그에 대한 비판 여론도 적지 않다. ‘변절’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정치적 신념과 원칙을 바꿔왔기 때문이다. 허핑턴은 남편이 공화당원이었던 만큼 열렬한 보수주의자였다. 그러다 1996년 알 프랭켄 민주당 의원과 함께 미국 코미디 방송국인 ‘코미디 센트럴’의 정치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민주당 지지로 전향했다.

여성주의적 신념도 바꿨다. 그의 첫 저서 ‘여성적 여자’에서는 여성주의자들을 비판했으면서도 ‘피카소: 창조자이자 파괴자’란 저서에서는 피카소를 여성 혐오주의자로 묘사하며 페미니즘적인 성향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워싱턴포스트의 다나 밀뱅크는 “허핑턴은 다음에 유행할 아이디어를 무작정 좇는 방식으로 성공한 기업가이자 작가”라고 평했다. 그의 성공은 만나왔던 남자들의 후광 때문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버나드 레빈을 통해 지적 토양을 얻었고 전 남편이었던 마이클 허핑턴을 통해 재력과 폭넓은 정계 인맥을 얻었다. 이후 AOL의 임원이었던 케네스 레러를 만났는데 허핑턴포스트에 대한 아이디어는 레러와의 대화에서 나왔으며 초기 투자금 100만달러 가운데 상당 부분을 레러가 투자했다. 레러는 허핑턴포스트의 첫 최고경영자(CEO)였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도 그녀의 능력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탁월한 사교술 덕분에 그는 넓은 인맥과 사랑을 얻을 수 있었다. 수많은 비판에도 그는 “다른 사람의 비판에 내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는 없다”며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2014.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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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파스키에 주한 프랑스 대사 "마더·설국열차…봉준호 감독 영화 안본게 없어요"

한국경제 2014. 3. 26. 10:42


“영화 ‘마더’(봉준호 감독)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한국 특유의 강렬한 표현 방식으로 인간의 감정을 깊이 있게 그려냈습니다. 봉 감독의 최근 인기작 ‘설국열차’보다 제가 마더를 더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이태원의 프랑스 음식점 ‘르꽁뜨와’에서 만난 제롬 파스키에 주한 프랑스 대사는 한국 영화를 줄줄이 꿰고 있었다.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실미도’, 봉 감독의 대표작 ‘괴물’, 최근 비행기에서 봤다는 ‘7번 방의 선물’까지….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들이 그의 입에서 술술 나왔다. 심지어 한국 사람에게도 생소한 베니스 영화제 초청작 ‘무게’와 칸 영화제에서 단편부문 황금종려상을 받은 ‘세이프’ 등에 대한 칭찬도 곁들였다. 그가 ‘무게’에 대해 “제목에서 오는 느낌처럼 무거운 이야기를 비극과 희극을 오가며 절묘하게 조율했다”는 평가를 할 때는 영화평론가로 착각할 정도였다.


○문화강국 비결은 정체성 확보


한·불 문화 교류에 관심이 많은 그가 지난달 20일 프랑스 음식을 제대로 보여주겠다며 찾은 곳은 르꽁뜨와였다. 다른 유명 프랑스 레스토랑도 많은데 굳이 이곳을 택한 이유에 대해 파스키에 대사는 “일반적으로 ‘프랑스 요리’라고 하면 비싸고 고급스러운 정찬만을 떠올리는데 이곳은 소담하고 친근해 프랑스 요리의 새로운 면모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한국인 셰프가 운영하는 만큼 한·불 문화 교류의 상징”이라는 의미도 더했다.


파스키에 대사는 프랑스 음식점을 고르긴 했지만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 1988년부터 5년간 주한 프랑스대사관 문화 참사관으로 근무했던 그는 2012년 대사로 다시 부임했다. 프랑스에 돌아간 뒤 ‘삼계탕’의 맛이 너무 그리웠다고 했다.


르꽁뜨와의 점심은 주방장이 정한 코스대로 매일 메뉴가 바뀐다. 빵이 나오기 전 레드 와인으로 잔을 채웠다. 와인의 이름은 코트뒤론. 한국 사람에게도 익숙한 보르도와 보르고뉴 사이에 있는 원산지의 이름을 땄다. 텁텁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달지도 않은 향이 혀끝을 맴돌았다. 파스키에 대사는 “한국에 지역별로 특산 김치가 있듯 프랑스는 지역마다 독특한 와인이 있다”고 소개했다. 프랑스 관광산업이 국내총생산(GDP)의 7~8%를 차지할 정도로 발달할 수 있었던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갓 구운 빵 소쿠리가 테이블에 놓였다. 고소한 냄새가 코로 전해졌다. 파스키에 대사는 관광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여러 지방이 각자 독특한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리에 가서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여행의 목적은 그 지역의 특수한 문화를 느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는 바스크, 프로방스 등 각 지방이 저마다 다양한 분위기를 품고 있어 어느 곳이나 신선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채 요리로 정갈한 접시에 샐러드가 곁들여진 ‘테린 캄파뉴’가 올라왔다. 테린은 돼지 간을 각종 채소와 함께 오븐에서 중탕으로 익힌 프랑스의 대중적인 음식이다. 이야기는 프랑스에 불고 있는 한류로 흘렀다. 파스키에 대사는 “프랑스 젊은이들 사이에서 K팝, 영화, 드라마 등 한류 바람이 거세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한·불 정상회담으로 프랑스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 드라마를 사랑하는 프랑스인 모임’을 찾았을 정도다. 파스키에 대사 자신도 “2010년 방영한 드라마 ‘장난스런 키스’를 재밌게 봤다”며 “개인적으로 판소리도 좋아한다”고 귀띔했다.


일자리 위해 갈아탄 정책 노선


메인 요리로 ‘커리 소스로 쪄낸 홍합’이 한가득 보울에 담겨 나왔다. 포크로 홍합을 까던 파스키에 대사에게 프랑스 경제에 관해 물었다. 그는 “지난해 성장률을 보면 확실히 경기 후퇴에서는 벗어나 회복되고 있다”며 “작년 4분기 성장률은 0.3%로 유럽에서 가장 잘 나가는 독일의 0.4%와 큰 차이가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기업의 세금 부담을 줄여주기로 한 것이 경제정책 방향의 근본적 변화인지 궁금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취임 초기 부유세 추진 등 각종 포퓰리즘적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파스키에 대사는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일자리 부족”이라며 “올랑드 정부는 기업 지원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기업의 사회보장 부담금을 줄여주고, 프랑스에 투자하는 해외 기업에 각종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이 같은 정책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지난달 18일 올랑드 대통령은 삼성전자, 인텔, GE 경영진 등 30명의 기업인을 엘리제궁으로 초대했다.


최근 중국 둥펑자동차가 프랑스의 대표적 자동차 기업 푸조를 인수한 데 대해서는 “무엇이 문제냐”고 반문했다. 그는 “푸조는 가족 경영 구조로 규모가 작아 자동차산업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었다”며 “이번 지분 인수를 통해 규모도 키우고 급성장하는 중국 자동차 시장도 노릴 수 있어 오히려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는 유럽의 심장에 위치해 교통이 좋고 프랑스의 6500만 인구는 물론 유럽 전역을 시장으로 삼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초과학을 기반으로 한 우수한 노동력, 뛰어난 교통·에너지 인프라, 높은 문화 수준 등 다른 이점도 열거했다. 


타협의 톨레랑스


파이의 일종인 사과 타르트가 디저트로 나왔다. 입 안에 남은 커리 향이 서서히 사라져 갔다. 조금 민감한 사안으로 화제를 돌렸다. 올랑드 대통령의 스캔들에 대해 물었다. 지난 1월 프랑스 잡지 클로저는 올랑드 대통령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여배우 쥘리 가예와 밀애를 나눠왔다고 폭로했다. 그 ‘바람’에 동거녀인 트리에르바일레는 몸져 누웠으며 끝내 결별했다. 파스키에 대사는 담담하게 답했다. 타르트를 입에 넣은 채 “대부분의 프랑스인은 대통령의 사생활에 개의치 않는다”며 “프랑스 국민이 대통령에게 원하는 것은 좋은 가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정책을 펴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시라크, 미테랑, 사르코지 등 전임 대통령도 비슷한 전력이 있다. 오히려 대통령도 평범한 남자라는 것을 보여줘 대중적인 지지도는 올라갈 수도 있다”며 웃었다. 실제로 지난 1월 외도를 공식 인정한 이후 올랑드 대통령의 지지율은 깜짝 상승했다.


올랑드 대통령의 예에서도 엿볼 수 있듯 프랑스는 톨레랑스(tolerance)의 나라다. 톨레랑스는 ‘타인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에 대한 존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파스키에 대사는 “프랑스인의 이런 면모를 사회적 타협의 과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프랑스 정부가 노조와 수개월에 걸친 협상 끝에 ‘연금 개혁의 틀’을 세웠다”며 “개혁에 앞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퇴직자는 늘고 경제활동인구는 줄어 연금 개혁이 불가피해진 상황에서 이해당사자들이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고 한발짝씩 양보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연금 개혁의 핵심 내용은 법정 퇴직 연령을 현행 62세로 유지하는 대신 연금을 받기 위한 기여금 납부 기간을 늘리는 것이다.


얼 그레이, 에스프레소 등 각자의 찻잔이 바닥을 드러낼 즈음 임기 중 가장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물었다. 그는 “남은 임기에 한국 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프랑스에 유치하고 싶다”며 “2015~2016년 ‘한·불 상호교류의 해’를 통해 양국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불 비즈니스와 문화의 가교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그의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2014. 3. 6]




파스키에 대사의 단골집,르꽁뜨와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2에 있는 르꽁뜨와는 한국인 셰프가 운영하는 정통 프랑스 음식점이다. 파란색을 중심으로 아기자기하고 깔끔한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이태원역과 가까워 접근성도 좋다.


이 가게의 셰프 서문용욱 씨(37)는 프랑스 리옹의 유명 요리학교 ‘엥스티튀 폴 보퀴즈’에서 요리를 배우고 파리 미슐랭 가이드 선정 3스타 레스토랑인 ‘르도옌’을 거쳐 파리 ‘라시에스트’에서 헤드셰프로 일했다. 휴가차 한국에 왔다가 때마침 이태원에 좋은 자리가 난 것을 놓치지 않고 르꽁뜨와를 열었다. 한국의 많은 프랑스 레스토랑이 한국화된 프랑스 음식을 선보이지만 서씨는 ‘기본이 흔들리면 이도 저도 아닌 정체불명의 요리가 될 것’이라며 프랑스 정통 레시피를 고집한다. 한국에 사는 프랑스인들이 이곳을 많이 찾는 이유다.


인기 있는 메뉴는 르꽁뜨와 샐러드, 양갈비구이, 자연산 대구요리, 부드러운 소 뽈살찜 등이다. 메인요리는 3만~4만원, 애피타이저는 1만4000~2만4000원, 디저트는 1만원 안팎이다. 평일 점심에 가면 그날 셰프가 정한 ‘점심 특선 코스’를 맛볼 수 있다.가격은 1만9000원. (02)792-8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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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커의 경고…"유출된 정보로 당신 은행계좌 다 털 수 있다"

한국경제 2014. 3. 26. 10:35

“지금까지 털린 개인정보로 거의 모든 범죄가 가능해졌어요. 빠져나간 개인정보를 악용할 수 있는 사례가 어찌나 많은지 시나리오 공모전을 열어도 될 정도예요.”


대한민국이 금융범죄에 벌거벗겨졌다. 지난 1월 KB국민·NH농협·롯데 등 카드 3사에서 1억400만건의 고객정보 유출이 드러난 데 이어 지난 6일에는 KT 홈페이지 해킹으로 1200만건(981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잇따라 새나간 개인정보가 이미 시중에 범람하며 각종 범죄에 이용되고 있다는 해커들의 증언이 나오고 있다. 


개인의 사생활을 뒷조사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본인을 사칭한 금융사기도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국경제신문이 17일 인터뷰한 익명의 해커 A씨는 “과거에도 개인정보 유출이 있었지만 카드사와 KT 사태 이후로 광범위한 정보가 풀려 개인정보를 얻는 게 너무 쉬워졌다”며 “1인당 100원이던 4대 개인정보(이름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이메일주소)를 이제는 1~5원에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정보 유출이 국가비상사태급이지만 정부와 국민이 심각성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며 “정부는 책임회피, 사태축소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진상을 있는 그대로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해커는 현재 시중에 돌아다니는 개인정보를 갖고 저지를 수 있는 범죄로 다음 세 가지를 제시했다.


(1) 대포폰 통해 소액결제


금융회사 등에서 유출된 개인정보 중 가장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경로는 ‘이메일’이다. 이메일 주소를 확보하면 비밀번호는 다양한 방식으로 알아낼 수 있다. 다른 경로로 유출된 정보에서 비밀번호를 얻거나 비밀번호 대입 프로그램을 이용해 알아낼 수도 있다.


비밀번호를 알아내 일단 이메일 계정에 접속하면 얻을 수 있는 개인정보의 폭은 확 넓어진다. 많은 사람이 민감한 개인정보를 메일함에 무심코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여권과 주민등록증 등 신분증 사본이다. 해외여행이나 출장을 다녀오면서 여행사나 회사 서무팀에 보낸 스캔 파일이 보낸편지함 등에 그대로 저장돼 있는 사례가 많다.


개인정보를 악용하기로 마음먹은 해커들은 ‘여권’ ‘주민’ 등의 키워드 검색을 통해 이 같은 고급 정보부터 확인한다. 신분증 사본이 있으면 온라인 휴대폰 판매사이트에서 피해자 명의의 대포폰을 개통할 수 있다. 이 대포폰을 소액결제에 활용하면 월 최대 30만원까지 결제가 가능하다. 이후 대포폰은 다양한 사칭 사기에서 본인인증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2) 불법 계좌이체·인출 


이메일 계정에는 인터넷 뱅킹 보안카드 사진파일이 저장돼 있는 경우도 많다. 적지 않은 인터넷 뱅킹 이용자들은 스마트폰에 보안카드를 사진으로 저장해 이용한다. 그 경우 스마트폰 데이터를 메일로 백업하면 보안카드 사진이 메일 계정에도 남는다.


유출된 개인정보에 추가로 보안카드까지 확보하면 공인인증서를 다시 발급할 수 있다. 재발급받은 공인인증서를 통해 피해자의 계좌에 있는 돈을 대포통장으로 이체할 수 있다.


이체한 돈을 현금화하기 위해서는 위조 주민등록증이 필요하다. 유출된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정보를 이용해 만들 수 있는 위조 주민등록증은 중국 출신의 브로커들이 약 3만원에 판매한다. 은행마다 대포 통장을 만들어 피해자의 돈을 각각 이체한 뒤, 조선족 등 외국인들로 구성된 인출조로 한꺼번에 돈을 인출한다. 순식간에 자기 통장에서 거액의 돈이 빠져나갈 수 있다.


(3) 신용정보 조작·사생활 공개 


유출된 개인정보가 금전 사기가 아니더라도 신용정보 조작이나 사생활 공개에 악용되면 치명적이다. 실제로 이번 유출 사태 이후 “입찰에서 떨어뜨리고 싶은 경쟁사가 있으니 해당 법인과 대표이사의 신용도를 불량으로 만들어 달라”는 청부해킹 의뢰가 들어오기도 했다고 A씨는 밝혔다. 제시된 대가는 2억원이었다. 유출된 개인정보를 이용해 신용대출 서류를 꾸미면 거액의 대출 사기를 벌일 수도 있다. 


과거의 애인이었던 연예인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다른 남자 연예인과 사귀는 동안 찍었던 사진을 유포해 달라”는 요청도 들어왔다고 한다. 두 건 모두 의뢰에 응하지는 않았다고 A씨는 말했다.


박병종/김보영 기자 ddak@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2014. 3. 17]



해커가 조언하는 긴급처방 5가지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늘면서 금융사고 등 2차 피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해커 A씨가 조언한 긴급 처방 다섯 가지를 추렸다.


#1. PC와 이메일, 클라우드 서비스 등에 저장된 개인정보부터 삭제하라.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 무심코 여행사에 여권 사본을 보냈다면 금융범죄의 타깃이 되기 쉽다. 특히 휴대폰에 인터넷 뱅킹용 보안카드를 사진으로 찍어 보관하고 있다면 즉시 삭제하라. 만약 이런 정보가 해킹되면 개인 과실로 간주돼 피해를 구제받기 힘들다.


#2. 신용카드와 은행 통장을 폐기하고 재발급받아라. 이미 당신의 신용카드 번호와 은행 계좌번호 등은 유출됐다고 봐야 한다. 조금 번거롭더라도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최소 조치다.


#3. 공인인증서를 USB메모리 등 휴대저장장치에 보관하라. PC나 인터넷상에 보관할 경우 해커들의 표적이 되기 쉽다. 특히 공인인증서 재발급이나 계좌 이체시 이용 내역을 바로 알려주는 문자(SMS) 통지 서비스에 가입해야 한다. 


#4. 인터넷 뱅킹 사이트의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즉시 바꾸고 다변화하라. 적어도 금융 서비스만큼은 다른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사용하는 게 안전하다.


#5. 인터넷뱅킹 이용시 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OTP)를 사용하라. OTP는 네 자리 숫자 35개가 쓰여 있는 보안카드와 달리 일회용 비밀번호를 1분마다 새로 만들어주는 안전한 보안매체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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