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의 이상과 비트코인

비트코인 2014. 7. 3. 20:32


아침에 목욕하다 떠오른 단상 (뭄바이 / 2014.07.03)

1. 대학 시절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인간 생명의 가치가 과연 무한한가'에 대한 의문을 단순히 수요공급 곡선으로 풀어보려 했다. 지구 상의 유한한 산소의 공급을 생각했을 때 수요자인 인간이 계속해서 늘어난다는 가정을 도입할 경우 산소의 가치는 시장에서 결정된다. 결국 산소의 시장가격이 형성되면서 인간 생명의 가격 또한 연계적으로 도출된다. 가치를 가격으로 판단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 생명의 가치는 무한한 종류의 것이 아니다. 물론 굳이 이런 상상을 하지 않아도 현실에서 인간의 생명은 그리 값지지 못하다. 인신매매를 봐도 그렇고 청부살인을 봐도 그렇다.

2. 노동가치론을 주장한 마르크스는 교환가치(가격)와 투하노동가치가 불일치하는 것을 관찰하고 곤혹스러워 했다. 결국 가치는 가격과 동일시 될 수 없다. 비단 사람마다 다른 주관적인 가치판단 때문만은 아니다. 주관적인 가치판단도 시장에서 특정 재화나 서비스에 대한 수요로 계량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람마다 서로 다른 가치 판단을 하게 만드는 제도적 제한성에 문제가 있다. 바로 재산권이 보호되고 있는 사회에서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자산의 양적 차이다.

3. 당시 미시경제학을 가르치던 교수님께 이 문제를 가지고 찾아갔다. 교수님께서는 현재 주류 경제학파인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을 내게 일러주셨다. 바로 경제주체들의 지불의사와 지불능력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 당장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암환자는 병원치료에 대해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지불의사를 가질 것이다. 하지만 그에 따른 지불능력은 사람마다 각기 다르다. 마음같아서는 수백억원을 내고서라도 살고 싶지만 단돈 1000만원이 없어 퇴원을 결정하는 사람도 많다. 누군가에게는 하룻밤 술값에 불과한 그 돈 때문에! 바로 이 지점에서 공리주의와 시장주의의 괴리가 일어난다.

4.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주장하는 공리주의. 공리주의 철학에 기반한 신고전학파의 효시 - 한계효용학파. 영국의 제본스, 오스트리아의 멩거, 프랑스의 왈라스가 저마다 한계효용에 기반한 경제 모델을 제시했다. 특히 왈라스의 수리모델은 스위스의 로잔느학파를 거쳐 일반균형이론으로 정립됐다. 문제는 일반균형이 완성된다 하더래도 지불능력과 지불의사 사이의 간극 때문에 공리주의의 목표인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달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차선책으로서 시장주의가 그나마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반박할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은 사회 구성원의 지불의사와 지불능력의 간극이 넓어질수록 힘을 잃는다. 거시적으로는 빈부격차의 심화가 이에 해당하며 미시적으로는 명품 선호현상이 문제가 된다.

5. 위와 비슷하나 또 다른 문제로 화폐 자체의 한계효용 체감의 문제가 있다. 화폐 한단위를 추가로 갖게 될 때 느끼는 효용은 사람마다 각기 다르다. 땡전 한푼 없는 거지에게 만원은 대단히 큰 돈이고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쾌감도 크다. 반면 1조원대 거부에게 만원은 있으나마나 한 돈이다. 하지만 신고전학파에서는 화폐의 한계효용에 대해 눈감아 버린다. 화폐는 중립적인 것이고 모든 사람에게 1원은 같은 가치를 갖는다고 설명한다. 이론의 정립성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다. 신고전학파 경제모델의 근간을 흔드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서양 속담에 '눈은 배보다 크다'라는 속담이 있다. 먹고싶은 것이 아무리 많아도 물리적으로 누릴 수 있는 쾌락은 한정돼 있다는 뜻이다. 돈이 너무 많아 어차피 다 써보지도 못하고 죽을 바에야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낫지 않은가. 부자의 작은 희생이 가난한 자의 큰 행복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세금을 통한 부의 재분배는 적어도 공리주의의 입장에서 봤을 때 위와 같은 이유로 정당화된다.

6. 부의 재분배 과정에서 다시 한번 문제가 발생한다. 과연 누가 어떠한 권리로 부자의 돈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준다는 말인가. 모두가 자본주의 사회에 내던져져 합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었다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혹자는 모두에게 같은 환경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분명 일리가 있다. 하지만 모두에게 같은 기회가 주어지는 일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유전자가 같은 클론들이 동일한 좌표상에 겹겹이 서있지 않는한 말이다. 기회의 불평등 문제는 분명히 해결하고 넘어갈 것이지만 보다 결정적인 것은 부자의 돈을 세금이라는 명목과 합법적인 물리력으로 가져가는 주체가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는 신성하다고 여겨지는 인간의 생명을 인간 스스로 빼앗는 사형제도와 비슷한 종류의 철학적 허점을 가지고 있다. 관료들의 부패와 행정조직의 비효율성, 재분배를 명분으로 가져간 세금을 소수의 결정권자들이 제멋대로 집행하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이가 반대할 것이다.

7. 나는 적어도 사회제도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해 짜여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공리주의자다. 그리고 이 글은 공리주의의 이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론에 다가가기 위해 쓰여지고 있다. 공리주의의 단점들에 대해 지적하는 사람이 많겠으나 여기서는 일일이 논의하지 않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기존의 시장주의가 공리주의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져 왔지만 금융자본주의와 고도의 기술사회에서 그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는 금융자본주의의 한계를, 올초 페이스북이 20조원을 들여 인수한 왓츠앱은 초기술사회에 들어선 자본주의의 기형성을 보여준다. 불과 50명의 직원이 몇년만에 20조원을 만들어낸 사건. 누구에게는 영웅신화가 될 수 있겠으나 우리가 극단적인 빈부격차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는 증거임이 분명하다.  빈부격차가 늘어날수록 사회 전체의 행복도는 낮아진다.

8. 사회 전체의 행복을 위해서 부의 재분배는 필요하다. 하지만 인간의 손을 거치는 재분배는 반발을 불러온다. 많은 시장주의자들은 또다른 철학적 기반으로 자유주의를 내세운다. 루소 등의 계몽주의 철학에서 나온 자연적 재산권 개념도 한몫 한다. 자기가 번 것은 자기 것이라는 믿음. 시장주의는 재산권을 신성불가침의 가치로 격상시켰다. 재산을 침해하는 것은 자유를 침해하는 것과 같다. 재산이 '자유'라는 강력한 가치와 융합하면서 시장주의는 그만큼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졌으며 또 그만큼 강력해졌다.

9. 그렇다면 이 재분배를 인간이 아닌 자연이 대신해준다면 어떨까? 인간은 비가 오고 눈이 온다고 해서 시위를 하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 재분배 과정도 인간이 중간과정에 개입할 수 없는 자연적인 제도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굳이 정부가 계좌추적까지 해가며 추징하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 말이다. 소득을 신고할 필요도 없으며 시스템은 소득과 자산을 자동으로 인식하고 적절한 재분배 기여금을 떼어다 분배한다. 비트코인과 같은 알고리즘 시스템을 계량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모든 화폐는 전자화돼 있으며 부의 재분배는 정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특정 공동체가 택한 알고리즘 안에서 계절 바뀌듯 실시간으로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10. 비트코인은 단순한 가상화폐가 아니다. 오히려 계약관계를 다루는 수많은 애플리케이션이 담길 개방형 플랫폼이다. 비트코인에 특정 인증서를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집문서 땅문서 주식 채권 등 수많은 증서를 전자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현재의 비트코인 시스템은 세금을 회피하고 자중손실을 최소화하는 중립적인 화폐로서의 길을 추구한다. 문제는 부의 재분배를 경시하는 화폐 시스템이 얼마나 지속가능하냐는 것이다. 여기서 재분배를 통해 발생하는 자중손실과 재분배를 하지 않아 발생하는 사회 전체의 잠재적 효용손실의 크기를 비교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나는 부의 재분배가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비트코인이 각국 정부들과 마찰을 빚는 원인의 일부도 세금을 통한 부의 재분배 과정이 없기 때문이다. 

11. 나의 제안은 블록체인 등 비트코인의 기술적 장점 몇가지를 취사선택한 뒤 그 위에 자동화된 재분배 시스템을 얹는 것이다. 새로운 가상화폐 알고리즘을 짜고 독자적인 생태계를 갖춘다. 화폐를 발행하고 통제하는 중앙은행도, 세금을 걷어 재분배하는 정부의 기능도 더이상 필요치 않도록 말이다. 물론 이같은 가상화폐 시스템은 비트코인처럼 세금없는 시스템과 경쟁하게 될 것이다. 비트코인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방안은 법적-제도적 합의다. 부의 재분배 기능이 들어있는 시스템이 민주주의적 합의 과정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특정 공동체의 보증을 얻는다면 충분히 할만한 싸움이다. 중기적으로 비트코인의 최대 문제는 화폐가치를 보증해줄 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미래에도 값어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널리 공유된다면 문제가 없겠으나 법정화폐에 적응한 현대인은 이 낯선 존재에 대해 쉽사리 믿음을 갖지 못한다. 비트코인의 아들이 인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는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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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이른 방수제품 출시 봇물... 이유는?

IT이야기 2014. 4. 22. 18:38


방수 카메라, 방수 스마트폰, 방수 태블릿PC…. 최근 출시되는 정보기술(IT) 제품들이 저마다 ‘방수’ 기능을 무기로 내세우고 있다. 예년엔 5월 말~6월 초 나오던 방수 제품이 올 들어 3~4월로 출시가 앞당겨지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올림푸스는 최근 수중 10m에서 방수되는 아웃도어 카메라 ‘STYLUS TG-850’을 이달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이 카메라는 방수 카메라 최초로 180도 회전이 가능한 틸팅 LCD를 탑재해 물놀이를 즐기면서도 셀카 촬영에 유용하다. 초당 60프레임의 풀HD 동영상 촬영도 가능해 수중 영상 촬영도 쉽다. 


 지난 11일 세계 125개국에 정식 출시된 삼성전자의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S5도 수심 1m에서 30분간 방수가 가능하다는 점을 주요 기능으로 내세웠다. 지난해 갤럭시S4 액티브로 반응을 살핀 삼성전자는 비싼 스마트폰의 훼손을 우려하는 소비자의 요구를 반영해 방수 기능을 갤럭시S5에 전면 채택했다. 


 소니코리아는 지난 3월 말 방수 태블릿PC ‘엑스페리아 Z2’를 출시했다. 수영장 욕실 등 수심 1.5m에서 30분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방수 성능을 자랑한다. 


 이처럼 방수 제품이 이른 시기에 출시되는 이유는 올해 유난히 봄이 짧고 무더운 여름이 길게 지속될 것이라는 일기예보로 물놀이용 방수 제품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5월 초 황금연휴와 6월 초 지방선거~현충일 징검다리 연휴라는 특수성이 있어 해외여행 등 이른 여름휴가를 계획하고 있는 이들을 중심으로 방수 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올림푸스 관계자는 “두 번의 황금연휴를 앞두고 이른 여름휴가를 계획하는 이들이 많아 예년보다 방수 카메라를 앞당겨 출시했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방수 제품뿐만 아니라 방수 기술 기업도 덩달아 관심을 받고 있다. 방수코팅 전문업체 아이림케이오는 방수 제품을 사지 않더라도 수심 1m에서 30분간 방수되는 방수코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방수 기능의 핵심 소재인 실리콘 제조업체들도 올해 크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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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 전시회에서 삼성 모델들이 몸을 꽁꽁 싸맨 이유

한국경제 2014. 4. 17. 17:03


아시아 최대 규모의 사진영상 전시회인 서울국제사진영상기자재전(P&I)이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나흘간의 일정으로 17일 개막했습니다. 삼성전자 소니 캐논 니콘 등 주요 카메라 업체들과 프린터, 방송장비 업체 등이 참여해 뜨거운 반응을 모았습니다.


사진영상 전시회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늘씬늘씬한 여성 모델. 주요 카메라 업체 부스는 아리따운 모델들과 이들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특히 올해 열리는 월드컵을 컨셉으로 치어리더 복장의 모델을 내세운 소니 부스는 그야말로 움직이기조차 힘들 정도였습니다. 대부분의 카메라 업체 부스가 시원시원한 차림의 모델을 앞세운 포토타임을 가졌습니다.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삼성 부스의 모델은 노출이 거의 없었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사진기자들이 주요 카메라 업체 모델을 모아놓고 촬영할 때 삼성은 파란색 티셔츠를 정숙하게 차려입은 모델들을 내보냈습니다. 탱크탑 차림의 노출이 심한 다른 모델들 사이에서 확연히 눈에 띌 수 밖에 없었죠.


삼성 관계자에 물어보니 속내는 이렇습니다. 삼성은 지난해 3월 남아공에서 열린 삼성포럼에서 식기세척기 등을 홍보하기 위해 수영복 차림의 어린 댄서들을 동원해 춤을 추게 한 일이 있습니다. 당시 선정적인 홍보로 인해 현지 언론의 뭇매를 맞았죠. 행사에 나온 여성 댄서들은 제품과 전혀 관련이 없는 데다 국민 80% 가량이 기독교 신자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확대됐습니다. 이후 삼성은 ‘성 상품화’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몸을 사리고 있습니다. 이번 P&I의 삼성측 메인 모델마저도 노출 없이 꽁꽁 싸맨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비통한 사건 앞에서 최대한 정숙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삼성이기에 더욱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한편 오늘 전시회에는 톱클래스의 모델이 총출동 했다고 합니다. 대충 둘러봐도 그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었는데요^^; 예년에는 서울모터쇼와 P&I가 겹쳐 톱클래스 모델들은 대부분 모터쇼로 갔는데 올해는 일정이 겹치지 않아 P&I에도 올 수 있었다네요. 노동시장의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모델료는 하락했습니다. 모터쇼와 P&I의 일정이 겹쳤던 지난해의 경우 톱클래스 모델의 시간당(포토타임 기준) 임금이 100~150만원을 호가한 반면 올해는 40~50만원까지 떨어졌습니다. 더군다나 이번 전시회에는 올림푸스와 후지필름이 참가하지 않아 카메라 업체들의 모델 섭외가 한결 수월했다는 후문입니다.




이 기사는 한국경제신문의 유료 서비스 한경+의 콘텐츠입니다. 한경+에는 취재 뒷얘기를 다룬 흥미로운 기사들이 넘쳐납니다. 깊이 있는 정보와 지면으로 옮기지 못하는 내밀한 얘기들을 한경+로 만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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